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무게는 21g이라고 한다. 이 실험은 1901년 행해진 이후로 다시 검증되거나 반복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사유의 깊이는 잴 수 있을까? 가늠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수치상으로 나타낼 수도 없고 그런 실험이 있었다는 기록도 없다. 우리는 흔히 독서량, 학위증으로 계량하려 들거나 말과 글에서 느낌적 느낌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많은 경험과 독서가 생각을 깊게 할 수는 있겠지만 그로써 단정지을 수는 없다. 말과 글에서 느껴지는 사유의 깊이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한가지만은 분명해보인다. 생각이 깊을 수록 말은 줄어들고 삼가하게 되며, 글은 소박하고 단순해진다는 사실 말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모든 것은 조금 더 단순해지는 것이 아니라 가장 단순해져야 한다."라고 했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문제는 ‘나는 길을 훤히 알지 못한다’는 형식을 가진다. 철학에서 당신의 목적은 무엇인가? 파리에게 파리통에서 빠져나갈 출구를 보여주는 것이다. 철학적인 혼란에 빠져 있는 사람은 방에서 나가고 싶은 데 어떻게 나가야 하는지를 모르는 사람과 같다. 창문으로 나가보려 하지만 너무 높고, 굴뚝으로 나가려니 그건 너무 좁다. 단지 주위를 둘러보기만 한다면 문은 항상 열려 있다는 걸 알 수 있음에도! - 비트겐슈타인의 인생노트p. 239"라며 까마득해 보이는 철학을 눈 앞에 내려다 준다. 무릎을 꿇고 아이와 눈을 맞추는 어른처럼.
날이 갈수록 복잡하고 어지럽기만 한 세상에서 컴퓨터로 대변되는 현대문명이 제시하는 해법은 단순화가 아닌가 싶다. 컴퓨터는 20진법, 12진법, 10진법을 거쳐서 0과 1만 사용하는 가장 간결한 2진법을 사용한다. 윤석철 교수는 인터뷰에서 "인간의 삶과 일하는 방법은 간결해져야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세계를 `목적함수`와 `수단매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분석하면 이것으로 삶에 필요한 모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 목적함수란 인간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의 방향이며 수단매체는 목적함수를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수단적 도구다. 지난해 8월 칠레 광산에 광부들이 갇혔을 때 목적함수는 `최대한 빨리 구출하자`로 단순화됐고 수단매체로는 망치공법이 채택됐다. 비용절감 같은 복잡한 문제는 제쳐뒀다. - 2011년 매경과의 인터뷰 中에서"
나는 불확실하고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중심을 잃고 흔들리지 않으려면 이 말을 새기고 있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보다 나은 세상, 살만한 세상을 앞당기자'를 목적함수에 둔다면 '정치의 선진화'는 선택할 수 있는 수단적 도구다. 결코 특정 정당을 종교화해서는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누군가를 교조화한다면 분별력을 잃기 십상이고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환호하고 실망하다 마침내 목적함수가 무엇이었는지조차 망각해버린다.
지금 나는 담배를 피고 있다. 오래전부터 너를 죽이겠다는 협박문구가 편지지를 대신한 담배갑에 쓰여져 있다. 담배의 한쪽 끝에는 불이 있고 반대편 끝에는 얼간이가 있는 셈이다. 다시 피기 전까지 4년동안 끊었던 적이 있다. 이 말조차 지금은 의미가 없다는 걸 안다. 그런데 누구에게도 공표하지 않고 담배를 끊었을 그 당시의 내 동기는 아주 단순했다. "범죄자 취급 받기 싫다"였다.(아마 공공장소에서 흡연이 금지됐을 즈음이었던 것 같다.) 건강, 아내의 잔소리, 몸에 배인 불쾌한 냄새등 이전의 더 심각하고 많았던 이유들은 고려 대상에 없었다. 그리고 그냥 "끊자"고 생각했을 뿐이고 지켰다. 물론 한동안이 됐지만. 그런데 금연해야 할 이유들을 조목조목 짚고 그 심각성에 대해 검토를 해서 결심에 이른다면 그리고 그 방법론에 있어 상담, 약물, 패치, 주변 통지등 자신에게 맞는 수단을 찾으려 한다면 과연 성공 확률이 높을지 의문이다. 그 수많은 이유와 방법에 상치되는 것들을 찾으려 들게 분명하다. 인간은 영악해서 욕망의 불씨를 완전히 꺼뜨리지 않는다면 갖은 이유와 수단을 동원해서 원래의 선한 의도에 짜맞추려고 끊임없는 시도를 하기 때문이다. 그 욕망이 자본주의와 동침해 낳은 대표적인 신문물이 전자담배다.
목적은 단순할수록 선명해지고, 수단은 과감하고 빠를 수록 좋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오랜 고민과 깊은 사유가 선행되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