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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Oct 07. 2019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Week 25, 26. 심장내과 실습

제목이 좀 뜬금없다. 심장내과 실습을 도는 2주 동안은 어느 과보다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이상하게도 실습을 하며 드는 생각이 별로 없었다.


글은 쓰기로 했는데, 무얼 써야 할지 고민하다 요 며칠 전에 개봉한 영화 조커를 봤다. 대충 고담시에서 광대로 살던 아서가 토마스 웨인(배트맨 아빠)을 비롯한 기득권층에 분노를 느끼고 도시를 혼란에 빠뜨린다는 내용이다. 아서는 조커가 되어 모두가 알듯이 향후에 배트맨을 영화 몇 편에 걸쳐서 괴롭히는, 본인 스스로의 목적에 매우 충실한 삶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조커에게 공감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두 편으로 나뉜다는데 난 자꾸 다른 생각이 났다. (히어로 영화 최초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만큼 작품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무엇이 조커를 계속해서 그토록 움직이게 했을까?



그러니까, 사람은 대체 무엇으로 살아가는 걸까?



할 일은 많은데 생각은 어째 점점 쌓여간다. 바쁘게 살면 생각이 쌓일 틈도 없을 줄 알았지만 오히려 정리할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왜 머리가 이렇게 아플까 잠깐 몇 자 적어보자면, 수련받기에는 아무래도 지방에 위치한 자교가 나을 것 같다가도 집인 서울 쪽 병원이 갖는 장점도 무시하지 못한다는 것. 예를 들면 인프라나 '집'에서 다닐 수 있다는 점 등등. 만약 수련을 받는다면 일뿐만 아니라 인간관계까지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란 두려움(밤을 새우거나 낮밤이 뒤바뀌는 일은 정말 자신이 없는데ㅠㅠ 상상만 해도 머리가 멈추는 것 같다). 의사 말고도 다른 쪽 진로도 관심이 있는데 제대로 알아보려면 접근에 시간 및 공간적 제약이 있다는 점. 일단 실습을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도 부족. 환자를 많이 보지 못해서 오는 아쉬움과 그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은 나에 대한 실망감.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란 걱정.


의식의 흐름에 충실히 적어놓으니 궁상스럽긴 하지만 조금 차분해지는 기분이다.


피투성(被投性, 던져짐)과 기투성(企投性, 던짐을 계획함)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그저 세상에 던져젔고 자유롭게(그 또한 어쩌다 '발견'한 자유에 지나지 않는다)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 피투이며,  와중에 다시 자유의지로 다른 곳에 본인을 던지는 것을 기투라고 한다. 우연히 바이올린에 흥미를 느껴 그 분야에 열심히 정진하는 것(결과가 어떻듯)이나 혹은 알코올 중독으로 술독에 빠져 사는 것도 기투의 좋은 예가 되겠다. 그치만 뭐 이왕 던져젔으니 보람차게 살아가는 게 어떤 면에서든 낫겠지.




하늘은 이제 꽤나 서늘하며 높고 푸르다. 비가 한 차례 시원하게 씻고 지나간 세상은 눈이 시리다.


사람은 사람과 항상 마주치고 함께하기 마련이라서, 무엇을 경험하거나 대할 때에도 같이 있던 사람과 연관 지어 기억한다.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은 학생에게 특정 과의 교수님이 그날따라 적당히 잘해주었다. 하면 그런 사람 밑에서라면 수련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그런가 하면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하고 싶은 학문이나 과가 생겼지만 그 윗사람이 나와 잘 맞지 않더라도 나는 과연 견딜 수 있을까?



이런저런 문제에 대해 마침 외할머니의 수술이 있어 서울에서 내려오신 아버지에게 조언을 구해봤다. 아버지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3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신 분이다. 아버지는 내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하셨다.



처음에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편하지. 근데 그런 사람들은 모두에게나 친절해서 나중에 별로야. 오히려 나한테 처음에 툭툭대는 사람이 괜찮아. 이런 사람들은 믿음만 줄 수 있다면 훨씬 잘해줄 거야.



흐음, 그런 거 같기도 하네요.



직장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별의별 사람이 있어. 심지어 일을 시켜놓고 새벽에 전화를 해서 일을 확인하는 상사도 있더라. 아마 내가 못 미더워서 그랬겠지. 그래서 더욱더 열심히 했어. 지금은 아직까지도 그 사람이랑 연락하면서 가끔 소주 한잔 해. 가끔 만나면 본인도 그때는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모르겠다고, 그때 열심히 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하더라(웃음).



결국 더 열심히 했다라... 역시 아버지다운 대답이십니다.



아버지의 대답과는 별개로, 빠르게 지나가는 창 밖을 보면서 어쩌면 사람에게는 평생 볼 친구와 맛있는 음식만 있어도 충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비록 어디선가에서 왔지만 한 번 더 던져지는 것에 대해 주도권을 갖고 있다는 건 다시 생각해보니 신나는 일이다. 100살은 거뜬하게 살 텐데 굳이 지금부터 정해놓을 필요는 없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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