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방송작가 일을 방황하지 않고, 정착하게 된 시점은 굉장한 우연이다.
사실 보도국 작가로 10년 이상이 지난 지금, 아니 15년 언저리 정도인 지금,
나에게 방송 작가 일은 하느라 마느냐 기로에 놓인 시점이었다.
왠지 모를 조기교육의 영향인지,
언제나 운명을 더 믿는 나였기에 촉박하게 조급해하지도 않았지만,
방송작가가 처음부터 원하던 나의 직업이 아니었기에,
20대의 나의 방황을 머리로 기억해내는 나는
그 당시 적지 않은 방황이었음은 분명하다.
2000년대 초반, 방송작가의 환경은
이성적으로 일하기 힘들었던 환경도 있었고,
말도 안 되는 상하 조직,
말도 안 되는 근무시간,
말도 안 되는 임금 수준,
지금 생각해보면 숨이 턱턱 막히고 답답할 지경이었다.
일명 막내 작가라고 불리는 시절을 지나고,
이제 자기만의 짧은 원고, 대략 5분에서 10분 사이의
VCR 원고를 쓰는 서브작가로 입봉 하는 시점,
그 시기가 내가 정말 방송작가로 계속 가야 할지,
아니면 이 고비에서 그만두어야 할지가 당시에는 많이 판가름 나는 시기였다.
일주일에 하나 정도의 10분 내외의 짧은 구성물을 쓰는 작업,
당시 그런 입봉 프로그램은 대부분 아침방송과
저녁 6시 7 시대의 종합 구성물 프로그램이 대부분이었다.
아마 그 현실은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아침 방송의 시사 꼭지를 담당했다.
시사적인 것 중에서도 그 주의 가장 핫한 사건 사고였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방송을 내보내는 프로그램이었지만,
쇼킹한 사건이 일어난 곳이면 당일로 부산 혹은 제주도까지 내려갔었다.
지금은 그게 흔하고 쉬운 일이지만,
15년 전 과거는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만약 목요일 마지막 시사를 마치고도
그날 정말 쇼킹하고 방송으로 내보내야만 하는 사건 아이템이 터지면
급하게 후다닥, 하루 혹은 이틀 일정이라도 엎어지기가 다반사다.
주요 지상파 방송국의 아침방송은 주로 외주 제작사들의 서바이벌 게임같이 이루어지는데,
주요 제작사들은 매주 그렇게 전쟁을 치렀다,
5일의 프로그램을 6개의 제작사가 돌아가면서
그 주 시청률을 1위 하면 그 제작사 작가들 피디들에겐 일정의 인센티브가 주어지고,
꼴찌 한 제작사는 한주 쉬는 그런 서바이벌 시스템으로 돌아갔다.
한주를 쉬면 당연히 그 주 원고료는 없다.
구성작가는 주로 방송 편당 원고를 받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러니 제작사의 피디 작가들은 아이템에 누구 보타 치열하고,
순발력에 누구보다 열을 올렸던 듯싶다.
그래서 입봉 작가들이 그 시기를 가장 트레이닝을 많이 한 시기라고 기억하기도 한다.
견디고 버티고 잘 해내면 진정한 작가의 세계로 입문하는 그런 시기 말이다.
아침 생방송 종합구성물을 만드는 당시 주요 제작사들은 매주 그렇게 전쟁을 치렀고,
작가들은 전력을 지원하는 핵심 전투요원이나 다름 었었다.
당시 나는 너무 힘들고 이해 안 되는 상황에서
멘털을 부여 잡기가 너무 힘든 하루하루였다.
주변에 나의 친구들은 당시 대기업이나, 번듯한 회사에 들어가
나보다 훨씬 좋은 대우를 받는 것 같아 보였다.
휴일도 제대로 즐길 수 없는 나름 창의적인 직업군이라..
더더욱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밖에서 보는 친구들 혹은 지인들의 시선은 그냥 거대하고 멋져 보이는
방송작가였지만, 난 스스로 계속 '빛 좋은 개살구'라고...
중얼대기 일쑤였다.
그러던 와중에 운명은 나의 편인지,
힘들고 열악한 외주 생활, 몇 개월 만에 지상파 보도국 제의를 받았고,
그 우연치 않은 기회를 나는 지금까지 업으로 생각하며 잘 이어가고 있다.
당시 정글 같은 외주제작사를 벗어나,
그냥 날 지켜줄 울타리가 큰 회사라는 느낌에 난 그 기회를 잡기로 했고,
기회는 나를 선택해줬다.
지금은 외주 제작사 환경이 훨씬 좋아지긴 했다.
대우는 어쩜 회사원 같은 지상파 방송작가들보다 더 좋을 수도 있다.
근무환경도 더 유연하고,
그러나, 나의 라이프 스타일과 가치관엔 지금의 보도국이
방송작가의 끈을 길게 붙잡아줄 수 있는 우연한 기회였던 것 같다.
순간의 판단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
세월을 흘려보내고, 이 길을 15년 이상 걷고 있는 지금,
진리임을 또 한 번 깨닫는다.
우리는 어떤 순간에 어떤 기회가 찾아올지 모른다.
그 기회가 나에게 힘든 순간이든, 즐거운 순간이든
내 인생을 좌우할지 모름을 명심하자
< 오늘의 속삭임>
멀리 출장 가는 게 힘들다고 남들은 생각할 수 있으나,
나에게는 무척 고마운 일.
평소 궁금한 식당을 일부러 찾아갈 수도 있지만,
업무를 마치고 메모해 둔 식당을 찾아가는 즐거움은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
- '경양식집 탐방기' -조영권 (피아노 조율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