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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핀란드 오로라 투어

밤하늘은 별로 가득 차 있었고 우리는 고요한 호숫가에서 오로라를 기다렸다

by missnow

오로라는 늘 내 겨울 여행의 핵심 키워드였고 여행의 목적이었다.

여행 동선이 복잡해지고 시간과 비용이 훨씬 많이 듦에도 사리셀카에 온 이유도 이곳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로라 관측지’였기 때문이다.


숙소 안내데스크에서 오로라 투어 예약이 가능해 어제 오로라 투어를 신청해 두었다. 저녁 7시가 되자 투어 회사의 작은 밴이 왔고, 인근 숙소들을 돌며 관광객들을 픽업했다.

픽업 과정에서 이글루 호텔로 유명한 Northern Lights Village에도 들렀는데 덕분에 사진으로만 봤던 이글루 호텔을 볼 수 있었다. (마치 겨울 나라 요정들의 작은 집들 같은 낭만적인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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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커플, 가족을 태운 작은 밴은 사리셀카 시내를 벗어나 어둠 속을 달려 나갔다.

도로 표지판을 제외하곤 건물이나 눈에 보이는 인공적인 빛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분명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건 맞는 것 같은데 정말 한 치 앞도 구분이 안 되는 어둠 속이었다. 작은 밴 안에서 내가 태어나서 들어 본 적 없는 언어로 빚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의 작은 영화관에서 자막 없이 그 나라 언어로만 진행되는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둠 속을 달려 나가던 밴은 어느 지점에서 멈췄고 나는 사람들을 따라 내렸다. 생각보다 밖이 어둡진 않아 의아했는데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별이 햇볕에 반짝이는 강물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간 내가 보고 살았던 하늘과 이곳의 하늘이 같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많은 별이 있었다.

아이슬란드에서 오로라 투어를 갔을 때도 북극의 하늘에 별이 많다고 느끼긴 했는데 그때보다 훨씬 더 심하게 별이 많았다. 쏟아질 듯한 별을 보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밴은 어딘가를 향해 달려 나갔다.

오로라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중에 이 별들을 보러 꼭 다시 이곳에 다시 와보고 싶어서 구글 맵을 켜놓고 중간중간 현재 위치를 캡처했다.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으면 마치 꿈속이라고 믿어질 만큼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밴은 어딘가에서 다시 멈췄고 가이드는 깊은 숲 속으로 우리들을 데리고 갔다. 사람들의 뒤를 따라 숲 안쪽으로 들어가자 호수가 나왔다.

호수 위엔 쏟아질 것 같은 별이 밤하늘을 채우고 있어서 왠지 밤하늘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가이드에게 오로라에 대한 설명, 사진 찍는 방법, 그리고 주의사항을 들은 후 우리들은 조용히 호숫가에서 오로라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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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 여행은 지난 아이슬란드 여행, 그리고 이번 핀란드가 2번째였는데, 나는 이번 여행에서도 TV에 나오는 것처럼 밤하늘을 수놓는 초록색 커튼은 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오로라를 못 봤다고 하긴 좀 애매한 게, 카메라로 노출을 많이 줘서 찍으면 초록색 빛이 찍히기 때문이다. 사진으로는 약하게나마 오로라의 흔적이 담긴다. 하지만 실제로 내 눈에 보이는 건 희미하게나마 색이 느껴지는 엷은 띠 같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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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 투어가 끝나고 호숫가에 마련된 오두막에 들어가 모닥불을 피우고 이 지역 특산품인 링곤베리와 라즈베리가 들어간 차를 함께 끓여 마시고 생강 쿠키를 나눠 먹었다.

밤하늘은 별로 가득 차 있었고 호숫가는 마치 미지의 행성에 온 느낌마저 들 만큼 신비롭고 고요했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이고 나는 그들과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았지만, 그 순간의 우리들은 마치 미지의 행성을 함께 탐험하러 온 동료들 같았다. 나는 그들과 함께 하염없이 이곳에 머물고 싶었다.


살면서 춤추는 오로라를 볼 기회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다.

아직은 오로라 흔적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 운이 좋다면 좋을 수도..)

내가 변하지 않는 나로 살아간다면 앞으로도 계속 나는 오로라가 목적인 겨울 여행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어느 겨울엔 북쪽 하늘에서 선명한 오로라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이번 여행에서도 오로라의 흔적만을 느끼고 돌아가게 된 게 별로 아쉽지 않았다.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을 본 것 자체만으로도 이번 겨울여행은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별만 보러 다시 이곳에 오고 싶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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