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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Jul 25. 2019

자신 있으십니까, 밀당

Week 18. 호흡기내과 실습(1학기 끝!)

얼마 전 밥을 먹고 식당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자연스레 문을 당기고 나오다가 문득 당황했다. 제발 당기라고 말을 얼마나 해놓든 보지 못하고 꾸준히 밀던 시절이 있었는데 언제 이렇게 되었나 싶었다. 말 그대로 밀당, 즉 밀고 당기기를 할 줄 알게 된 나이가 된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이 주제에 대해 갑자기 흥미가 생겨 이것저것 찾아보았더니 문이 열리는 방향에는 생각보다 깊은 뜻이 숨겨져 있었다. 사람은 보통 진행방향과 일치하게 문을 미는 것이 자연스럽다. 은행은 강도가 들었을 때에 대비해 안에서는 무조건 당기는 문을 사용하는데, 조금이라도 시간을 지체시키기 위해서다. 반대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건물은 재난 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안에서 미는 문을 사용한다. 법적으로 명시된 사항이다. 보통 식당에 들어갈 때 당기는 문이 많은 이유는, 그래야 내부의 공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항상 아쉽다. 무언가를 객관적으로 잘했어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괜히 미련이 생긴다. 굳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지금 한다면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만약 그런 기분이 들지 않는다면 무엇일까. 무슨 수를 쓰든 정말 더 이상 완벽할 수가 없는 걸까 아니면 나 자신을 위로하며 잠깐만이라도 쉬어가기로 한 걸까?




드디어 길고 길었던 18주, 첫 실습이 끝났다. 아쉬웠다. 좀 더 열정이 남아 있고 의욕이 충만했을 때 다른 과를 돌았다면 생각의 결이 지금과는 조금 달라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배우는 내용 자체는 지난 2년 동안 강의실에서 하루 종일 들었던 내용임에도 매 주가 새롭고 또 새로웠다. 눈으로 직접 본 것들은 기억에 훨씬 더 강하게 박힌다. 사실 학기가 끝나갈수록 체력보다는 의욕이 부족했다. 체력이 부족하면 운동을 하거나, 잠을 푹 자려고 노력하거나 하다못해 링거 한방을 맞을 수도 있겠지만 의욕이 부족하면 정확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적당한 밀당이 답인 것 같은데 사람마다 그 기준은 다를 수밖에 없으니 직접 겪으면서 알아가는 방법뿐이다.


세상은 갈수록 넓어져만 가고 모든 것을 경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령 그렇다 해도 그런 기억은 머리에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중요한 건 적절한 경험을 거름 삼아, 내가 경험하는 세상과 완전히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나 자신을 믿고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는 거다. 그러한 세상이 나의 가치관과 부합하는지 판단하는 건 그 후 완전히 별개의 일이다. 인정할 수 조차 없을 때는 보통 좋지 않은 결과가 기다린다. 배척하거나, 배척당하거나.




항생제 사용은 중증도와 관계가 없다. 무슨 말이냐 하면, 세파계 항생제를 쓰는데 환자 상태가 좋아지지 않는다고 내성균에 효과가 있는 반코마이신과 같은 항생제로 곧바로 교체하는 행동은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오히려 내성균을 키우는 지름길이다. 배양된 균의 종류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해당 균에 민감한 항생제를 사용하면 되지만 사실상 힘들다. 왜냐면 치료는 철저히 시간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시시각각 환자가 안 좋아지는데 어떻게 의사가 아무 처치를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절벽 추락 직전 극적인 구조


교수님이 말씀해주신 좋은 비유가 있다. 중환자는 마치 절벽을 향해 달려가는 자동차와 같다. 환자의 나이나 체력은 자동차의 타고난 성능 같은 것이며 따라서 제동거리에도 본질적인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항생제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치료는 자동차에 억지로 제동을 거는 거다. 그런데 만약 절벽이 코앞에 있었는데 브레이크를 걸었다면? 안타깝지만 이미 절벽으로 떨어졌다. 너무 늦은 거다. 그러니 항생제 사용은 타이밍이 적절해야 함과 동시에 치료에 있어 근거 또한 있어야 한다. 시간과 효과 사이에서 밀당이 필요한 것이다. 교수님은 만약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그 이유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생각해내 반드시 알아내야 한다고 했다. 균주가 배양이 되지 않았다면 왜 그러했는지, 균주를 알았는데도 결과가 그랬다면 어떤 점에서 부족했는지. 생명을 다루는 이상 끊임없이 발전할 수밖에 없다.


기관지 내시경은 다소 위험할 수도 있는 시술이다. 시술 도중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는 문제가 생기면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Hypoventilation과 같은 호흡 문제인지, 아니면 순환을 담당하는 심장 쪽에 문제가 있는 건지. 만약 신체 말단과 입술에 청색증이 있을 정도까지 산소포화도에 문제가 있으면 심전도 역시 체크해야 한다. 심전도가 정상이라면 Perfusion 같은 순환 문제가 아니니 심폐소생술을 할 게 아니라 삽관을 해야 한다. 하지만 삽관은 한 번 시행한 후에는 제거까지 시간도 걸리고 합병증도 고려해야 하므로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고려해야 한다. 여성 환자나 아동 환자들이 이런 상태에 빠지는 첫 번째 이유는 가래를 뱉을 줄 모르기 때문이다. 가래는 삼키기만 해도 상태가 호전된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할 때 예술은 의학이다. 예과 때 들은 수업 내용이다. 의학만큼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학문이 있을까? 숨 쉬는 공기, 마시는 물, 내딛는 땅과 먹는 음식까지 주위 모든 것들이 의학이다. 항생제 사용에서도 밀당이 필요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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