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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snow Aug 12. 2023

#3. 12월 25일 오슬로의 이상한 밤

적막 그 자체였던 오슬로였기에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던 크리스마스 마켓


2022년 12월 25일 일요일


오슬로의 첫인상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적막’이었다


오슬로 공항에 도착했을 때 눈이 내리고 있었다. 

겨울나라들은 늘 눈이 오니까라고 쓰려다가 지난번 여행지였던 헬싱키에서는 눈을 거의 보지 못했던 게 기억났다. 전 세계적으로 올해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건지 폭설 수준으로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공항에서 오슬로 중앙역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무사히 도착! 밖에 나갔는데 세상에…

여행 다니면서 그렇게 큰 새가 도심에 날아다니는 것은 처음 봤다. 갈매기인지 부엉이인지 정말 어머어마하게 큰 새들이 광장에 몰려 있어서 놀랐다. 그리고 지금이 크리스마스 연휴기간인 걸 감안해도 (연휴기간에 유럽의 많은 도시들의 상점이 문을 닫는 것을 알고 있긴 했지만…)


정말 그간 다녔던 그 어느 나라보다 거리가 한산 그 자체에 적막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편의점과 맥도널드 같은 곳까지 전부 문이 닫혀 있었고 상점들은 물론 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오슬로 중앙역에서 호텔까지 10분 정도 거리여서 걸어가는데 사람이 너무 없어서 놀랐고 사람이 너무 없기에 오히려 한 번씩 마주치는 행인에 절로 긴장하게 되었다. 

(노르웨이에 아랍 이민자들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이 나라에 원래 어떤 사람들이 살았는지 헷갈릴 정도로 아랍계들이 많이 보였다. 이곳이 두바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10분 거리였지만 여전히 나와 구글지도의 파트너 쉽은 최악이었기에 눈길에서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30분 정도를 헤매다가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은 불필요한 것들이 모두 배제된(그들이 판단하기에 불필요하나 우리에겐 필수적이었던 것들 가령 냉장고, 티포트...) 상태였으나 방이 넓었고 바깥 풍경이 잘 보이는 곳이라 만족스러웠다. 도착했을 때만 해도 그래도 해가 아주 빨리 지진 않는구나라고 생각한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4시도 채 되지 않았는데 무대배경이 전환되듯 순식간에 밤이 되고 말았다.

예상은 했지만 해는 너무 빨리 졌고, 거리에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여행 전 알아봤을 때는 분명히 크리스마스 마켓도 열리고 저녁까지 운영되는 관광지도 많아 보였는데…. 

경유 시간을 포함 20시간 비행기를 타고 오느라 거지 꼴이었지만, 마음이 초조해져서 씻지도 않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예상치 못한 반전! ‘적막’ 그 자체인 도시에서 가장 크리스마스 마켓다운 마켓을 발견하다


호텔에서 나와서 사전에 알아본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곳으로 갔다. 그래도 역과 호텔 주변과는 달리 번화가에 나오니 나 같이 관광객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고 크리스마스 마켓에 가까워오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사라졌던 사람들이 다 여기 모여 있는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유명한 탈린에도 가봤지만 규모면으로는 오슬로 크리스마스 마켓이 더 컸다.

오슬로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소도시의 유원지와 지역 축제를 결합해 놓은 것 같은 분위기였다. 

생각보다 더 규모가 컸고 놀이기구, 스케이트장, 먹거리, 기념품 판매대까지 굉장히 실속 있는 구성이었다. 

가 본 크리스마스 마켓 중에는 가장 크리스마스 마켓다운 마켓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사람들이 인상적이었다. (가판대에서 파는 와플, 핫초코, 스낵류를 손에 들고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하며 소소하게 이벤트에 참여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아 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것 같은, 마치 도시 자체가 음소거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던 오슬로에서 유일하게 볼륨이 켜져 있는 공간 같았다. 



12월 25일 오슬로의 이상한 밤


정말 오슬로 시민들은 다 도시를 비우고 어디론가 떠나버린 걸까 아니면 내가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만 찾아다니고 있는 걸까.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부근을 벗어나자 어둡고 다시 거리가 너무 한산해져서 더 어딜 갈 엄두가 안 났다. 어둡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처럼 깜깜한 밤하늘의 느낌은 아니었고 하늘이 하얗다. 

그래서 시계를 보지 않으면 도대체 몇 시인지 가늠할 수 없는 색감의 하늘이었다. 

이때가 다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숙소에 들어가긴 너무 이른 것 같아서 좀 더 돌아보자는 생각에 주말에 벼룩시장이 열린다는 공원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가도 가도 거리는 줄어들지 않고 거리에는 사람 하나 없고 어찌 된 영문인지 건물도 불 켜진 곳이 거의 없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의도치 않게 학교도 지나가고 교회도 지나가고…. 눈밭에서 몇 번 넘어질뻔한 위기를 넘기고 결국 도착하긴 했으나…

벼룩시장은 온데간데없고 공원은 사람이 아니 생명체라고는 나만 존재하는 눈 쌓인 공터에 가까웠다. 그때쯤 되니 평소 잘 걷지 않던 다리에 쥐가 나기 시작했다. 

사람과 부딪히기 싫어서 연말에 이 먼 곳까지 떠나왔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그리워졌다. 

마치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적막한 오슬로의 이상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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