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책의 상관 관계

by 문성훈

좀 더 살아보면 세분화될 지 모르겠지만 내게 있어 책은 '술 술 읽히는 책'과 '술을 부르는 책'으로 나뉜다.
'술술 읽히는 책'이라고 해서 내용이 허접하거나 깨닫는 게 없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술을 부르는 책'이라고 해서 마냥 심각해지거나 오랫동안 기억할만한 것도 아니다. 그저 '술'이라는 낱말 하나로 풀어놓고선 쾌재를 부르는 것이다. 잊어버릴까봐 적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사실 이제서야 전구 켜지듯 떠오른 말로 정리하게 됐을 뿐이지 진작에 일상에서 체현하고 있었다.
내 백팩에는 읽든 못읽든 두 권의 책이 들어 있는데 역시나 '술 술...'과 '술...'이다. 언제 훌쩍 떠날지, 언제 올지 몰라서 '칫솔'과 '3단 접이우산'을 늘 넣고 다니는 것과 비슷하다.
주어진 시간이 짧든 길든 단번에 책 한 권을 끝까지 읽기보다 두 종을 번갈아 읽는 경우가 많다.
너무 가라 앉지도 떠다니고 싶지도 않아서다. 책이라는 모래늪에 빠지기라도 하면 헤어나오기 힘들고, 태양같기도 해서 너무 가까이 가면 녹거나 시력을 잃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지겨운 밥벌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주제가 무겁거나 어려우면 징건해지기 마련인데 그럴 때는 읽던 걸 덮고, 삽상한 바람이 이는 책을 집어드는 식이다.

얼마전부터는 책 한 권을 더 가지고 다닌다. 정확하게는 손에 쥐고 다닌다. 나와는 비교도 안될만큼의 독서량을 자랑하는 친구를 흉내내기 시작한 것이다.
거추장스러운 건 딱 질색인 나로서는 습관 들이기가 쉽지 않은데 놓칠 수 없는 장점 때문에 노력하는 중이다. 손에 들고 다녀서 이로운 점은 대중 교통을 이용하며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렇게 불을 당겨놓으면 자연스럽게 아무데서나 남은 페이지로 잘 넘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괜히 책읽는답시고 폼 잡는 것이 면구스러울 수도 있는데 이럴 땐 내 낯이 유달리 두꺼운 게 참으로 다행이다 싶다.

친구와 저녁 식사를 하다가 내가 읽던 책에서 이거구나 무릎을 친 책에 관한 문장이 있어 읽어줬다.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개 기억력 좋은 친구가 내게 소개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 문장 덕에 둘이서 한참 웃었다.
책 이야기가 흘러가다보니 부모 세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가끔씩 서로의 부모에 대한 에피소드나 근황을 나누는데 그 분들의 일거수 일투족이야말로 살아있는 책이고 귀한 지혜란 걸 매번 깨닫는다.

그의 어머니는 시장에서 국밥집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분이다.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열심히 살아오셨는데 글을 깨치지 못한 문맹이다. 내가 그랬다.
" 제가 생각하기에 삶이란 두가지 정도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책과 글로 얘기될 수 있는 소위 식자층의 테이블 좌담에 올라오는 삶, 시간과 체험으로 문신처럼 새겨진 시장 좌판 같은 삶이죠."
친구 어머니처럼 시대적 상황이나 형편이 여의치 않아 글을 못깨우치면 책을 가까이 하기도, 글을 쓸 엄두도 못낸다. 나 역시 외국서적의 모호한 번역에 화닥증을 내면서도 외국어 실력이 모자라 원서 읽을 엄두를 못낸다. 정도는 다를지언정 심정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몸으로 문대고 밀어 쓴 책이 문자로 쓰여진 책보다 더 큰 깨달음을 줄 때가 많다.

다만 남다른 용기도, 현장의 지혜도 모자란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뿐이다. 다행히 먹물이 튕긴 나는 시계 바늘을 되돌리거나 미지의 영역에 뛰어들 수 없는 한계를 책과 글쓰기로 어찌해볼까 궁리하는 중인 것이다.
우리는 바야흐로 비석처럼 누워 있던 글이 몸을 비스듬히 일으키다 다시 손바닥만한 곽에 드러눕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도 비스듬히 세워 읽는 사람이 앞으로도 존재할 거란 내 믿음은 강고하다.
여전히 머리보다는 발, 잉크보다는 땀으로 쓰여진 책을 더 높이 사고, 진짜 생짜배기 삶은 아무래도 좌판의 삶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자주 하긴 하지만 말이다.

keyword
이전 01화분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