일단 나는 시를 모른다는 전제부터 깔겠다. 시, 소설, 에세이 그것이 뭐든 심지어 기업가나 운동선수의 자서전이라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글을 읽을 때면 화가 난다. 불순물이 없는 순수한 감정. 날 것 그대로의 '화'다. 그래서 마치 좋은 술을 마실 때처럼 은근히 달아오르는 기분좋은 취기를 느낀다. 남이 불쾌해하지 않을 정도의 주정과 흥얼거림이 동반된다. 그 주정에는 "그 녀석은 왜 그렇게 잘 나가는거야?" "왜 그런 재주를 저 녀석만 가지고 있지?" 따위의 시기심와 질투, 열등감을 동반한 투덜거림이 있기 마련이지만 상대가 절친한 사이거나 감히 넘볼 수 없는 건너편에 다다른 상대여서 오해를 사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숙취없는 상쾌한 아침을 약속한다. 좋은 글이 그와 같다. 언제고 돈을 모아 다시 사 마시려는 귀하고 비싼 술처럼 다음에 나올 책을 고대하게 된다.
그 중에 최고는 시가 아닌가 싶다. 외우는 시도 별로 없고 아는 시인도 손에 꼽지만 거의 어김없이 화가 나는 장르다. '도대체 얼마나 깎고 다듬으면 저런 시가 나올 수 있을까?' '도대체 얼마나 읽고 뭘 먹으면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을 보낸 새벽이어야 저런 단어가 떠오를까?' 절로 무릎이 꺾인다.
이런 저런 인연과 소개로 몇 사람의 시인을 알게되고 몇 권의 시집을 읽게 됐다. 그 중에 심보선과 이성복 시인이 있다. 부족한 공부와 짧은 소견으로 말하자면 심보선 시인의 시는 곱게 갈아서 만든 흰 쌀죽을 저으면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자국이다. 그에 비하면 이성복 시인의 시는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전혜린' 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밤을 새고 맞은 새벽녘 혓바늘에 이끼가 돋는...' 그 돋아난 이끼다.
아직은 40대인 한 사내와 50대 중반의 두 사내. 그렇게 세 사람이 똑같은 동작으로 테이블을 마주하고 있다. 손에 든 스마트 폰에도 같은 텍스트 화면이 띄워져 있다. 그리고 한 사내가 낭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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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어 - 이성복
남해 비토리에서 손가락 두 개 포갠 크기의 너의 몸 회 뜨는 것을 보았다
네 모가지를 비스듬히 자르는 것은 조금이라도 버려지는 살이 아까워서였다 잘린 모가지엔 검은 피가 묻어 있었지만 내장을 훑어낸 배때기는 창포묵처럼 투명하였다
네 생각나면, 며느리도 집 나간다는 가을 전어……
인적 없는 바닷가 모텔에서, 입 안에 녹아 흐르는 너의 살로 피로한 연애의 여흥을 돋우는 것을 모가지 잘리고서도 너는 생각지 못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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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신가요?" 세 사람은 돌아가며 서로의 감상을 묻고 생각을 읽는다. 그 순간만큼은 시어 하나 하나를 해부하는 수술실 의사가 되기도 하고, 각자의 삶에서 잘라 낸 필림을 틀어주는 영사실 기사가 된다. 시인의 최근 근황과 언젠가 읽었던 인터뷰 기사는 팝콘이다. 그리고 영화의 크레딧에는 이런 문구가 올라간다. '아.... 아무래도 시인은 그리고 시는 접근불가의 영역이다.' - The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