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때 생명공학과 산업디자인을 복수 전공했다. 오전에는 공학연구실에서 실험을 하다가 디자인대학 건물에서 수업을 듣고 밤새 과제를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공학과 디자인은 기본적인 사고의 틀 자체가 굉장히 다른 분야였다. 당시에도 두 분야에서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지만, 방법론 측면에서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은 없었다. 양적연구와 질적연구의 차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경영대학원 방법론 수업에서였다. 그제야 나는 수치를 들여다보며 분석하던 실험이 양적연구이고, 현장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관찰하고 인터뷰를 하던 디자인 방법론은 질적연구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디자인학과 수업에서는 특정 경험을 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상황을 공감하는 것이 중요했다. 현장에서 부딪히는 일은 재미있었지만 또 한편 자연과학과의 접근과는 다른 연구방법이 어색했다. 디자인학과 졸업논문을 쓰면서도 '무엇하나 완벽하게 통제하지 않고 측정한 결과를 신뢰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고 있었다. 실제로 많은 연구자들은 질적 연구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boilerplate)이 부족하며, 연구자의 편향이 개입되기 때문에 일반화가 어렵다는 지적을 하곤 한다. 그러나 숫자의 증거가 없다고 해서 개인적인 해석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체계적이고 엄밀한 연구가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며, 그럼에도 누군가는 깊이 있는 이해로 현상을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익숙한 건 양적 연구이지만, 실제로 양적 연구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한민국 국민의 통계데이터를 얻은 어떤 연구자에게 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20대 여자'이겠지만, 같은 환경에서 자란 친구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눠도 서로의 생각이 굉장히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표준화된 조사도구를 통해 정보를 얻는 양적 연구와 달리, 질적 연구는 '사회란 다양한 가치와 문화적 신념을 가진 개인들의 집합'이라는 전제에서 수행된다. 질적 연구는 양적 연구로 탐구하기 어려운 개별 연구 대상의 독특성과 맥락성, 즉 질에 대한 관심에 치중하여 접근하는 방법론이다. 양적 연구가 문제의 원인이나 매개요소를 규명하는 '무엇(what)'을 확인하는 것이라면, 질적 연구는 '왜(why)'나 '어떻게(how)'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질적 연구와 양적 연구는 각각 장단점을 갖고 있는 방법론이다.
이전 대학원 생활에서는 모형을 수립해서 특정 현상을 통계적으로 분석하여 인과관계를 밝히는 양적연구에 집중했다. 계량분석을 위해 만들어진 수리모형을 해석하고 엄밀한 인과관계를 찾는 과정은 그 나름의 재미가 있었지만, 직접 데이터를 클리닝 하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의문이 드는 때가 있었다. 예컨대 양적 분석을 위해서는 삶의 질(quality of life)과 같은 어떤 추상적인 개념을 분석하기 위해 1인당 GDP 등 직접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대상(construct)을 대신 설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 사례와 같이 현상에 대한 정의나 데이터 수집의 한계 등의 이유로 이 변수가 실제 현상을 완전히 반영하기는 쉽지 않다.
수치화할 수 있는 개념으로 인과관계를 설명하여 외적 타당성을 확보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때론 이러한 모형이 설명해주지 못하는 오차항(error term)에서 사회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현상이 발견되기도 한다. 숫자는 흥미로운 현상을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지만, 실제 환경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양적 연구와 질적 연구는 사회를 바라보는 기본 전제가 다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분법적으로 사고하게 되지만, 그 어떤 방법도 그 자체로 사회 현상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우리 일이란 게 현장, 사무실 구분이 없어... 현장에 있을 땐 발에 불나게 뛰어다니고, 사무실에 있을 땐 발에 땀나게 일하는 거고." 드라마 미생에서 오상식 과장은 이야기한다. 사무실이 이론을 검증하고 일반화를 통해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곳이라면, 현장은 언제나 사건이 있는 곳이다. 실내화인지 안전화인지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더 좋은 연구자로 성장하기 위해서 이제는, 연구방법에 대한 논의를 돌아 다시 시작점에서 연구 질문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