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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리 Oct 10. 2021

라이프 오브 마'미'

마미(Mummy)와 미(Me)가 공존하는 삶

(사진: RPA 출산 병실에서, 잠잠이 출산한 날 밤)



    <라이프 오브 파이>라는 소설이 있다. 열여섯 살 인도 소년 파이가 벵갈 호랑이와 함께 227일 동안 태평양을 표류한 내용이다. 한강 작가의 작품 <채식주의자>가 받은 상으로 한국 국민에게 잘 알려진 '맨 부커상'2002년에 수상한 이력이 있다. 2012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영상미가 대단하다 못해 황홀한 경지에 올랐다. 영화관에서 직접 보지 못 해 아쉽기 그지없다. 반전이 굉장히 충격적인데 열린 결말로 끝나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석이 여러 갈래로 나뉜다. 개인적으로는 파이의 대사에 이 작품의 결말이 나와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나요?"


    내 마음에 드는 이야기가 곧 <라이프 오브 파이>의 결말이다.





    최근에 나란 사람에 대한 짧은 소개를 써야 하는 순간이 몇 번 있었다. —그중 하나가 브런치 작가 신청할 때였다. 그런데 그깟 자기소개가 뭐라고 취업용 자기소개서를 쓸 때 보다 더 어려운 건지. 나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히는 거다. 출산 후에 건망증이 생겼는데, 내가 누군지도 깜빡하는 건가. 머리를 쥐어짜 내 나에 대한 신상정보를 읊어봤다. '음.. 나이는 삼십 대, 여자고,... 호주 시드니에 살고 있고. 음.. 또... 잠잠이를 키우고 있지.' 이 말을 조합하자면 나는 '호주 시드니에서 잠잠이를 키우고 있는 삼십 대 엄마'로 정의된다. 그런데 왜 말미에 적힌 '엄마'라는 단어에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건지.


    엄마가 되기 직전의 삶을 돌아보자면 나는 꿈꾸는 사람이었다. 글 쓰는 걸 좋아해 드라마 작가를 꿈꿨다. 한국 방송작가협회 교육원을 다니며 기초반, 연수반, 전문반을 스트레이트로 수료했다. 교육원의 마지막 반인 창작반을 지원하기 전, 드라마 작가가 되기에는 경험이 부족하단 생각이 들었다. 창작반에 붙는다는 보장도 없었지만, 이대로 창작반에 가게 되면 안 되겠다 싶었다. 더 넓은 세상에서 경험하고 오겠단 생각으로 일명 워홀 막차를 탔다. 호주에서 보다 많은 경험을 하고 글로벌한 드라마를 쓰자 다짐했다. 그러다 같은 호텔에서 일하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고 잠잠이를 낳았다. 내가 계획했던 것보다 더 많고, 더 깊은, 풍부한 경험을 하게 됐지만 어째 드라마 작가가 되겠다는 꿈에서는 영영 멀어진 듯하다.


    아기를 기르는 동안 감정의 소용돌이가 쉴 새 없이 몰아쳤다. 그 속에서 살아남은 건 내 과거도 아니고 아이가 있기 이전의 삶도 아니다. 드라마 작가의 꿈도 모두 휩쓸려갔다. 그리고 남은 것은 딱 하나, 엄마였다. 나는 왜 내가 엄마라는 사실이 힘든 건지에 대해서 한 동안 생각했다. 원해서 한 임신이었고, 잠잠이를 보고 있으면 너무나 행복하다. 그런데 왜? 그러다 깨달았다. 나는 '그냥 엄마'인 게 힘든 거구나.


    삼십여 년간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 온 수많은 것들이 있다. 내가 살아온 환경일 수도, 굳게 믿어온 신념일 수도, 내 몸과 정신을 가꿔 온 생활패턴일 수도 있다. 그게 뭐가 됐든 간에 내가 오로지 나일 수 있던 모든 것들을 출산대에 내려놓고 나왔다. 그리고는 24시간 아기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그냥 엄마'가 되어버렸다. 이러다가 내 인생이 '그냥 엄마'로 끝나버릴 거 같아 겁이 났다.


    "어느 인생이 더 마음에 드나요?" 내가 물었다.


    내 마음에 드는 인생으로 결말을 낼 수 있다면, '마미 Mummy'와 '미 Me'가 공존하는 삶을 선택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꿈꾸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아니, 이번엔 꿈꾸는 사람이자 엄마. 잃어버린 내 꿈을 되찾자 생각하니, 돌연 잠잠이가 내 꿈을 들고 나타났다. 내 꿈은 바닥에 널브러져 내 발에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고 있었다. 내 꿈이 종이 가방에 담겨 퇴근하는 남편 손에 들려왔다. 내 꿈이 책장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동화를 만났다, 마치 필연 같이.


 새로운 꿈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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