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갈이

by 문성훈

" 내가 책을 사랑하는 이유는 위대한 문장에 희열을 느껴서라기보다 내 좁은 경험의 한계를 넘어 복잡한 인생에 대한 감각을 넓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집어삼킬 듯한 인생의 어둠과, 고맙게도 그 속을 애써 뚫고 나오는 빛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되살리기의 예술 / 다이애나 애실>"
50여년간 편집자를 했고 101세까지 사셨으니 누구보다 책을 많이 접하고 읽었을 작가의 말이니 허투루 들을 수 없다.

김정운 교수는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지식과 정보를 얻기에훨씬 효율적인 수단이 있음에도 침을 바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침을 바르고 싶어 안달하는 것처럼 뭉칫돈도 침을 발라서 세듯이 귀한 것에는 침을 바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침 바르기는 '존재 확인'의 숭고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독서는 성찰적이며 상호작용적이어서 작품 속으로 들어가 내가 끊임없이 개입하며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사건과 내용을 새롭게 편집하는 아주 특별한 '의미의 구성과정'이자 이 '의미 부여'가 책을 읽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뚜렷한 답변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책을 읽는 것이 내게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서는 어렴풋하게나마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시골태생이든 도시에서 태어났건 현대인은 자연과는 먼 삶을 살고 있다. 말하자면 산에서 야생으로 나고 자란 나무가 아니라 화분에 심은 나무같은 존재다. 햇빛을 고루 쬘 수 있게 옮긴다고 해봤자 베란다 안이다.
내게 있어 독서는 일종의 분갈이와 같다. 화분이라는 공간적 한계를 극복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새로운 흙에서 뿌리로 양분을 흡수해 줄기를 뻗게하며 윤기 흐르는 잎이 돋아나게 하는 것이다. 꽃과 열매는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다. 어떤 나무는 계절마다 꽃을 틔우고 열매를 맺기도 한다. 하지만 대나무는 일생에 한번 꽃을 틔우고 죽는다고 했다.

그래서 독서는 같은 자리에서 다른 삶을 경험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가장 유용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 흙이 책이라면 물은 돈이거나 권력일 수 있겠다. 화분의 물은 적당히 줘야한다. 일주일 간격 혹은 한달에 한번이라는 화원 가게 주인의 말은 틀렸다는 걸 알게됐다. 뿌리가 굵고 잔뿌리가 적으면 물을 적게, 뿌리가 가늘고 잔뿌리가 많으면 많이 줘야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세상의 풍요로움을 이미 가진 것이 많아 덩치를 불렸으면 적게, 아직 연약하다면 자주 많이 줘야하는 것이다. 이 법칙을 어기고 적게 줘도 될 사람에게 많이 가거나 잔뿌리밖에 없는 사람을 소홀히 하면 썩거나 메말라 죽게 되는 것이다. 나무도 사람처럼 자살을 택하기도 한다고 했다.

나는 너무 물을 많이 줘서 뿌리가 썩는 나무를 보고 있고 물이 없어 메말라 죽어가는 나무를 보고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데 분갈이라고는 한번도 하지않은 나무 때문에 말이 많다. 화학비료로 덩치만 키웠지 뿌리는 썩고있는데도 더 많은 물을 원하고, 잔뿌리가 없어 약한 바람에도 송두리채 뽑힐 것만 같다. 지적 소양이 박약한데다 양심과 교양마저 없는 강퍅한 어느 대선 후보에게 책읽기를 권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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