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7. 이식혈관외과 실습
몸이 힘들면 힘들수록 사람의 생각은 원초적인 본능에 기인하게 된다. 본원 이식혈관외과는 18주에 이르는 실습에 있어 가장 빈틈없는 일정으로 유명한데, 인계장에 "점심시간 이외에 쉬고 있다면 뭔가 잘못하고 있다"라고 쓰여 있을 정도다. 그만큼 학생들에게 끊임없는 공부와 경험을 쌓기를 교수님들께서 바라시고, 많이 도와주시기도 한다. 학생의 저널 발표나 케이스 발표가 있을 때면 교수님들 뿐만 아니라 전체 이식혈관외과 팀원 15명이 모두 참석해 높은 관심을 보여주신다.
하루는 교수님의 질문에 답을 제대로 못한 적이 있었다. 교수님은, 인간의 뇌는 전체 에너지의 20%가량을 사용하며, 생존을 위해 인간은 사고(思考)를 점점 하지 않는 쪽으로 진화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벌써 진화해 버렸나며 농아닌 농을 던지셨다.
월요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점심시간 한 시간을 제외하고는 수술 7개를 참관했다. 수술을 참관하는 건 물론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이지만, 매일 책상 앞에 앉아만 있다가 10시간 가까이 서 있는 것은 아주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놀라운 집중력으로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바늘을 꿔 매는, 평균 3~4시간 걸리는 수술을 연속 3개 이상 하는 외과 의사에게 존경심이 생기는 건 당연했다.
첫 수술은 이번 주 내가 맡은 케이스 환자의 수술이었는데, 아주 딱한 처지의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죽상경화증(죽과 같이 걸쭉한 형태가 혈관에 경화되어 침착된 상태 - 의학적 진단명은 아니며 정확한 진단은 peripheral arterial occlusive disease, 즉 말초동맥 폐쇄질환이다.)으로 인해 왼쪽 다리로 가는 큰 혈관(넙다리 동맥)이 90%가량 막힌 상태로, 50m도 걷지 못하고 왼쪽 종아리와 허벅지에 통증과 저림을 호소하는 분이었다.
보통 이렇게 다리 통증을 호소하시는 경우, 대부분 정형외과나 신경과를 거쳐 혈관외과에 오게 된다. 심지어 정형외과에서 척추 협착증을 의심해 척추 수술까지 받고도 증상에 개선이 없어 혈관외과에 오는 경우도 있다. (척추 협착증으로 인한 하지의 신경성 파행 증상과 혈관 폐쇄로 인한 파행 증상은 뚜렷이 다르다. 척추 협착증의 경우 허리를 구부리면 호전되기도 하고, 걸을 때마다 파행 증상이 나타나는 거리에 차이가 있지만, 혈관 폐쇄로 인한 경우는 항상 똑같은 거리를 걸으면 증상이 나타난다.)
할아버지는 2010년 뇌졸중으로 dysarthria(구음장애)가 있어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고, 심근경색 병력도 있었으며 왼쪽 첫째 발가락 절제 수술도 받은 적이 있었다. 피부는 건조하고 광택이 났다. 담배는 40년 동안 하루 두 갑씩 피웠고, 고혈압, 고지혈증 모두 진단받고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이 모든 증상이나 병력은 죽상경화증을 모두 뒷받침하는데, 미리 관리가 좀 더 철저했더라면 발가락을 절제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말을 더듬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혈관에 우회로를 만들거나 직접 혈관을 열어 찌꺼기를 긁어내는 수술과, 혈관 속에 스텐트를 넣거나 풍선을 넣어 확장시키는 시술 중 무엇이 더 효과적인지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단순히 더 중증이라고 수술을 시행하기에는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기 때문이다.
심폐기능이 뒷받침되어야 전신마취를 한 뒤 수술을 시행할 수 있는데, 보통 죽상경화증으로 수술을 받는 많은 환자들은 고령에다가 심혈관계 병력이 있는 경우가 많아 수술을 견뎌낼 만한 체력이나 신체능력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부분마취를 한 뒤 시행하려니 환자와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부분 마취의 경우 환자와 수술 중 지속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인데, 위에 언급된 할아버지의 경우처럼 말을 심하게 더듬는 경우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시술을 시행하는 것이 짧은 기간 안에 재발이 더 잦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장기간 동안의 데이터는 아직 부족하다. 애초에 죽상경화증의 환자군 자체가 심혈관계 고위험군이라 장기 생존율이 높지 않을뿐더러 다른 이환 질환으로 인해 재발률이나 사망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동맥 혈관 폐쇄에 있어서 위험인자는 크게 당뇨, 흡연, 고지혈증, 고혈압 등이 있다. 그 중 당뇨와 흡연은 다른 인자에 비해 그 위험도가 4배에 이를 만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당뇨는 앞서 신장내과 실습을 할 때도 느꼈지만, 특히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있다. 사회경제적으로 고립된 계층일수록 더욱더 취약하며 차후 관리도 잘 되지 않는다. 국가에서는 다행히 이런 분들을 위해 의료급여제도를 만들어 지정병원에서는 거의 무료에 가까운 수준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 놓았다.(필요한 분들 외에 국내에 일정기간 이상 체류하는 외국인들에게도 그러한 혜택이 있다는 것이 문제지만)
돈도 없고 일도 못한다. 수술밖에 치료가 없냐. 그렇다면 좀 더 싼 수술은 없겠냐. 외래 참관을 하다 보면 자주 듣는 말이다. 딱한 일이다. 이미 의료급여제도로 혜택을 받고 있는데도 그렇다. 대학병원은 영리 집단을 목표로 해서는 안되고 그렇다고 복지만을 목표로 해서도 안된다. 3차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비단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방사선사 등과 같은 인력들은 대체가 어렵고 육성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기형적인 보험제도가 가진 맹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이번 주는 다른 어느 과에서 보다 하루하루 성장해가는 내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과 공부는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일주일이었다.
대문사진 출처 : Business insider.com, The tobacco industry is not happy with the way Australia got its residents to quit smok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