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이 다른 음악을 했던, 참으로 멋진 음악을 했던, 명반 중의 명반을만든
#1.
초등학교(사실, 그때는 국민학교) 4, 5학년 때쯤이었으리라.
고음이 잘 올라가야 노래 잘 하는 가수라고 믿기 생각했던 형이,
어떤 음악(아마도 "이치현과 벗님들"의 음악이었던 것 같다)을 듣다가 말한다.
형: 이 노래 무슨 음까지 올라가지?
나: 라!
형: 라? 진짜야? 니가 그렇게 어떻게 알아?
그러더니 "그 음"을 "아~~~~~~~~~~" 라고 부르면서 피아노까지 가서,
피아노의 "라"를 치며 "라"임을 확인한다.
형: (깜짝 놀라며) 너, 어떻게 알았어? 지난 번에 미리 해봤어?
나: (놀라는 형보다 더 놀라며) 형은 왜 몰라? 형은 노래 들으면 무슨 음인지 몰라? 정말?
그때까지 난 누구나 다 음이 들리는 줄 알고 살아왔었고(그렇기에, 누구한테도 그걸 물어본 적도 없었고),
그것을 못 맞추는 형이 너무 신기하게 느껴졌었다.
서로에게 서로가 놀라던 그날.
음을 맞추는 내게 놀란 형은 잘 못 믿겠다는 듯이,
그 뒤 여러 곡을 들려주며,
여러가지 음을 테스트했고,
난 형의 대략 1시간 가량되는 그 집요한 테스트 끝에,
"음을 맞출 줄 아는 아이"로 인정 받으며 그 테스트를 간신히 끝낼 수 있었다.
#2.
친구들과 모여 놀거나, MT에 가서 통기타 하나만 있을 경우,
난 잘 못치는 실력이지만 기타는 늘 내 차지였다.
악보없이, 그들이 부르고 싶은 곡들을 칠 수 있었으니...
난 친구들, 선배들이 쏟아내는 "리퀘스트"들을
반주해주는 "반주 기계"가 되어,
몇시간이고 MT의 밤을 지냈던 기억이 난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곡들만 연주할 수 있다면, 몇시간이 아니고 며칠도 기쁜 마음으로 쳤으리라.
그러나, 그건 애시당초 불가능했던 일.
나랑 음악적 취향이 안 맞는 선배들(특히나, 신입생인 나와는 대여섯살 이상 나이차이가 났던 복학생 선배님들)의 취향에 맞춘 선곡들을 연주하는 것은,
그리 기꺼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3.
친구를 통해 속주기타로 인디 쪽에서 유명한 친구를 소개 받았고,
그 친구 앞에서 "왠만한 곡은 악보없이 코드를 잡고치는" 나를 보여줄 기회가 있었다.
그 친구가 말하는 몇 곡을, 바로 코드를 잡고 치자,
그 친구는 내게 별명을 만들어줬고.
난 그날부터 그 별명으로 불리우게 됐다.
오브리 킴.
#4.
친구 집에서 친구와 같이 기타를 치며 놀고 있었는데,
다른 친구가 새로이 사귀기 시작한 여자친구를 데리고 왔다.
그 여자친구 앞에서 친구들이 "리퀘스트"하는 많은 곡들을 기타로 연주했고,
그 여자친구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가 매일 밤 따로 짬을 내고 시간을 들여서, 그 많은 곡들의 코드를 싹다 외워서 칠 것이라는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그리고 10여년쯤 지났을 때였을까?
더이상 "친구+그의 여자친구"가 아닌 "부부"가 된 그 친구들의 집들이에 초대되어 갔고,
그 집의 옥상에서 고기를 구어먹고 난 뒤, 친구들의 요청으로 친구들이 요청하는 곡들의 기타 반주를 하기 시작했다.
몇곡을 하고 나니, 이제는 "제수씨"가 된 예전의 그 여자친구가 말을 한다.
"우와~~~~~~ 너, 지금도 밤마다 맨날 코드 적어서 외우는구나?"
발매일: 1993.11
작곡: 고찬용
작사: 고찬용
편곡: 정원영
위글과 어울리는 음악일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엔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낯선 사람들"의 음악을 소개하려 한다.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팀.
낯선 사람들 1집, 2집, 그리고 고찬용씨의 솔로앨범들,
내가 명반 중의 명반으로 꼽는 앨범들이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2회에서 "거리풍경"이라는 곡으로 대상을 수상한 고찬용씨가,
본인의 독집이 아닌, 팀을 만들어 데뷔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이나 기대를 했었고,
바로 이 팀이 낯선 사람들이다.
고찬용, 신진, 이소라, 허은영, 그리고 백명석.
한국의 맨하탄 트랜스퍼라고 불리웠던 것 같은데...
음, 굳이 그렇게 표현하지 않아도 "낯선 사람들"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훌륭한 음악을 했던가.
93년, 혹은 94년...
대학로의 학전 소극장이었던 것 같은데,
낯선 사람들과 조규찬씨가 하나의 팀을 이뤄 같이 며칠간 공연을 했고,
난 없던 용돈을 털고 털어 몇 번이나 갔던 생각이 난다.
낯선사람들과 조규찬과의 콜라보 공연,
마치 한팀인 것처럼 환상적인 화음과 호흡을 보여줬고,
이소라씨는 이때부터도 이미 엄청났었지.
백명석씨, 신진씨, 허은영씨도 어마어마했고.
그 때의 그 감동이 너무 커서,
그 콘서트 엽서를 몇년 전까지도 가지고 있었지.
무엇보다 난 고찬용씨를 참 좋아했는데,
공연에서 봤던 고찬용씨의 기타 실력에,
넋을 놓고 고찬용씨 손만 쳐다봤던 생각이 난다.
어떻게 이렇게 기타를 칠 수가 있지?
게다가 보컬을 하면서.
지금 봐도 참 멋지다.
결이 다른 음악을 했던, 낯선사람들의 그때 그 소극장 공연의 모습 하나하나가,
아직도 뜨겁게 내 가슴에 남아있다.
이십여년이 넘었음에도...
이것이 바로,
음악의 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