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1. 신장내과 실습(2)
어느 병원의 중환자실이 그렇지 않겠냐마는, 신장내과가 전담하고 있는 중환자들의 경우에는 이미 신장뿐만 아니라 심근경색, 폐부종과 같은 형태로 심장과 폐에까지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은 분들이 많다. 물론 중환자실이라고 해서 그런 분들만 있는 건 당연히 아니다. 5년 전쯤 시행한 방사선 치료로 인해 발생한 수신증(콩팥에 물이 차는 질환)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한 한 환자는, 해당 부위를 확인하고 처치한 후엔 드라마틱한 호전을 보인 적도 있다. 말 그대로 산 송장으로 병원으로 들어왔다가 제 발로 걸어 나간 케이스다.(방사선 치료의 후유증은 3~5년이 지난 후에 비로소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투석을 시작했다는 말은 이미 신장기능이 거의 못쓰게 되었다는 말과 같다. 만성 콩팥병의 단계를 나눌 때, eGFR(사구체 여과율)이 90보다 큰 상태를 정상이라고 하며, 15보다 떨어졌을 때를 투석 적응증, 즉 투석을 시작한다고 한다. 즉, 정상 신장기능의 약 17%도 기능을 못하게 되는 시기인 것이다. 이렇게 투석을 시작함과 동시에, 환자들은 이식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보통 신질환 환자들 중 투석까지 이르게 된 환자들은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영향을 끼치게 된 경우이다. 좋지 않은 식습관부터 낮밤이 뒤바뀌는 불규칙한 생활까지 얼핏 봐도 건강이 나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안고 사는 사람들. 망가질 대로 망가진 이들은 종국에는 기계에 몸을 맡긴 채 천장만을 보고 있었다.
대부분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급증하는 투석환자에 비해, 아직까지 신장이식에 대한 공급은 턱없이 부족한 편이다. 의료의 특수성은 여기서도 어김없이 등장하게 되는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 교실의 '시장 실패를 야기하는 보건의료의 경제적 성격'에 대한 글에서는 그 중 하나를 수요와 공급의 시간적 불일치로 설명한다. 무슨 소리일까? 간단하다. 신장이 투석환자들에게는 되도록 빨리 필요한데,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이 좋은 예시가 되겠다. (우리나라 보건의료에 대해서는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인공혈관 공급 사태도 언급하고 싶지만 그건 나중에 따로 다루도록 하겠다) 그래서 정부에서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이식 코디네이터와 같은 제도를 도입하여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뇌사환자에 대한 기준도 논란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뇌사란 글자 그대로 뇌의 죽음이 아닌, 심장이 멈춰 섬을 뜻한다. 기증은 사전 동의가 없으면 할 수 없고, 심장이 멈춘 그 순간부터 장기적출은 불법으로 간주된다. 관련 법령의 개선이 절실히 필요한 실정이다. 유럽에서 스페인의 경우는 장기이식이 굉장히 활발한데, 장기기증을 하길 원하지 않으면 원하는 것으로 모두 처리하기 때문이다. No가 아니면 Yes란 식이다.
의학을 공부하다 보면 지지적 치료라는 말을 참 많이 쓴다. 영어로는 supportive care인데, 어감이 상황에 따라 무섭도록 다르다. 수분 보충, 영양 보충만 잘해주면 큰 탈 없이 건강하게 회복되는 감기와 같은 질환에서 쓰는 말. 그리고 말기 신부전, 암환자나 호스피스 병동의 입원환자들과 같이 더 이상의 적극적 치료가 의미가 없는 분들에게 시행되는 치료를 일컫는 말.(물론 palliative와 같은 말도 있긴 하다)
이번 주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어차피 내가 아무리 공부를 하고 노력을 한들, 이게 과연 진정 의미가 있는 일일까? 어쩌면 나는 시간낭비를 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렇지만 이런 생각 와중에도 세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바삐 돌아가고 있으며, 분명 머지않은 미래에 내가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의심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괴로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