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경험, 변화된 인식
기차가 지체되면서 입산시간도 늦어져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버스에서 내려 수덕사에 도착할 때까지 마음 따라 발걸음이 빨라졌다. 수덕사 템플스테이 사무실 앞에 도착하고서야 마음이 편안했다. 담당자가 반갑게 맞이해 줬다. 그분은 셔츠, 바지 등 템플스테이 동안 입어야 하는 옷을 주고, 숙소로 안내해 줬다. 명선당 4호.... 내 몸을 하룻밤 맡길 방이다. 받은 옷을 갈아입고 오리엔테이션을 받기 위해 이동했다. 사찰 내 준수사항, 공양(식사) 시간, 공양실 위치, 남성은 거사, 여성은 보살로 호칭해야 하는 등 간단한 안내를 받았다.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와서 선풍기를 켰다. 선풍기의 회전바람이 몇 번 왔다 갔다 할 때 즘에 몸의 열기가 식으면서 땀도 마르고 여유도 생겼다. 방안을 둘러봤다. 아담한 방 안에 화장실도 함께 있는 한옥집이다. 예약할 때 화장실이 밖에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사라졌다. 반쪽이 열린 한지문 사이로 얕은 기와 담장이 보였고, 그 위로는 울창한 숲이 있다. 나뭇잎 사이로 점점이 하늘이 보인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에 따라 보이는 하늘도 일렁인다. 짐 정리도 하지 않은 채 탭을 꺼내 작은 앉은뱅이 책상에 올려놓고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몇 개월만인 듯하다.
탭을 켜서 키보드를 치기 시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공양시간이라는 보살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쓰던 글을 신속히 저장하고 보살님을 따라나섰다. 나 외에도 3명이 더 있었다. 모두 외국인이었다. 한 명은 영국에서 온 60세의 여성이었고, 두 명은 미군 공군과 그의 아내였다. 우리는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공양실로 이동했다. 공양실은 수덕사 대웅전 우측에 있었다. 관람을 목적으로 왔을 때는 전혀 눈에 보이지 않았었다. 공양실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인솔하는 보살님이 식사를 할 때는 말을 하지 마라고 손짓으로 말했다.
식사는 자유배식이었다. 쌀밥에 윤기가 흘렀고, 열무김치, 깻잎김치, 오이장아찌, 된장찌개 등 담백하고 맛이 좋았다. 고기는 없었다. 먹는 시간도 이르고, 고기가 없어서, 저녁에 배고플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밥을 많이 펐다. 밥과 반찬을 남김없이 말끔하게 먹었다. 식사 후 식기와 숟가락 등은 직접 설거지 했다.
새벽예불을 드리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예불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기에 연습에 참가하지 않았다. 대신에 사찰 내를 산책했다. 숙소인 명선당을 출발하여 선수암, 견성암, 화소대, 대웅전 순으로 산책하며 관람했다. 사천왕문을 지나서 내려와 환희대를 둘러봤다.
방으로 들어왔다. 샤워를 하고 책상에 앉으니, 한지로 도배 된 방은 편안하고 아늦했다. 탭 앞에 앉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잠이 오기 시작했다. 9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졸음을 버텨가며 있다가 9시가 조금 넘은 것을 확인한 후 불을 끄고 누웠다. 평소보다 1시간 정도 이른 취침이지만, 여기 수덕사 템플스테이에서의 권장 취침시간은 9시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었다.
몇 시나 되었을까.... 낮은 울림의 목탁소리가 들려온다. 옆방에서 인지.... 스르륵스르륵 방문을 열고 닫는 소리가 조심스럽게 들린다. 새벽 예불이 새벽 3시라고 했었는데, 그 시간쯤 되었나 보다 속으로 생각하면서 눈을 감고 있었다.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온다. 대웅전 좌측에 있는 종을 스님이 치고 있는 듯하다. 시간이 궁금해서 시계를 봤다. 3시 30분 이었다. 종소리를 속으로 세기 시작했다. 셋, 넷, 다섯....... 종소리를 세다가 나도 모르게 잠으로 빠져들었다. 밖에 비가 오는 모양이다. 처마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와 새들의 노랫소리가 합창이 되어 귓속으로 스며들어 왔다. 비와 바람과 나뭇잎과 새가 어우러지고 부벼대는 새벽이다. 같은 시공에 있는 나도 그들의 일부이다.
불을 켜고 일어났다. 아침 공양시간이 되어간다. 5시 50분부터이고, 5분 전에 공양실 앞에 대기해야 한다기에 조금 일찍 방을 나섰다. 백제시대에 건축된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 건축물 중 하나인 대웅전 앞을 지날 때 대웅전 우측의 건물에서 스님들이 의례 같은 행사를 하는 듯이 보였다. 조금 더 가까이 가서 유심히 살펴봤다. 스님들 앞에 조그마한 상이 개인별로 앞에 하나씩 있었다. 가장 높은 스님으로 보이는 분이 식사를 시작하자 다른 분들도 먹기 시작했다. 절제된 모습으로 내 눈에 비쳤다. 새벽 시간에 스님들이 모여서 중요한 의식을 하듯이 식사 모습을 보면서 철저하게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양실에 갔더니 지글리 부부와, 캐린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밥, 김치, 김, 감잣국과 사과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간헐적 단식을 하므로 평소에는 아침식사를 하지 않는다. 여행 등 특별한 날에만 아침식사를 한다. 사찰에 지낸다는 것은 매우 특별하므로 식사를 할 수 밖에 없다. 새벽 6시 전에 아침식사를 해 본 기억이 없다. 잠에서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굉장히 이른 아침식사 시간이지만 맛있었다. 식기에 담아 온 음식을 모두 먹고, 식기를 씻는 것으로 아침공양을 마쳤다.
정혜사에 들어 가려면 아침공양을 끝내고 바로 올라가면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정혜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오니 맨발로 가고 싶어서 맨발로 수덕사 내를 걸어 다녀도 되냐고 보살님에게 물었다. 법당에는 맨발로 들어가면 안 되고, 실외는 괜찮다고 했다. 신발 벗고, 우산 쓰고 정혜사를 향해 출발했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땅의 촉촉함이 몸과 마음에 느껴졌다. 정혜사 가는 길은 계단이 많았고, 올라 갈수록 숲이 우거져 있었다. 비내리는 울창한 숲 사이의 길은 어둑어둑 했다. 예전의 나라면 무서운 기분이 들어서 올라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여 년 전 언젠가... 집 근처 산에 올라갔다 내려올 때 하늘에서 구름이 내려오며 비를 뿌리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무서움이 들어왔다. 그러자 걸음걸이가 빨라지면서 뒤쪽에서 누군가 따라오는 것같은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더 급해지고, 걸음도 더 빨라졌었다. 이러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비 오는 아침시간... 숲길은 나무로 울창하고, 분위기는 어두컴컴하고,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데, 맨반로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면서 두려움 전혀 느껴지지 않는게 이상했다.
소림초당, 향운각, 만공탑을 지나 정혜사에 도착했다. 정혜사는 문이 안쪽에서 잠겨 있어서 들어갈 수 없었다. 정혜사 인근에는 스님들의 공양을 위한 밭이 조성되어 있었고, 비닐하우스도 설치되어 있었다. 비바람이 더 세차게 불어서 덕숭산 정상 방향으로 발걸음을 떼는 게 망설여 졌다. 정혜산에서 발길을 돌리는 것이 아쉬워서 정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맨발로 걷기 때문에 바닥을 각별히 주시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오래 걸리지 않아서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덕숭산 해발 495m라는 돌비석이 서있었다. 비를 뿌리는 구름으로 가득한 정상은 인근의 소나무만 보였다. 정상표지석 등 기념 촬영을 마치고, 하산을 시작했다. 맨발이기 때문에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발 걸음을 뗄 때마다 신경이 많이 쓰였다. 30여 분 만에 안전하게 수덕사에 도착했다.
심연당에서 칡꽃잎차를 마시며 쉬고 있는데, 초은스님이 외국인 세 분과 차담회를 갖는다며 나를 다른 자리로 옮겨달라고 말했다. 스님에게 나도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다. 스님이 영어 할 수 있으면 가능하다고 말해서 참석했다. 주로 초은스님이 말씀하시고, 우리는 들었다. 간혹 질문을 하면 스님은 그에 대한 답을 했다. 나의 짧은 영어로 초은스님의 말씀에 대해 이해한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생각과 관점도 변하고, 세상의 모든 것들이 변하므로, 변하는 것들에 집중하거나 연연해하지 말고, 사실을 직시하고 그 내면을 깊이 이해라는 내용이었다. 스님이 차를 준비하시고, 우리들의 잔이 비면 계속 채워주셨다. 차담회는 한 시간 남짓 계속되었다.
불교 사찰에서 숙식하는 것도 처음이지만, 스님과 마주 앉아서 함께하는 대화도 처음이다. 오랫동안 만나왔던 관계처럼 편안한 시간이었다. 거의 모든 대화가 영어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영어 듣기, 말하기를 더 열심히 꾸준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글리 부부와 캐린이 나와 대화할 때는 나를 배려하여 말을 하기 때문에 영어가 들렸다. 원어민인 본인들끼리 하는 스몰토크는 거의 이해되지 않았다.
차담회 끝날 무렵 캐린이 더 머무르고 싶으나 방이 없다고 말했다. 초은스님은 스님들 방 중 출타 중이어서 비어 있는 방도 쓸 수 있다고 말하며, 원하면 더 머무를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캐린도 호텔예약앱을 만지작 거리며 고민하는 모습이다. 숙소가 이미 예약되어 있고, 취소 등의 문제가 있었는지 캐린은 다음 목적지인 경주로 가기로 결정했다. 나도 하루 더 머무를까 고민했지만, 당초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퇴실을 준비하기 위해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베개커버와 입었던 옷을 사무실에 반납했다. 점심공양 시간까지는 약간의 여유시간이 있었다. 우리는 심연당에 앉아서 소소한 대화를 하며 공양시간을 기다렸다.
점심공양은 냉면이었고, 후식으로 찹쌀떡과 멜론이 나왔다. 냉면이 입에 착착 붙었다. 그동안 먹어 봤던 냉면 중에 최고였다. 육수가 맛있었지만, 추가로 넣은 무, 오이, 배가 어우러져 특별한 풍미가 느껴졌다. 밥까지 넣어 함께 비벼먹었다. 식사를 마치자 캐린이 내 그릇을 씻어 주겠다고 제안했으나, 감사의 말만 전하고 내가 씻었다. 식사 후에 수덕사 대웅전 앞 너른 마당에서 우리는 기념사진을 찍고, 작별 인사를 나눴다. 먼저, 초은스님에게 인사했다. 캐린에게는 "I hope you are always happy"라고 인사했다. 그녀도 나에게 축복의 인사말을 했다. 지글리 부인은 나에게 포옹을 제안했고, 나도 이에 응하며 인사했다. 지글리와는 악수하며 축복의 인사말을 전했다. 나는 백팩을 메고 우산 쓰고 수덕사를 뒤로 하며 걸었다.
나의 버킷리스트 실행이라는 명목로 천년 사찰인 수덕사에서 하룻밤과 짧은 이틀 낮을 보냈다. 평소에 만날 수 없었던 여러 사람을 만났다. 스님, 외국인 세 명, 위급한 수술 후 안도의 숨을 쉬는 사람,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 네 명... 수덕사에 가지 않았으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이다. 그분들을 다시 만날 가능성은 많지 않다. 수덕사에 다시 간다면 스님과 거기서 일하시는 분들은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수덕사에서 1박 2일간 템플스테이를 하기 전 내가 만났던 사찰, 즉 절은 왠지 어색했다. 향 타는 냄새, 오방색으로 칠해진 단청은 아름다움으로 느껴지기 보다는 내 마음을 움츠러 들게 했었다. 1박 2일간 머무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불교 사찰도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공동체였다. 보다 절제된 생활을 하는 스님들이 살고 있고, 그들의 삶의 모양대로 정리정돈된 깨끗한 환경으로 드러난 곳이 사찰이다. 스님들의 삶과 사찰의 정리된 환경을 보면서 단순하고, 절제된 생활을 추구하는 내 삶의 방향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편안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템플스테이를 예약해 놓고 무서워서 잠을 못 자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이것은 기우였다. 방안이 아담하고 아늑하고 너무도 편안했다. 수덕사는 성곽처럼 내가 머무른 숙소를 감싸줬다. 수덕사를 떠날 때는 입산 시간이 늦어서 조급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평안함과 아름다움과 감사함으로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