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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리학과 학생 Feb 13. 2024

[우울증 극복기] 두 번째 이야기

아직 모르겠어 그러니까 시간이 필요해

"Depression", Oleh Zeitung-Stetsyuk
원래 "melancholy"(우울) (고전 그리스어 μέλας '검은'과 χολή '담즙'에서 유래)로 알려진 우울증은 고대의 수많은 글과 의학 논문에서 설명되거나 언급되었다. 이 용어의 유래는 히포크라테스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영국의 리처드 블랙모어(Richard Blackmore)가 위 그림의 이름을 1725년에 우울증(depression)으로 바꾼 사실이 있다.

역사적인 기록만 봐도 인간은 오래전부터 우울로 연관된 우울증 같은 심리병 혹은 정신병을 기록해 왔다. 과학적인 근거를 믿지 않았던 중세시대 그리고 그 이후에도 유럽 같은 종교 성향이 강했던 지역은 우울증 같은 정신병을 마귀가 씌워졌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과학이 발달되면서 근거를 바탕으로 연구하며 의학 수준은 많은 병들이 치료 가능한 수준으로 발전했다.

이전에 연구하는 방법은 "원인->결과"로 보던 원인론이었지만 수준이 더욱 높아지면서 "결과->원인", 결과론으로 진화했다. 이 방법을 알아보는 법은 매우 간단하다.

"배가 고파서 사과를 먹었어"
결과는 '사과를 먹었어'이고 원인은 '배가 고파서'이다. 이렇게 1차원적으로 계산하면 매우 쉽지만 심리학은 조금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사과를 먹었어"를 먼저 집중하고 그다음에 "배가 고파서"를 집중한다. 조금 더 어려운 예문을 보자면

"자꾸 내 핸드폰이랑 열쇠를 어디다 뒀는지 잘 모르겠어"
이렇게 보면 원인을 알아보기가 굉장히 힘들다. 그래서 결과를 먼저 보면 쉽다. "기억을 잘 못한다"가 결과가 되는데 그렇다면 원인은 무엇일까?
이론:
1. 치매일 수도 있다.
2. 스트레스성 치매일 수도 있다.
3. ADHD일 수도 있다.
4. 원래 잘 깜빡깜빡하는 성격이다.
5. (.. 등등)

지금 당장 원인은 "이거 때문이야"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심리학자가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은 이렇다. 아마 심리학자뿐만 아니라 많은 학자들이 결과론을 통해 더욱 빠르고 편하게 문제를 인식하고 이해한다.

그러니 기억하자 "결과->원인"이다. 내가 늦잠 자는 이유는 (결과) 어제 늦게 잤기 때문이다 (원인). 내가 울고 있는 이유는 (결과).. 아직 잘 모르겠다 (찾아야 하는 원인).


응급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예전에 운동하다가 다쳐서 한 두 번 정도 가봤기에 익숙한 곳이었다. 응급실 보다 더 두려웠던 거는 내 상태를 보시고 실망하지 않았을까 하는 부모님의 모습이었다. 그때는 중요할 수밖에 없었던 게 해외에서 오래 살다 보면 의지할 곳은 가족밖에 없기 때문이다. 외국인 신분으로 산다는 건 쉽지 않다.


내 순서는 가장 응급으로 지정해 놨다. 그렇게 상담실로 들어갔고 거기 안에는 의사 세 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사실 대단한 건 없다. 몇몇 문장이 생각나는데 진짜 내가 어디가 아픈지 물어보는 정도였다. 근데 나도 내가 어디가 아프고 왜 그런지 모른다. 그냥 요즘 슬펐을 뿐인데.


의사 선생님들은 나와 아빠를 분리했었다. 아빠가 싫은 건 아니었지만 나의 이런 모습을 안 봤으면 하는 마음에 그런 분리는 좋았다. 혼자 상담실에 들어가서 의사 세 분과 얘기를 한다는 건 너무 부담스러웠다.


"학생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뭐가 문제인 거 같아?"


"공부가 어려운 게 문제인 거 같아요. 저는 똑똑하지도 않아서 노력이라도 하는데 이제 한계가 있는 거 같아요"


"친구들이랑은 잘 지내?"


"네 딱히 문제는 없지만 가끔 헷갈려요"


"너의 어떤 모습이 헷갈리니?"


"내가 한국 사람인지 스페인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요"


"그렇구나 그럼 이제 어떻게 하고 싶어?"


"저도 모르죠.. 그냥 집에 가고 싶어요"


"하지만 집에 가는 건 안돼. 우리가 시간을 들인 만큼 지금 여기에는 결과가 필요해"


분명 나에게 친절하게 얘기했는데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요받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다 보니 나를 알기 위해 그리고 치료를 하기 위해 물어보는 자그마한 질문들을 점점 회피했다. 3시간이 지나고 나의 처방이 내려졌고 미성년자였던 나는 현재 이 병원에 입원할 수 없는 관계로 다른 병원으로 이송해서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처방을 봤던 나는 "학업 스트레스도 분명 있지만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만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 중에 이 환자의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부분은 정체성을 헷갈려하는 부분이다." 그렇게 분리된 아빠는 함께 할 수 없었기에 엄마와 함께 구급차를 타고 한참을 갔다.




습관은 참 무서운 게 "오늘 딱 한 번만 이따가 치워야지" 이 문장 한 마디로 나는 평생 안 치우는 사람이 될 수 있다. 1시간이 2시간이 되고 오전이 오후가 되며 오늘이 내일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게 익숙해지면 치우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가 되고 그렇게 스스로를 길들이면 습관이 된다. 기분도 마찬가지다. 스트레스를 풀지 않으면 누적되고 슬픔과 우울감을 해소하지 않으면 상태에 익숙해진다. 심지어 비교하는 일도 일어난다.


"어제보단 덜 우울하네"


누군가 이 글을 보면 "그건 당연히 생각할 수 있는 부분 아니야?"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미 부정적인 감정에 집중되고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습관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내가 스스로의 기분을 보다 더 낮추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다만 슬프지만 슬프지 않아라고 하는 것도 위험하다는 걸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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