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같거나 좆같거나

by 문성훈

"고객님~ 놀라셨죠? ^^" 쎄다. 너무 놀라거나 그럴 줄 알았다고 지레짐작 마시라 내가 한 말이 아니니. 시집 제목이다.

몇년전쯤 홍대 상권이 문어발처럼 확장하던 시기가 있었다. 홍대역에서 도보거리에 있던 한 건물 전체를 리모델링 했다. 필요없는 물탱크 자리를 부수고 지하에 없던 화장실을 만들어줬더니 금새 카페로 임대가 됐다.
처음 장사를 시작하는 젊은 친구가 사장이었는데 나름 특색있게 꾸몄다. 운영도 작은 모임이나 발표회 위주로 할 거라고 했다.

그래도 정성 기울인 건물의 첫 입주자인데 작업자로서 축하인사 차 방문했다.
카페 가운데에 탁자를 연결해 부페테이블처럼 펼쳐놨다. 알려지지 않은 젊은 신인 작가의 책과 사진엽서, 수공예 악세서리를 전시겸 판매하고 있었다.
버릇처럼 책 서너권과 당장은 필요할 것 같지않은 소품을 사느라 커피값의 10배를 써버렸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리고 한 권이나 제대로 읽었을까. 기꺼운 마음으로 샀으니 아쉬움도 없고 언젠가 읽겠지 하고 어딘가 꽂아뒀다. 그러다 노트를 찾다가 잘못 꽂혀져 있던 이 시집을 발견했다. 얇은 노트인줄 알고 다이어리 칸에 꽂아 둔 것이다. 이 시집 제목이 <꽃같거나 좆같거나>다.
프로필을 보니 드라마작가로 시작한 것 같은데 오늘 검색해 보니 이후 몇 권을 더 출간했다. 시인이나 소설가로 널리 알려지기란 무척 힘들다. 아니 밥벌이도 어렵다는 게 정설이다. 그런 환경에서 글을 쓴다는 것 용기있고 격려받아 마땅한 일이다.

큰 기대없이 줏어담은 책 중에 섞여 있어도 강렬한 옐로우 표지만큼이나 눈에 띄는 제목 때문에 샀던 것 같다.
그런데 읽으려고 책을 펼치자 더 점입가경인 문구가 적힌 스티커가 보인다. <'좆'가리개용 스티커입니다. 단어가 거북하면 붙여주세요> 전혀 전~혀 안거북하다. 앙큼발랄한 배려심에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맘때 겪는 만남과 이별이 주된 소재다. 글은 제목만큼이나 솔직하지만 결코 저급하지는 않다. 별반 생계에 도움이 될 거 같지도 않은데 글쓰기에 중독되어 목숨을 거는 사람들과 자극적이고 즉각적인 매체에 밀리고 밀려나면서도 최후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는 출판관계자들에게 영광 있으라.

오래된_연인 - 김은비

최선을 다했다고 하지 마
그런 거짓말이나 듣자고 했던 얘기가 아니야.

keyword
이전 03화불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