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민 Mar 06. 2019

기억하고 싶은 하루들

Week 1. 신장내과 실습(1)


실습 시작 이틀째.


처음으로 실습을 돌게 된 과는 신장내과였다. 주말 동안 월요일에 아침에 가자마자 칠 시험을 위해 부랴부랴 공부를 하긴 했지만,  환자분들, 교수님과 레지던트 선생님들 앞에서 느낄 긴장감을 덜어주기엔 참 많이 모자랐다.

 



실습을 시작하기 전 한 대학병원에서 외래진료를 본 적이 있다. 서핑을 하다 코뼈 골절이 의심되어 정밀진단을 위한 CT를 찍기 위해서였는데, 대학병원에서 의사를 보기란 참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 여하튼 이것 외에도 여러 일들을 겪고 나니 예전과 다르게 의사분들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생겼다. 마주하는 순간순간이 소중하고 신기했으며, 또 정말 감사했다.

 

첫날인 월요일은 오티 이후 소그룹 토의에서 다룰 환자를 각각 한 명씩 배치받은 후 신생검을 참관했다. 신생검은 신장 생검의 준말로, 신장 조직을 현미경으로 관찰해 진단을 정확히 내리기 위해 보통 실시한다.


생검은 국소마취제를 주사한 후 초음파를 이용해 채취침을 발사하는 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침을 찌르고 난 뒤엔 Saline을 뿌려 조직이 건조되는 것을 방지한다. 환자는 신생검을 벌써 3번째 실시하는 분이었는데, 예전에 MCD(미세변화콩팥병)로 진단받은 후 지속되는 단백뇨로 인해 내원한 케이스였다. 여기서 채취한 슬라이드에서 사구체가 잘 포함되어 있는지 확인한 후에서야 신생검은 끝이 난다.


그렇지 않다면 안타깝게도 한 번 더 찔러야 한다.


슬프게도 그렇게 되었는데, 그 후 보호자가 걱정된 얼굴로 우리를 붙잡았다. (보통 실습은 3-4명이 한 조를 구성한다.)


 “더 찔러야 하나요?”



4명 모두 서로를 두리번거렸다. 환자들은 우리도 의사로 본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이렇게 이를 줄이야. 어떻게 잘 넘기긴 했지만 기분이 묘했다.

 

둘째 날. 사실 오늘 글을 쓰게 된 건 다 오늘 있었던 일 덕분이다. 오전에 신장내과 회진 일정을 소화한 후, 담당 교수님의 외래진료를 참관하게 되었는데, 교수님이 무슨 질문을 하실까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호기심과 기대감이 다행히 좀 더 컸다. 기대만큼 외래진료는 정말 흥미진진했다. 주로 교수님은 평소대로 진료를 보시고, 나는 옆자리에 앉아 마우스가 움직이는 대로 눈을 열심히 움직였다. 그러다가 환자 두 세분마다 질문을 갑자기 던지시는데,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재미있었다. 환자 다리를 걷어올리시고 이게 뭘까? Lab상에 P수치가 올라갔는데 이건 왜 그럴까?


가장 기억에 남았던 환자는 젊은 나이에 신이식을 받고 F/U 하는 분이었다. 여느 환자분들과는 다르게, 진료실에 들어오시면서부터 적극적인 태도로 진료를 받으셨는데, 본인의 현재 혈액수치를 통한 정확한 몸 상태, 복용하는 약제에 대한 구체적인 것, 더 세세한 것까지 정말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셨다. 환자분이 나가신 후 교수님은 내게 저 환자가 왜 저렇게 적극적이고 말이 많은가에 대해 알고 있냐고 물었다. 신장이식을 받은 만큼 본인도 공부를 많이 해서 그렇다고 하시면서, 나보다도 훨씬 잘 알 거라고 하셨다.

 

한두 시간여의 외래 참관 이후 오후에는 담당 교수님의 회진 일정에 동행하게 되었다. 회진은 3층에 있는 신장내과 입원병동에서부터 시작해 계단을 올라가며 5층에 있는 ICU(중환자실)까지 이어지게 된다. ICU 환자분들 중 신장내과에서 담당하는 분들은 이미 말기 신부전이 와 다른 장기까지 영향을 많이 미친 상태이다. 일반적인 투석으로는 몸 상태를 감당할 수 없어, CRRT라는 투석 방법을 써 숨을 붙여 놓는다.


 아침에 있던 회진처럼 일반병동에서 계단을 올라간  ICU 발을 들여놓은 순간이었다.

 "어레스트입니다!"

 

확인하려 했던 바로 그 환자가 눈앞에서 죽음의 문턱을 드나들고 있었다. 멍했다. 분명 내 뒤에 있던 레지던트 선생님들 모두 순식간에 환자의 몸 위에 올라서 있었다. 코드 블루(우리 병원에서는 파랑새라고 한다). 아까까지 왱왱거리는 기계음밖에 들리지 않던 곳은 순식간에 에피네프린을 외치는 고함 소리와 바삐 뛰어다니는 발소리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매일 중환자가 넘쳐나는 대학병원에서 이런 일은 일상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인지하고 있었지만, 눈으로 직접 지켜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분명 드라마, 영화에선 수백 번도 더 봤지만, 무서웠다. 졸업까지 이제는 2년도 남지 않았는데, 내가 환자의 생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첫 번째 서약이 "Do no harm"인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대문사진 출처 : https://hbr.org/2014/12/code-comfort-a-code-blue-alternative-for-patients-with-dnrs




이전 01화 반가운 2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