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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프레임코웍스 Jun 16. 2020

21세기 언론의 품격 - 펜은 어떻게 칼보다 강해지는가

RULEBREAKER 30. 뉴욕타임스



우리는 생존이 품격보다 우선하는 시대를 산다



품격을 찾기 힘든 시대다. 품격(또는 품위)란 직품과 직위를 아우르는 말로, 사람이나 사물이 지닌 고상하고 격이 높은 인상을 뜻한다. 고상하고 격이 높은 것을 찾기 힘든 시대라는 건, 그만큼 생존하기 힘든 시대라는 의미일 것이다. 코로나가 사람들에게 무력감을 주는 건 그만큼 인간이 고유하게 추구할 수 있는 가치를 뒤흔들기 때문이다.



몇 주 전 읽던 책을 접어두고 잠을 청하려는데, 전화가 왔다. 늦은 시각에 누군가 보니, 뉴욕에서 살고 있는 친구였다. '잘 지내?' 하고 받은 전화 건너로 무거운 목소리. 맨해튼이 불에 타고 있고, 폭동이 일어났다는 이야기였다. 친구의 목소리에는 약자가 처한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다. 아시아인, 여성, 이민자... 현실에 품위 같은 건 없었다.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의 비참함이 뉴스에서 현실로 다가왔다. 



불을 댕긴 건, 일명 '조지 플로이드 사건'. 지난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발생한 비극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던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숨을 쉴 수 없다(I can't breathe)'라는 말을 남긴 채, 사망한 것이다. SNS를 통해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간 이 현장 상황은 모두를 들끓게 했다. 시위는 격렬했고, 약탈과 방화까지 동반한 폭동으로 이어지는 비극이 일어났다.



분노에 넘쳐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에 의해 상점들이 무너지고, 곳곳엔 방화가 일어났다. 사진은 Daily US News




분노와 슬픔에도 품격이 있음을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미국은 슬픔을 표했다. 가장 미국적인 (동시에 시대정신에 가장 민감한) 브랜드 나이키는 'FOR ONCE, DON'T DO IT (이번 한 번 만은 하지 마라)' 메시지를 발표했다. 유튜브와 온라인을 통해서 발표된 캠페인은 하나의 성명서에 가까웠다. 경쟁사인 아디다스는 이를 리트윗 했고, 미디어는 이 소식을 실어다 나르기에 바빴다.



나이키의 'FOR ONCE, DON'T DO IT' 캠페인. 미국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지 말라, 인종차별에 등을 돌리지 말라 등 문장은 시대를 울리는 성명서에 가깝다



애석하게도 그것은 굉장히 씁쓸한 풍경이었다. 이는 나이키나 아디다스의 문제라기보다는 언론사의 방정맞은 기사들의 품격 없는 행동이었다. (특히 몇몇 패션지에 매우 실망했다.) 감도 높은 사진과 도도한 문장으로 매력을 뽐내던 그들은 아디다스의 리트윗보다 더 집중해야 할 것들이 있다는 걸 잊은 듯 흥분해있었다.



그래서 뉴욕타임스가 생각났다. 신문이 늘 그렇듯, 뉴욕타임스도 종이와 활자로 이루어져 있다. 뉴욕타임스는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다른 신문처럼 종이와 활자만을 도구로 하지만, 보기 드물게 현시대의 문제를 품격 있게 짚어내는 언론사니까. 




종이와 활자로만 보여주는 언론의 품격



뉴욕타임스는 굳이 영어로 신문을 읽지 않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그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름도 몰라도 상관없다. 그 대단한 역사와 신뢰도, 활약에 가까운 보도 뒷 이야기 또는 논란 같은 것을 전혀 모를지라도 아무 상관없다.



뉴욕타임스는 코로나19로 시작된 사회적 거리두기를, 질병의 창궐과 이에 대응하기 충분하지 않았던 사회 시스템이 주는 절망을, 아래처럼 보여주고 있다. 화려한 색채 같은 건 없다. 그저 종이 위에 활자를 새기며, 그들의 방식대로 시대의 변화와 아픔에 품격 있는 공감을 표할 뿐이다.



뉴욕타임스가 말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기사는 우리가 이전에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부터 말하고, 외롭고 무서울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한다.
뉴욕타임스가 기리는 코로나 19로 인한 사망자들의 정보. 사회가 기억해야 할 죽음 임을 강조한다. 이들의 죽음을 기억하지 않으면, 더 나은 미래도 그들 죽음의 의미도 없기 때문.



우리는 언론이 스스로 특정한 프레임을 형성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지극히 옳은 사실임에 틀림없다. 혹자는 뉴욕타임스의 이런 보도가 과도하게 진보적이며, 언론의 평형감각을 잃고 사람들을 감정으로 밀어 넣을 수 있다고도 한다. 나 역시도 방송학을 전공했기에, 이 지극히 감동적인 뉴욕타임스의 시도가 그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타임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품격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처음 겪는 혼란에 의해 죽고 있고, 반복되어 왔던 차별적인 요소들은 세상에 만연하다. 책임 소재를 떠나, 마땅히 사람의 슬픔을 비폭력적으로 기리는 것. 보통은 대열을 맞춘 묵직한 활자로 채워야 할 지면의 레이아웃을 과감하게 파괴하고, 외로움과 소외를 표현하거나 죽음을 애도하는 것. 이것이 21세기형, 펜은 어떻게 칼보다 강해지는지를 보여주는 품격이다.




* 뉴프레임코웍스 - https://newframe.imweb.me/

*  룰브레이커즈 시리즈는 세상의 고정관념을 깨고, 더 즐겁고 행복한 사회를 만들었던 브랜드/인물/사건 등을 소개하는 뉴프레임코웍스 콘텐츠 캠페인입니다. 뉴프레임코웍스는 각 분야의 전문가와 손잡고, 고정관념을 깨는 다양한 프로덕트와 콘텐츠를 선보입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이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있다면, 당신도 이미 세상의 변화를 원하는 뉴프레임코웍스의 크루입니다.

* 사진출처 - 대림미술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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