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17. 정신건강의학과 실습(2)
정신건강의학과(이하 정신과) 2주차에는 케이스 발표가 있다. 우선 학생 1명당 보호병동의 환자 1명이 주어진다. 해당 환자의 진단과 치료에 대해 충분히 공부해야 하며, 면담 또한 매일 진행한 후 그 결과물에 대해 전공의 선생님과 나머지 조원들에게 발표를 하게 된다. 면담 과정 중 나눈 이야기뿐만 아니라 평소 환자가 하는 행동, 반응, 옷차림과 대화 시 눈 맞춤의 정도나 사고의 논리성 정도까지 모두 관찰일지에 적는다. (물론 환자의 동의 하에 양해를 구하고 이루어진다)
관찰일지를 포함해 그때그때 느낀 점들을 구석의 의자에 앉아 조용히 머릿속에서 옮겨 적고 있는데 친하게 지내던 한 환자가 와서 물었다. 선생님은 글을 열심히 쓰시는데 평소에도 글 읽는 걸 좋아하거나 다른 글을 쓰시냐고. 책을 많이 읽진 못하지만, 즐겨 읽는다고 하니 그럼 책의 어떤 점 때문이냐며 다시 되물었다. 약간 당황했지만, 책에 있는 표현이 독창적이며, 그 점이 가장 좋아서 읽는다고 답했다. 예시를 들면서 설명하려 했지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표현엔 한계가 있었다. 장대비가 내리는 걸 가만히 보고 어떤 사람은 하늘이 구슬피 눈물을 뚝뚝 흘렸다고 할 수도 있겠고, 땅이 점점 검게 물들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는 말을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부끄러웠다.
보름달이 떴다는 누구나 아는 사실을, 정호승 시인은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이런 작품을 보여드릴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해 그분께 죄송한 마음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장 친한 친구가 우연히 비슷한 물음을 던졌다. 문득 곰곰이 생각해보니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도 맞물리는 것 같아 잊어버리기 전에 기록해두려 한다.
겨울, 언론사에서 진행했던 학생인턴 첫날이었다. 첫날은 긴장하고 간 보람도 없이 기자 행동강령, 마땅히 지켜야 할 맞춤법 목록과 같은 글들만 눈 앞에 주어졌다. 어떠한 기대도 주어지지 않았고,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침도 마음껏 삼키지 못하며 가만히 앉아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몇 시간이 지나고 글도 눈이 빠지라 읽었겠다, 너무 지루하고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 회사 이곳저곳을 눈치껏 돌아다니는데 책장의 많고 많은 책들 중 거짓말처럼 이국종 교수님의 골든아워가 보였다.
단숨에 집어 들어 읽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이라 얼마 읽지 못했는데도 그 와중 읽은 서문이 플래시를 켜고 찍은 사진의 한 장면처럼, 아주 강하게 머리에 남았다. 동아일보 기자의 "활자로 남겨둔 기록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다는 말이 원동력이 되어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책은 단지 기록의 일환이라 했다. 본인은 훌륭한 말솜씨를 가지지도 않았으며 글을 업으로 하는 사람도 아니며, 단지 늘 곁에 두고 살아온 소설가 김훈 선생의 <칼의 노래>를 등뼈 삼아 글을 정리했다고도 했다.
자연스레 김훈 선생의 책을 읽었다. 신기하게도 글 속에서 이국종 교수님이 보였다. 어떤 마음으로 이 종이를 넘기고, 또 넘겼을지 알 것만 같았다.
그 해 남은 겨울은 주로 아버지의 서재에서 보냈다. 가까이 있었지만 멀리 여겼던 여러 책들을 기꺼이 찾아 읽었고, 그 속에서 감탄을 거듭했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느꼈어야 할 문학적 황홀감을 당시 처음으로 비로소 느낀 것이다. '어떻게 이런 표현과 생각을 할 수 있는지, 대체 머릿속이 범인(凡人)과는 무엇이 다르길래 그럴까'와 같은 결코 쉬이 해결되지 않을 의문을 품은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을 거다. 그래서 끝이 어떻게 되든, 더 늦기 전에 나 역시 시작해보려 한 거고.
이번 금요일에는 병원 세미나실에서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님의 강연이 있었다. 어릴 적 방학숙제의 주제였던가, 왠지는 사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내 기억 속에 '생물다양성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깊게 박아 놓은 사람이다. 점심시간을 줄여야 했고 케이스 발표 준비도 다소 덜해야 했지만 그런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 나도 모르게 이런 걸 넣어 놓은 사람이 온다는데 그게 중요한가. 연예인이 온 듯 설렜고 문 앞에 있던 응모함에 이름 석 자를 급하게 적어 넣은 뒤 기대를 잔뜩 하고 강연을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오더니 다음 주 화요일에 책을 받으러 오란다. 길게 살지는 않았지만 인생에서 뭐든 당첨된 게 처음이라 매우 매우 들떴던 기억이 난다.
안타깝게도 일정 관계상 한 시간 남짓 들었지만 기대했던 만큼 강연은 흥미로웠다. 강연 주제가 '어쩌다 리더'여서 그런지 주변에 교수님들밖에 계시지 않아 약간 주눅이 들었지만 나도 나름대로 느낀 점이 많았다.
2013년 10월부터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으로 일했다. (중략) 재임 시 국립생태원은 온갖 악조건에도 환경부에서 내려준 연간 관람객 30만 명 유치라는 목표를 300% 이상 초과 달성했다.
책 맨 앞의 저자 소개에서 가져온 글이다. 어떻게 국립생태원을 경영하며 가꾸어 나갔는가가 이번 강연의 주된 내용이었으며, 교수님이 생태학자라고만 알고 있던 나에게는 딴 세상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적고 싶은 게 참 많지만 유독 기억나는 건 역시 항상 한두 가지다.
유명 관광지마다 발자국을 찍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는 한국 사람들에게, 재방문율을 높이기 위해 매년마다 전시 주제를 바꾸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중 '개미세계 탐험전'은 세계 최대, 유일의 전시였다고 한다(본인도 부끄러워하신다). 농사를 지을 줄 아는 동물은 세상에 딱 셋이다. 개미, 흰개미, 그리고 인간. 현재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우리의 농경 역사는 1만 년 남짓에 지나지 않는데 비해, 개미의 농사는 무려 6500만 년이나 될 정도로 유서가 깊다. 개미의 농경 역사를 계산한 과정도 매우 흥미롭다. 잎꾼개미는 나뭇잎을 베서 퇴비로 버섯을 키우기도 하는데, 이 버섯의 DNA를 추출해 염기가 변하는 시간을 측정한 다음 역산해보니 시간이 그렇게나 흘러왔던 것이다. 정말이지 이렇게나 작은 곤충이 이러한 역사를 반복해왔다는 것을 알면 탄복을 할 수밖에 없다.
소통은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업보이며 적당히 하려고 하면 절대 이룰 수 없으며, 필사적으로 해야 한다. 단순히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왜 내가 내 삶의 편의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하나?'같은 생각을 하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교수님은 원장 재임 중에 부서 간 소통을 증진하기 위해 '원격바'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원격바는 '원장이 격주로 구워주는 바비큐'의 준말인데, 딱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고 한다. 각 부서에서 반드시 한 명씩만 올 것. 분위기는 처음에는 처참했지만 나중에 고기와 술이 들어가니 서로 친해지는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이후 부서 간에 협업할 일이 생기면 '원격바'에서 만나 친해진 직원들끼리 소통하며 추진하는 성과도 있었다고 하시며 특허를 걸어놓지 않았으니 마음껏 쓰라고도 했다.
알면 사랑하게 됩니다.
경험담을 전합니다. 열대 파나마 지역에 가서 연구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하루는 제가 전갈과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고 한 친구가 화를 냈습니다. 이유는 위험한 동물 가지고 사람들이 많은 데서 논다고 타박했습니다. 그런데 아시나요, 전갈은 새끼를 업어 키우는 동물입니다. 그 당시 제가 본 어미 전갈은 무려 7마리의 새끼 전갈을 업어서 키우고 있었습니다. 어미보다 몸집이 더 큰데 말이죠. 아무튼 화를 냈던 친구도 그 모습을 봤나 봅니다.
어느 날 저와 마찬가지로 전갈과 어울려 놀고 있더군요, 다가가 물었습니다. 나한테 화를 내더니 뭐하는 거냐고. 그러자 그 친구가 말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모성애가 있을 수 있냐. 어떻게 미워할 수 있냐.”
정말 그렇다. 문학이든, 사람이든, 생태학이든, 뭐든지 알면 사랑하기 마련이다. 충분히 알면 미워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