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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now Aug 09. 2023

#1. 돌고 돌아 다시 겨울 나라로.

나를 찾고 나를 버리기 위해 떠나는 연말 겨울여행 

2022년 12월 24일 토요일 ~ 2022년 12월 25일 일요일


- 돌고 돌아 다시 겨울 나라로


무사히 비행기 탑승! 3년 만에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를 탔음에도 여행 가는 기분이 별로 들지 않는다. 아직은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럴 만도 한 게 조금 전까지도 공항에서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하고 있었다...

정말 12월이 이렇게 지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여행 징크스 마냥 정말 11월부터 미친 듯이 일거리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것도 다 평소에는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일들이... 

여행 가는 날 만을 기다리며 견디고 버텼는데 이 날이 와서 정말 기쁘긴 한데, 나의 에너지는 이미 다 소진해 버려 껍데기만 지금 간신히 이곳에 와 있는 기분이다. 


원래 애초의 계획대로였다면 나는 친구와 이탈리아 로마행 비행기를 타고 있었을 텐데 거의 모든 것을 다 예약해 두었던 여행은 갑작스럽게 발생 한 친구의 회사일 때문에 취소되고 말았다.   

나 혼자라도 여행을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정말 미쳐 돌아가는 회사 일에 탈출구가 절실히 필요해서 급하게 다시 여행지를 탐색했고 고른 여행지가 노르웨이였다. 

아니다. 사실 애초의 애초의 계획으로 돌아가자면, 친구와 여행을 같이 가자는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올해는 오랜만에 겨울 여행을 가야지 하고 계획하고 있었고 그때 생각해 두었던 여행지가 노르웨이였다. 

중간에 친구와 함께 가는 여행으로 변경되면서 여행지가 바뀌긴 했지만...

웬일로 겨울나라가 아닌 다른 곳에 가보나 했더니 결국 나는 겨울 나라에 가야 하는 운명이었나 보다. 이렇게 핀란드 이후 3년 만에 다시 또 겨울여행이 시작되었다. 


밤 비행기의 장단점


밤 비행기는 몇 번 타본 적이 없는데 확실한 장단점이 있다. 

우선 정신없이 짐을 싸거나 다급하게 공항에 오지 않아도 된다. 오늘도 점심쯤 일어나 나무늘보처럼 느리게 움직이며 지겨울 만큼 오래 짐을 쌌다. 그래서인지 짐을 다 싸고 오후 3~4시에는 공항에 도착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거의 체크인 시작 시간인 7시 30분쯤에 공항에 도착했다. 

천천히 짐 싸고 여유 있게 준비가 가능한 건 밤 비행기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 반면 단점도 있다. 우선 공항에 사람이 별로 없는 건 좋은데 식당이나 편의 시설이 거의 문을 닫는다. 

체크인하고 공항에서 저녁을 먹을 생각으로 왔는데 생각보다 식당들이 문을 일찍 닫아서 나는 결국 저녁을 먹지 못했다. 그리고 확실히 텐션이 좀 낮아진다. 잘 시간이어서 그런가... 

공항 내의 다른 사람의 얼굴에서도 여행자 특유의 에너지보다는 야간 근무자들 특유의 형광등 불빛에 하얗게 질린 피로감이 느껴졌다.  


비행기를 타는 건 사실 꽤나 중노동이다, 아니면 그 사이 내가 중늙은이가 돼서 일지도...


해외 출장을 자주 다니는 부서 직원분들이 늘 하는 이야기가 비행기 타기가 힘들어서 출장 가기가 싫다였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비행기 타는 일이 뭐 그리 힘들다고란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와... 비행기 10시간 타는 거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그나마 지금은 내릴 때가 돼서 인지 기내 불을 켜줘서 이렇게 다이어리라도 쓸 수 있는데 아까는 진짜 반은 고문상태였다. 잠은 안 오지 속은 안 좋지 몸은 삐걱삐걱 대지… 

그래서 한동안 비행기 통로에서 평소에는 잘하지도 않는 스트레칭을 하면서 한참을 서 있었다. 

이 고문을 한번 더 당해야 하지만 지금은 일단 비행기에서 잠깐이라도 내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좀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두바이에서 오슬로 갈 때 타는 비행기는 낮 비행기이니 지금처럼 힘들지는 않겠지. 

아니다. 거기도 도착시간이 오후 12시인걸 보면 시차+해가 늦게 뜨는 북유럽 특성상 어두울지도...


처음 북유럽 여행을 갔을 때는 무슨 체력으로 3개국이나 갔던 걸까. 그때 덴마크로 입국해서 아이슬란드 스웨덴 다시 덴마크였나? 아무튼 지금과 비슷한 시기와 일정에 3개국을 여행했었다. 

숙소도 그때는 다 호스텔이었고 끼니도 제대로 못 챙겨 먹고 다녔는데도 그게 불편하지가 않았다. 

그 사이 나는 참 많이 늙은 것 같다. 생물학적으로도 늙었지만 정신적으로도 늙고 지쳤다.


더 이상 누군가와 부대끼고 싶지가 않다. 예전에는 여행지에서 숙박이나 식사를 선택할 때 돈을 아끼는 게 가장 큰 목적이고 우선순위였는데 지금은 돈보다는 편함이 우선시되는 것 같다. 

이런 변화는 내가 낡고 늙고 지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확실히 사회 초년생이었던 그때보다는 금전적으로 여유로워진 것도 하나의 요인이다. 젊음을 잃은 대신 여유를 얻은 것이다. 


장거리가 앞으로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아니 생각이 아니라 내 몸이 그렇게 외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떠나지 못하는 것 같다. 체력적인 이유들도 있지만 또 나이가 들고 책임질게 많아질수록 삶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지는 것이리라...  

여하튼 한번 더 이 고문을 당해야 오슬로에 도착한다. 20시간 내리 비행기를 탔으면 더 힘들었을 것 같아서 경유행 비행기를 탄 게 다행인 것 같다. (애초에 노르웨이는 직항도 없지만 말이다) 


나를 찾고 나를 버리기 위해 떠나는 여행


한 번도 혼자 하는 여행이 쓸쓸하거나 심심하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원래 계획대로 친구와 이탈리아에 갔다면 지금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내 텐션이 높았을 것이고 여행 가는 설렘을 나누며 살짝 들떠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지금처럼 편안하지는 않았겠지, 온전히 ‘나’로 돌아갈 수는 없었겠지.

애쓰지 않아도 ‘나’ 같아서 편안함을 느끼는 곳을 찾아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 못 가게 될 뻔한 상황이 꽤 많았지만 그 시간들을 무사히 견뎌내고 비록 다 소진해서 껍데기만 남았을지언정 여행을 오긴 왔다. 이 여행을 통해 뭔가 크게 바라는 것은 없다. 

늘 그랬듯이 그냥 나는 잠시나마 떠나 있고 싶었다. 그곳에서 그리고 그곳의 나로부터 말이다. 

나를 찾고 나를 버리기 위해 연말 여행을 떠난다.

이것이 내가 연말 여행을 떠나는 유일한 목적이자 이 여행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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