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

by 문성훈

‘욕망’은 본능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죄악의 씨앗이라고도 한다. 우리를 성공에 이르게 하고 절망에 빠뜨리기도 하는 욕망이다.
욕망이 불멸이라면 나는 죽음을 새기고 살려 한다. 차라리 두려움을 모른체하기로 말이다.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수술실은 시시각각 생과 사를 넘나드는 장소다.
외과의사는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스크럽(손 세척 Scrub)을 하며 주문처럼 시를 읊는다. 항상 빠트리지 않는 그만의 루틴이다.
잠시 스치는 장면이고 짧은 구절이었는데 뇌리에 박혔다.
“문이 비좁을지라도 형벌이 기다리고 있을지라도 상관없노라. 내 운명의 주인은 나고, 내 영혼의 대장은 나이노라.”

한번쯤 들어봤던 것 같기도 한데 너무 강렬했다. 원문을 찾아봤다.
영국 시인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1849~1903)의 ‘인빅투스(Invictus)’란 시다. 한국에서는 ‘불멸’이란 제목으로 소개되어 있었다.
‘인빅투스(Invictus)’는 ‘정복되지 않는(unconquerable)’ 혹은 ‘굴하지 않는(undefeated)’이란 뜻의 라틴어다.

무엇에 정복되지 않고 굴하지 않겠다는 의미일까? 환자에게 닥친 불운이거나 의사에게 닥칠 시련일지도 모른다.
운명의 주인이자 영혼의 대장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수술대 위의 환자일까 아니면 집도하는 의사 자신일까.
대상이 무엇이든 굴복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의지는 선명하다.

이 시를 쓴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의 삶도 그러했다. 그는 12세 때 폐결핵에 걸려 16살에 왼쪽 무릎 아래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시인은 항상 쾌활하고 열정적이었다.
친구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1850~1894)은 떡 벌어진 덩치에 목발을 짚고 다니던 그를 자신의 소설 <보물섬>에 등장시켰다. 그 유명한 외다리 실버 선장으로.

이 시는 만델라가 하루에도 몇 번이나 암송하며 혹독한 수형생활을 견뎌낸 것으로 더 유명해졌다.
영화 <우리가 꿈꾸는 기적(원제invictus). 2009>에는 대통령이 된 만델라가 국가대표 럭비팀 주장을 불러 이 시를 읽어주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최약체로 평가받던 남아공 럭비팀은 마침내 1995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역대 최강팀 뉴질랜드를 꺾는 이변을 연출한다.

‘인빅투스(Invictus)’는 조금씩 다른 번역으로 매체에 실려 있다. 나는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만큼이나 강한 의지와 불굴의 정신을 지녔던 장영희 교수의 번역을 골랐다.

온 세상이 지옥처럼 캄캄하게
나를 엄습하는 밤에
나는 그 어떤 신이든 신에게 감사한다.
내게 굴하지 않는 영혼 주셨음을
생활의 그악스러운 손아귀에서도
난 신음하거나 소리내어 울지 않았다.
우연의 몽둥이에 두들겨 맞아
머리에서 피가 흘러도 고개 숙이지 않는다

천국의 문이 아무리 좁아도
지옥의 명부가 형벌로 가득 차 있다 해도
나는 내 운명의 지배자요.
내 영혼의 선장인 것을.

말기 암환자를 상대하는 혈액종양내과 과장의 책상에는 명패에 이름 대신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다. “No One Said Life is Fair”
죽음의 공포를 떨칠 수 없는 환자나 그를 지켜보는 가족에게 인생이 공평하지 않다는 말은 어떻게 다가올까? 따뜻하게 건네는 위로일까 아니면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라는 의미일까.

나는 어쩐지 ‘불멸’이란 시 제목의 번역은 어색하다. 살아있는 것은 생명의 시계 바늘이 멈추면 사라진다.
시인은 우리에게 자신만이 운명의 지배자요 영혼의 선장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줌으로써 불공평한 세상과 운명, 고통과 시련에 저항하라고 외치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있음을 확인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영혼을 잠식하고 선한 의지를 꺾으려는 그릇된 욕망을 선별할 수 있어야 한다.
무릎 꿇지 말아야 할 상대는 끝없이 증식하는 암세포와 같은 그 욕망이지 죽음이 아니다 자신 안에 꿈틀거리는 욕망의 실체를 직시하고, 어찌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는 겸허해져야 한다.

‘죽음은 물에 잉크를 떨어뜨리는 것과 같다.’고도 했다.
소멸이 아니라 확장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새로운 경험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색깔이 바뀔 뿐 물은 그대로다. 물은 곧 영혼이고 정신이다.
누구나 세상에 떨궈진 순간 잉크 한방울은 떨궈졌다. 천천히 혹은 빠르게 삶이 죽음으로 바뀔 것이다. 욕망은 언제나 그런 우리를 흔들거나 휘저어 놓는다. 그릇된 욕망은 물마저 혼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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