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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온 Nov 04. 2021

불면일기(不眠日記)

21.11.04 여섯번째

11월이다.


겨울이 잠시 왔다가 가을이 제자리를 찾으려는 듯 겨울을 밀어낸 요즘이다.

덕분에 노랗고 빨갛게 물든 잎들을 보았고, 그것들이 떨어진 길을 걸으며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입으로 내어보기도 했다.


생일을 기점으로 전후에 왠지 바깥바람을 쐴 일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밖에서 에너지를 쓰고 집에 들어왔더니 꽤 잠드는 일이 쉬웠다. 요즘은 그랬다.

결국 불면의 원인은 에너지의 순환이 되지 않아서 였던 것일까. 오늘은 집에 하루종일 있다가 저녁을 먹고 잠시 커피를 마시고 해야할 일을 조금 한 나태한 하루여서 이렇게 잠이 또 오지 않는 것인가.


커피를 마시니까 잠이 안오는 거 아니오! 라고 생각할 법 하지만 카페인에 예민한 몸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학생 때 커피와 스누피 우유로 밤을 새서 공부해보려고 했던 나의 노력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으니 말이다.

요즘도 할 일을 매번 끝까지 미루고 미루다가 급하게 하는 밤이면 커피를 옆에 끼고 사는데, 카페인은 일정 시간이 지나고 뇌의 집중력이 끝나면 효력을 다하고는 한다.

그 때는 그 때고 지금은 지금인가, 싶기도 하다. 아마도 조만간 작은 실험을 해봐야할 것 같다. 일단 오늘은 대충 저녁 여덞시 즈음에 바날라라테를 마심.



1.

지나간 생일의 여파가 지속되고 있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여파라는 단어가 적절한지 사전을 찾아보다가 여파라는 단어를 설명하는 문장이 좋아서 기록한다

여파 : 큰 물결이 지나간 뒤에 일어나는 잔물결

상상하면 괜히 기분 좋아지는 문장인걸)

이번 생일은 적당한 거리의 사람들 모두에게 축하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그들과의 대화를 이어나갈 여력이 없을 것 같아서, 주변 지인들의 생일을 잘 챙기지 않는 내가 카카오톡 생일 알람에 뜬다는 이유로 세심하고 다정한 관심과 축하를 기꺼이 보내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여유롭게 챙기지 못할 것 같아서 알람을 끄고 오롯이 내 생일을 기억하고 있을 사람들에게만 축하를 받았다.


사실 숫자를 잘 못외우는 나는 친한 친구의 생일도 곧잘 헷갈리는데…이번 생일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축하와 선물을 받아서 얼떨떨했다.

동시에 약간은 반성했다…


난 숫자뿐만이 아니라 그냥 기억력 자체가 좋지 않다. 진심어린 축하를 보내온 사람들과 지난 시간 주고받은 선물과 편지들이 잘 기억이 안나서 왠지 미안했다. 정말 오래된 친구들은 워낙 서로 많은 걸 주고 받았으니까… 아무튼 그래서 이번부터는 내가 받은 선물과 편지 속 문장들을 기록하기로 다짐. 그렇게 직접 받지 못한 선물들이 하나씩 집으로 도착하고 하루의 끝에 그것에 대해-친구의 말에 대해 적으며 생일의 여운을 즐기고 있다.


생일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그리 특별할 것 없는 하루라고 생각해왔는데,

생일에 받는 편지들 속 문장들은

나를 땅에 발 붙이고 사는데 엄청난 역할들을 한다.

내게 편지를 써주는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문장에 이렇게 큰 의미부여를 하고 있는지…모를 테지만.

그 문장들은 계속 살아나갈 힘을 주는 리스트에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그렇게 생일날은 그 리스트의 목록을 가장 많이 늘리는 하루가 되는 것이다.


올해 생일에 가장 많이 한 생각

: 내가 여태 생일을 가볍게 생각해왔는데, 돌이켜보니 생일날만큼 나의 행복리스트를 늘릴 수 있는 날이 또 없고 누군가의 생일도 나와 비슷할 거라 생각한다면 앞으로 누군가의 생일을 가볍게 여기지 않겠다.


물론 여지껏 가까운 사람들의 생일을 가볍게 여긴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아마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생일을 축하한다고 말하고 연락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용기를 더 보여줄 수 있겠지 싶다.



2. 책 <곰탕>

 을 읽는 중이다. 방금 1권 다 읽음. 도서관에서 2권이랑 같이 안빌려온거 후회 중이다.


친구가 이런 질문을 던진 적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이동을 할 수 있다면, 과거로 갈래, 미래로 갈래?


그 때는 과거로 돌아가서 잃어버린 과거의 좋은 기억들을 가져오고 싶다고 했다.

예를 들면, 어린 날 부모님 손을 놓쳐서 에스컬레이터에 타지 못한 나의 손을 잡고 같이 올라가준 어른에 대한 기억과 같은

따뜻한 세상과 따뜻한 사람과의 일에 대한 기억을 보고 오고 싶다고.


곰탕에는 미래에서 과거로 시간여행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미래에서 돈과 목숨이 걸린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과거로 건너온 인물들 개개인의 서사가 다 흥미롭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타인에게 불행을 들이민 사람들이 어떻게 될지 정말 궁금하다.


우연하게 곰탕을 읽으며 가던 날 근처 맛집에서 곰탕집이 나왔었다. 그 날 그 곰탕을 점심으로 먹었어야 했는데 괜히 지금 와서 아쉽다.


아무튼 곰탕을 읽다가 든 생각

- 내 행복을 위해서, 게다가 그 행복이 겨우내 손에 넣은 것이라면 이 행복을 놓치지 않기 위해 타인의 불행에 눈감을 수 있을까? 그 타인의 불행은 평생 내 그림자 속에 숨어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 모르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인 편인데, 그렇게 빨리 가는 것은 옳은가. 그냥 내가 마냥 몰랐으면 좋았을 것들을 아는 것이 과연 나에겐 무슨 의미일까.

-> 곰탕 2권을 읽고 나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겠다…



요즘 이렇게 두서없이 떠오르는대로 글을 쓰는데 익숙해지고 있다. 그래서 어제 친구랑 재미삼아 다시 본 인프피 나무위키의 조언을 따라해보려고 한다.

일기니까, 초고라고 말하기도 뭣한 이 글을 나중에 분해하고 조립하면 나름 괜찮은 글이 될까.

이 남들보다 긴 밤의 시간이 좋았어, 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아무튼 오늘은 여기서 끝!

마지막 오늘의 추천곡은 지금 듣고 있는 곡


https://soundcloud.app.goo.gl/YDpq5aw77n969C5m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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