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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산타 마을 로바니에미

20살의 내가 보낸 산타 마을 초대장.

by missnow

대학교 때 영어 수업 과제로 로바니에미 산타 마을을 소개하는 브로슈어를 만들었었다.

(살면서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를 소개하는 과제였던 것 같다)

이번 핀란드 여행을 계획하면서 나는 오랜만에 책상 속에서 브로슈어를 꺼내 봤다.

마치 20살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보내는 산타 마을 초대장 같았다.

살면서 꼭 가보고 싶었던 산타 마을에 갈 기회가 생겼으나, 산타 마을이 있는 로바니에미를 가는 순간 다음 목적지인 헬싱키까지 동선이 상당히 번거로워지는 상황이었다.

모든 지표(동선의 편의, 비용 등등)가 사리셀카에서 바로 헬싱키로 가는 게 낫다고 말해주고 있었으나, 안 왔으면 몰라도 로바니에미 근처까지 와서 그냥 지나치면 두고두고 후회될 것 같았다. 살면서 또 언제 핀란드를 올 일이 있겠는가..

그래서! 사리셀카에서 로바니에미까지 버스로 이동, 로바니에미에서 헬싱키까지는 야간열차를 타고 이동하는, 핀란드 교통수단 다 타보기 혹은 이동 자체가 목적인 것 같은 여행이 다시 시작되었다.




내가 상상했던 산타 마을의 이미지는 숲 속 오두막에서 1년 내내 전 세계 어린이들의 편지에 답장하며, 시간을 보내는 곳이었다. 그래서 셔틀버스에서 내려 산타 마을에 도착했을 때 나는 조금 당황했다.

산타 마을 건물 밖에도, 안에도 핀란드 유명 브랜드의 샵이 즐비해 있었다.

내가 로바니에미의 아웃렛에 온 건지 산타 마을에 온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을 때 산타 오피스 입구를 발견했다. 입구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고 산타 복장을 한 직원이 시간이 적혀 있는 티켓을 나눠줬다.

시간 별로 입장하는 인원수를 제한하고 있는지, 꽤 일찍 도착했음에도 내가 산타클로스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오후 5시였다. 여기까지 왔으니 산타클로스는 만나고 가겠다는 생각에 티켓을 받은 후 밖으로 나왔다.


눈 덮인 커다란 나무들, 트리 장식, 눈사람… 크리스마스가 지난 시점이었지만 산타 마을의 시간은 여전히 크리스마스에 머물러 있었다. 상상과는 달랐던 산타 마을에 실망하긴 했지만, 오랜만에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나는 다시 설레기 시작했다.

산타클로스와의 만남을 기다리는 동안 산타빌리지를 관광하기로 하고 연어구이로 유명한 식당에 가기 위해 북극 선을 넘었다.

밖에서 추위에 떨다 안으로 들어가니 모닥불의 온기에 꽁꽁 얼었던 몸이 사르르 풀리는 기분이었다. 가게 안은 모닥불을 중심으로 작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각자의 언어로 도란도란 나누는 대화가 가게 안의 온기를 더하고 있었다.

유명세와는 달리 이곳의 메뉴는 단출했다. 모닥불에 구운 연어와 빵 한 조각, 샐러드. 소박하고 투박하지만 아주 맛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산타 마을 주변을 산책했다. 상점가를 벗어나 서쪽으로 계속 걸어가다가 산타클로스의 썰매를 끄는 순록을 만났다. 산타클로스는 이 썰매를 타고 매년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러 다니는 걸까...

이 썰매를 타면 왠지 진짜 산타클로스가 있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순록을 만난 후 정처 없이 길을 거닐다 보니 점점 인공의 빛은 사라져 갔고, 하얀 눈으로 뒤덮인 숲의 입구가 나왔다. 이런 깊은 숲 속에 살고 있을 것 같은 산타클로스가 쇼핑센터나 다름없는 그곳에 있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숲 초입에서 나는 다시 산타 마을 입구로 돌아갔다. 쇼핑센터에 살고 있는 산타클로스를 만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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