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에게 섭외란?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할까?
뻔하게 뗄래야 뗄 수 없는 업무? 능력의 척도?
내가 이제까지 섭외한 세월을 돌이켜보면,
나는 그냥 세 단어로 정의해 보겠다.
설득, 관계, 복리
섭외할 대상을 설득하고, 공감대 형성과 친화력으로 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들이 자신만의 자산처럼 불어나면 나만의 섭외 리스트는 재산이 된다.
그래서 결국 꾸준한 섭외는 엄청난 차이가 나는 복리 효과로 나타날 수 있다.
처음 방송작가 일을 시작하면, 일명 스크립터라는 호칭을 쓴다.
막내작가이기도 하지만, 방송을 만들어 내는 업무 중에
자료조사 일을 주로 하기 때문에, 스크립터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다.
방송국에서 촬영본을 그대로 받아쳐주는 친구들 또한 스크립터라는 말을 쓰긴 하지만,
실제로 막내 방송 작가들을 과거에는 스크립터라 많이 부르곤 했다.
막내작가들은 자료조사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거나, 업무에 똘똘해지면,
섭외 단계로 들어간다.
서브작가와 메인작가의 오더로 어떤 전문가를 단순하게 섭외하는 수준부터 시작한다.
서브와 메인이 연락처나 컨택 포인트를 알려주는 경우도 있고,
그게 또 익숙해지면 어느새 본인이 섭외를 직접 나서기도 한다.
혹여 아래에서 섭외가 안되면 서브와 메인까지 위로 점점 일이 올라오는 것이고,
혼자 깔끔히 미션을 성공하기 시작하면 이제 믿고 맡기는 후배 작가가 되는 것이다.
섭외가 작가의 능력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건 방송가에선 자명한 현실이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사람을 화면에 불러내거나,
이슈의 중심에 있는 사람을 컨택하거나,
엄청난 피해와 고통에 시달리는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
화면 앞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낼 수 있도록 해주거나,
정말 화면에서 부르기 힘든 그러나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화면에서 볼 수 있게끔 해주는 능력이
해당 프로그램 작가의 섭외 능력에 달려 있다.
섭외가 '운발'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래도 한 섭외한다는 선배, 동료, 후배 작가들을 살펴보면,
진심으로 싹싹하고 밝은 성격들이며,
순간적으로 필요에 의해서 사탕발림 소리를 하는 게 아니라,
꾸준하게 진심으로 공감해주고,
괜찮은 연사들을 자기 사람들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예의를 갖춘다.
물론 각자의 호불호와 취향도 있다.
방송작가가 '서비스업'과 같다는 말이 이런 과정에서 나올 법 하지만,
실질적으로 참 괜찮고, 도움이 되고, 방송에 필요한 분들은
그렇게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프로그램에 포진해 있냐는 것이
연예인이 분포되어 있는 예능 프로그램만이 아니다.
보도, 시사, 교양도 마찬가지 논리다.
나 또한 지금도 여전히 섭외를 하고 있다.
기사에 닮을 해당 내용 팩트 체크를 위해 전문가들에게 여전히 자문과 검증을 받고,
사람들이 관심 가질 만한 이슈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 사례자를 섭외하기도 하고,
관련 단체나 다양한 직군들을 섭외하기도 한다.
내가 모르는 전문 내용이 나오면, 각 분야별로 언제나 성심성의껏 알려주시는
연사들이 있기도 하다. 그들에게 배우는 '학생 모드'가 돼서 내용을 파악해간다.
15년 차 언저리인 나에게 섭외가 굉장한 부담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오랫동안 해온 나의 섭외 리스트 영역에서는 여전히 즐겁게 전화를 오고 갈 수 있고,
새롭게 시도되는 힘든 섭외에서는 또 다른 자극과 공부가 되기도 한다.
이제는 누군가를 어떻게 섭외해야 하는지 지도가 기계적으로 그려진다.
사실 이건 솔직하게 말하면 연차가 어렸을 적부터 나의 재능이기도 한 것 같기도 하고 ^^:
그러나, 언제나 섭외가 해피엔딩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몇 번을 설득해서 확답을 받았지만,
인터뷰에 응하기로 한 전날 밤에 갑자기 마음이 돌변한 사람도 있었고,
인터뷰를 하고 나서 방송이 나간 후 자신의 불만을 엄청 토로해
섭외 A/S에 힘든 감정 노동을 한 적도 있었다.
심지어 촬영을 하고 나서도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겠다며
방송을 내보내지 말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결국에 그들의 힘든 마음에 타협해주긴 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맞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옛날 생각들을 곱씹어 보니,
숱한 여러 유형들이 생각난다.
나의 동동거림과 분주함도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래도 섭외의 복리를 누리고 있는 지금,
꾸준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기도 하고,
집요함이 있었기에 섭외 타율이 나쁘진 않았던 듯하다.
섭외의 해피엔딩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내가 방송 작가 생활을 하는 동안의
섭외 엔딩은 부디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되었음 한다.
Forever~
<오늘의 속삭임>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어려운 시기가 아주 많겠지만,
도움을 요청할 곳이 있다면,
견뎌나갈 수 있단다.
'작은 아씨들' - 루이자 메이 올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