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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Sep 21. 2019

언제쯤이면 익숙해질까요

Week 23, 24. 응급의학과 실습(Day & Night)

응급실에 있던 2주 간은 조금 특별한 날이었다. 5일에 걸친 추석 연휴가 있다는 말 이면에는 어떤 뜻이 자리하는지 나는 몸으로 직접 겪을 수 있었다. 작년만 해도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유쾌하게 웃던 선배들은 이제는 인턴이 되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걸 지옥이라고 불렀다.



응급실은 그러니까, 생각과는 사뭇 다른 곳이었다.



꼭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내장이 으깨져야만 사람들이 응급실에 오는 건 아니다. 상처에서 피가 솟구치는 것은 차라리 살아있다는 반증일지니, 그렇지 않고서 생명의 빛이 서서히 꺼져가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이 무서운 일이 또 있을까.




심정지 상황은 응급실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보통 하루에 1~2회에 있는 정도라고 한다. 물론 내 입장에선 흔치 않은 경험이다.


처음 CPR(심폐소생술)을 치던 기억이 생생하다. 교통사고로 실려온 할머니였는데 당시 현장에서는 맥박이 있었고 이송 중 심정지 상황이 발생했다고 했다. 그때 나는 친한 인턴 형을 계속해서 따라다니다 처음으로 심전도를 직접 환자에게 찍어보려던 찰나였다.(심전도와 같은 비교적 간단한 술기는 의료인의 감독하에 학생이 시행할 수 있다 - 의료법 제27조 제1항)


할머니의 흉곽은 모형의 그것과는 매우 달랐다. 갈비뼈는 사고의 충격으로 이미 부서질 대로 부서진 상황이라 심장을 단단하게 보호해주던 것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개방된 상처는 없어 피가 흐르지는 않았지만 피부 아래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손바닥 바로 아래에 어색한 촉감을 느끼며 힘껏 누르는 2분은 빠르게 흘러갔다.


CPR을 계속해서 쳐야 한다는 건 좋지 못한 상황이다. 보통 심정지 상황에서 CPR을 계속하면 심실세동이나 심실빈맥, 또는 심방세동과 같은 상황이 오게 되는데, 그때는 제세동이나 전기율동전환과 같은 Shock를 시도할 수 있다. 그 외 무수축이나 무맥성 전기활동과 같은 파형이 보이면 앞에 언급한 리듬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심장압박을 해야 한다. 특히 무맥성 전기활동에서는 심장보다는 출혈로 인한 저혈량 쇼크나 저산소혈증과 같이 심장 외의 문제가 더 크기 때문에 Shock를 주어선 안된다.


쉽게 말하면 영화나 드라마처럼 심정지상황에서 무조건 Shock를 가한다고 심장박동이 돌아오는 건 아니라는 거다.


할머니는 계속해서 무맥성 전기활동의 파형을 보였다. 무맥성 전기활동이라는 말은 약간 말 자체가 배치가 되는데, 심장의 박동은 보이지만 전신의 맥이 만져지지 않는 상황을 뜻한다. 보호자에게는 쉽게 납득되지 않는 상황일 수도 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심장의 박동마저 사라지고, 할머니에게는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방 안을 채우던 수많은 소리들과 사람들은 이미 자리를 바삐 비우고 있었다.



나는 그 안에서 홀로 멍했다.



실습학생은 1시간마다 돌아가며 중증도 분류실에 들어가 진료를 참관해야 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번엔 내 차례였다. 그 시간 동안 토는 하지 않았지만 등을 두드려 준다면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 기분이 들어 허리를 자꾸 굽히고 있었다. 얕게 숨을 쉬다 내 차례가 끝나자마자 밖에 나와 하늘을 보고 크게 숨을 내뱉었다. 밤은 이미 깊어 빛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다음 CPR도 당연히 익숙해지지는 않았다. 압박 도중 모니터를 본다는 게 환자 얼굴을 슬쩍 보게 되었다. 눈이 반쯤 열려 있었는데 흔들리는 시선이 어쩐지 나를 향하는 것 같았다. 분명 착각이겠지만, 그만 놓아달라고 하시는 듯했다. 나는 시선을 억지로 돌리며 팔에 힘을 더욱 주었다.


몇 cycle을 돌렸을까. 손에는 온기가 한 움큼 느껴졌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심장에서부터 인위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이 피는 충분한 힘과 방향성을 잃었으며, 이제 더 이상은 살아있는 피가 아니라는 걸. 


그만해도 되겠다는 교수님의 말을 듣고 같은 조원들과 잠깐 쉬러 가는 도중 서로 나눈 의미 없는 말들과 애써 꺼낸 가벼운 이야기들이 병원의 차갑고 어두운 공기로 사라진 기억이 난다.


응급실로 향하는 좁고 긴 통로


실습을 시작하고 나서 내가 학생이라는 걸 어느 때보다도 오롯이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긴 밤 동안 계속해서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 더 깊이, 더 빠르게 했어야 했나. 아니면 하는 도중 점점 빨라졌다던가 힘이 빠졌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했다면 돌아올 수 있었을까? 글을 쓰는 도중에도 자꾸만 그 상황이 눈앞에서 영화처럼 다시 펼쳐진다. 나는 그때 나의 등 뒤로 살며시 돌아가 시간을 멈추어 놓고 다시금 꼼꼼히 내가 해야 할 일을 살펴보는 상상을 한다.


깊이는 5cm, 속도는 분당 100~120회로, 충분히 다시 피가 들어올 수 있게끔 공간을 내주면서.




토혈을 주소로 온 내 또래 남자 환자가 있었다. 밤의 응급실에 20대 남자가 토혈로 오는 경우라면 왠지 술을 과하게 먹고 토를 하다 식도가 찢어져서 그렇겠거니 하고 차트 기록을 보는데, 완전히 빗나간 생각이었다.


위암으로 위를 몇 번이고 자르고 붙인 환자였다. 살은 두터운 부분이 없어 앉아 있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암환자들은 항암제나 각종 약들의 투약 용이와 채혈을 위해 케모포트라는 것을 삽입한다. 케모포트에 바늘을 넣어 채혈을 하고, 팔의 동맥에서도 채혈을 하는데 , 환자의 몸에 바늘을 찌를 때마다 보호자인 어머니는 신음소리와 함께 벽을 향해 돌아섰다. 정작 환자는 통증에 이미 둔감해진 듯 보였지만, 그래서 가슴이 더욱더 아팠다.


차트에서 보는 몇 줄과 실제 환자 사이의 괴리감이 어느 정도 좁혀졌다고 생각할 때 즈음 나를 비웃듯 다시금 넓어지는 이 거리감이 언제쯤 익숙해질지 모르겠다.



19~22주까지는 지난 학기에 실습했던 산부인과를 다시 한번 실습했고, 임상의학 종합평가를 준비하는 기간이었습니다. 산부인과에서 새롭게 느끼고, 또 남겨두고 싶은 이야기들은 앞의 글에 조금씩 덧붙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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