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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역띠 Nov 09. 2021

조금 외로워도 괜찮아

_흐르는 모든 것들을 위한 위로




가끔 인생이 너무 그냥 흘러가 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먹고 남은 라면 국물을 수챗구멍에다 따라 버리듯, 남은 인생이 그저 흘러가 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금연, 저축, 다이어트, 자격증 몇 개… 다이어리 맨 앞장을 빼곡히 채운 한 해의 목표들이 비웃듯 말끔하다. 연말이 되어서야 연초에 다짐했던 일들을 겨우 떠올리고선, 내년엔 꼭, 작년 이맘때 했던 공허한 약속들을 올해도, 똑같이, 다시 하고 있다.


친구 녀석이 또 결혼을 한다. 연말이 다가오면 너 나 할 것 없이 결혼을 서두른다.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듯. 세상 화려한 홀에서, 세상 누구보다 행복해 보이는 친구의 표정을 건너다보다 옆자리에 앉은 또 다른 친구의 표정이 문득 궁금해진다. 녀석은 비혼주의자다.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일직선의 표정으로 녀석은, 친구의 결혼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온갖 행복이 흘러넘치는 표정과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는, 다소 대비되는 두 표정을 보며 나는, 소위 말하는 인생의 순서에 대해 생각한다.








태어나서, 자라고,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전셋집을 구하고, 대출금을 갚고,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가 자라고,

열심히 돈을 모으고, 내 집을 장만하고, 아이는 계속 자라고, 학교를 졸업하고,

이제는 아이라 할 수 없는 아이가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집을 떠나고, 그리고…

…그리고 또 무엇을 해야 하나.


하고 싶은 일은 하나 둘 기억나지 않고, 해야 할 일만 곱씹으며 사는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반복해 온 일은 오직, 꼬박꼬박 나이를 먹는 일뿐이었다.







가끔 나 하나도 너무 많은 것처럼 버거울 때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럴 때면 나는 견딜 수 없이 외로워졌다.


외로움으로 마음은 자주 허기졌다. 마음이 허기질수록 나는 사람으로 그 허기를 채우려 했고, 허겁지겁 집어삼킨 관계는 결국 체하듯 목에 걸려 모든 걸 게워내게 했다.


모든 걸 게워낸 뒤엔 이전보다 극심한 허기가 찾아왔고 나는 또 다시 새로운 관계를 갈구했다. 피상적인 관계는 내면의 공허함을 채워주지 못했고, 헛배만 잔뜩 불렸다. 주변엔 늘 사람이 많았으나 마음 한 켠엔 늘 외로움과 불안함이 자리하게 되었다.



...

...

...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해 보기도 했다.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그동안 못 해 본 일들을 하나 하나 해 나가는 동안 잠시 간의 충만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기쁨이 지나간 자리에는 어김없는 허기가 찾아왔고, 나는 다시, 견딜 수 없이 외로워졌다.






어쩌면 우리의 외로움은 우리 힘만으론 어쩌지 못할 저 너머의 것일지 모르겠다.

사람이기에 우리는 관계를 갈구하고, 사랑을 바란다. 사람이기 때문에.


타고난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인생은 한 방향으로 흐른다.

인생은 늘 결핍된 곳을 바라고 흐른다.


외로움을 느낀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찾아오는 허기처럼 사랑과 관심이 고픈 일 역시 자연스럽기에.

그저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면 될 일이다.








완연한 가을이다.

괜히 가을 탄다는 말이 있겠느냐마는, 울적한 기분이 비단 가을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다. 주절 주절 늘어놓은 까닭은 결국, 우리 모두에겐 대화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는 것. 혼자 잘해 나가는 것 같다가도 가끔은 휘청일 때가 있다고, 나도 결국, 당신과 같다는 말이 하고 싶어서다.



그리움, 외로움, 후회와 권태… 온갖 감정들이 파도처럼 밀려들 때

삶의 폭우가 갑자기 나를 덮쳐 도저히 혼자선 버틸 수가 없을 때


사람 소리가 그리워지고 위로가 필요하다면 그때,

망설임 없이 나를 찾아와도 된다는 말이다.




* 마지막 문장은 ‘민하슬’님의 블로그에서 차용하여 변형하였습니다. :)

_민하슬, ‘누군가의 품이 그리워지는 날이면’

https://m.blog.naver.com/hasuel030206/222549332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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