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도 조리개가 필요하다

by 문성훈

온종일 책 한권에 빠져있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다.
읽었던 책이라 수월할 줄 알았는데 꼭히 그렇지만도 않다. 두툼한 두께만큼이나 광대무변한 이야기가 끝없이 펼쳐진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이전에는 스쳐지나갔던 도표와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는 정도다.

일부러 뽑아든 책이다. 요즘처럼 속은 더부룩하고 머리속에 안개가 잔뜩 끼어있을 때는 떠나있어야 한다.
결제를 기다리듯 현실의 문제가 쌓여 시선을 가로막고 연말 휴일의 번화가를 걷는것처럼 그것들과 부딪쳐 어깨가 시큰거릴 지경이면 수북한 결제판을 단숨에 허물어버리듯 뒤도 안볼아보고 그 곳을 벗어나는 버스를 타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 안에서 퍼져나오는 암울한 기운이 아니라 밖에서부터 조여오는 압박감을 느낄 때 나는 고개를 들어 머나먼 우주를 몽상하고 대양 위를 출렁이며 멀미를 느끼느라 잊는다.

<코스모스. - 칼 세이건> 나 <지도위의 인문학 -사이먼 가필드>이 그런 류의 책이다. 지구로부터 우주로 그리고 다시 지구로 돌아오는 여행, 인간의 욕망과 허위가 명확해야 할 지도마저 왜곡시킨 과거로의 탐험을 하는 것이다.
먼데서부터 가깝게 그리고 현재로부터 과거로 공간과 시간을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 해보는 것이다. 그래선지 사이먼 가필드는 <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도 쓴 것인지 모른다.
멀리로 그리고 오래전으로....
차츰 나는 점으로 쪼그라들다 소멸되기도 하고 현재를 지나 미래로 가는 빛이 되기도 한다.

"세상 모든 것들은 자기 나름의 신비한 본성을 갖고 있다. 밖으로 드러나는 각자의 고유한 행동 양식은 바로 그 본성에서 비롯하는 것이다"라고 누가 내게 이야기한다면. 나는 그것이 세상에 관한 설명이 전혀 되지 못한다고 말할 것이다.
온갖 현상들이 두세 가지의 일반 원리를 먼저 찾아내고, 모든 물체들의 성질과 그들의 상호 작용이 앞에서 찾아낸 원리들에서 어떻게 비롯되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을 향한 위대한 이해의 첫발을 내디뎠다고 할 수 있다.
- 아이작 뉴턴. <광학>

<광학> 은 빛을 연구한 이야기다. 그 속에 빛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눈에 대한 생물학적 내용이 들어있다. 그리고 칼 세이건은 우주를 훑는 <코스모스>에도 이 글을 옮겨놨다.

우리 가족 중에는 어머니와 아들이 눈 수술을 받았다. 그렇게해서 아들은 안경을 벗었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안경을 쓰신다.
평소 일상 생활이 불편할 정도로 고도근시셨던 어머니는 망막에 상이 맺히는 일종의 스크린이 오래된 도배지처럼 뜯어지는 현상으로 아예 안보일 뻔 하셨다. 그 치료를 받는 김에 내가 수술을 권했다.
각막사이에 렌즈를 끼우는 수술이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다만 의사가 수술전 일러준 바대로 이제는 먼 것은 잘보이는데 반해 가까운 것이 이전보다 잘 보이지 않는다. 즉 거리에 따라 두께를 조절되는 각막 대신 고정된 렌즈로 세상을 보게되어서 나타난 현상이다. 눈이 밝아져 좋아하시는데 가끔은 이전보다 가까운 물건들이 되려 잘 안보인다고 투덜대신다. 이미 알고 계셨으면서 하시는 말씀이다.

4.0에 달하는 시력을 자랑하는 몽골이나 티벳사람들은 한결같이 넓은 초원을 무대로 살아가는 유목민이다. 거칠 것 없이 펼쳐진 초원에서 먼 데를 바라볼 수 밖에 없어서다. 그보다 좋은 시력을 가진 부족이 있는데 태국의 섬에 사는 모겐족이다. 비결은 하루 2시간이상씩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는 생활습관때문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시력측정이란 것이 가까운 거리보다는 먼거리, 큰 것보다는 작은 것을 잘 봐야 하는 기준이다보니 그렇다.

그런데 수술 받기 이전 어머니는 방바닥에서 우리가 잘 보지 못하는 가는 머리카락이나 티끌을 꼼꼼히 집어내셨다. 물론 거의 방바닥에 코가 닿을 정도로 수그리는 동작을 취하시긴 했다. 머리카락이나 먼지에 질겁을 할 정도로 정갈하신데 자신이 눈이 어둡다는 사실을 젊어서부터 인식한 결과다.
사람이 관심을 기울이고 몰두하면 자신의 능력과 무관하게 잘 보이지 않을 것도 보게되고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게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언제나 그래왔지만 세상사는 게 여의치 않다. 조율도 안된 악기를 제멋대로 두둘기고 불어대는 것처럼 소란스럽다. 긴 터널안에서 멈춰 선 전철 안 승객처럼 화를 내고 불안해하면서 새어나오는 빛을 찾느라 허둥대는 것만 같다. 그 와중에 자신만의 현미경을 들이대고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유레카를 외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세상을 달관한듯 알수없는 괴이한 주문을 외는 사람도 있다.

우주에서 튕겨져 나온 부스러기 한 조각에 불과한 지구에서 그렇게 하고 있다.
우주의 나이는 약 137억년이라 했다. 고작 100년의 수명도 감읍할 나로서는 가늠조차 안된다.
가스로 우연히 만들어진 단세포로 시작해 10억개의 뉴클레오티드로 연결된 이중 나선 구조의 DNA를 가진 인간인 나와 베란다의 고무나무는 머나 먼 친척이란다. 인간이 그렇다. 그런 인간이 사는 세상이다.

너무 가라앉지도 떠다니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코 앞만 보지 말고 고개를 들어 먼데로 시선을 돌리는 여유를 지니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시 개운해진 눈으로 눈 앞에 놓인 것들을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자신도 모른채 망막에 렌즈 하나씩을 끼우고 사는 것만 같다. 그래서 눈 앞에 것만 보려하거나 먼 데로만 눈길을 돌린다. 컬러가 들어간 렌즈를 끼운 사람도 있다. 남은 진작에 눈치챘는데 정작 자신이 보는 세상은 그런 색인줄로만 안다.

습관처럼 하루에 한번은 고개를 들어 하늘과 구름을 보는 모겐족을 배워야겠다. 어두운 눈으로도 가는 머리카락을 집어내던 어머니를 닮아야겠다.
우리는 누구나 값비싼 최신 광학렌즈보다 훨씬 성능이 좋고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노리개가 장착된 눈을 지니고 태어났다. 가까운데서 먼데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시력을 떨어뜨리지 않는 지혜쯤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

뉴턴의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은 지금도 유효하다. 지극히 불규칙하고 예외적으로 보이는 상황마저 일반적인 원리 몇가지 안에 들어있다는 말을 믿는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를 골몰하는게 훨씬 현명하지 않을까싶다.
잠시 밖으로 나가 하늘을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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