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 언니들이 사라진다...

by 뉴작

지금은 남자 방송작가들이 어느 정도 눈에 띄지만,

과거에는 정말 방송작가의 대부분은 여성이었다.

지금도 방송작가 중엔 여자가 더 많다.


나에게도 언니들이 참 많았던 때가 있었다.

여자 형제가 없는 지라, 사회 초년생 때,

언니들을 대하는 게 어렵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그랬다.

성격들이 모두 다 예측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행동 반응을 예측 못할 때가 번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거 아닐 수 있던 일도,

당시엔 왜 그리 혼자 상처 받기도 하고,

혼지 열 받기도 했는지,

나이 먹어 생각해보면,

지금은 기분 좋게 추억할 수 있는 순간들이다.


그래도 선배 작가인 언니들이 많았던 시절엔.

일에 있어서나 인생에 있었서나

막막하거나 막히는 일들이 생기면,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허심탄회하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내 눈에 멋져 보이는 메인 작가 언니들의 모습에

나의 그런 날을 꿈 꾸기도 했었다.


옛날이 어쩌면,

지금보다 메인 작가들의 진정한 프리랜서다운 근무환경을

보장해주었는지도 모르고,

그런 형태의 일명 왕언니 작가들이 많았다.


아침방송이나 저녁 방송 시사종합 교양물을 진두지휘하는

왕언니들은 외주 제작사를 돌며 회의와 컨트롤만 해주는 형태로,

시간 대비 생각보다 많은 월급을 받았었고,

프로그램도 3개 이상 하는 언니들도 많았다.

나와 인연이 있었던 왕언니도 그러했다.

그땐 일명 그런 월천 작가 언니들이 우리 어린 작가들의 로망이었다.


또 다른 인연이 있었던 왕언니는

동아방송대학 기타 방송 관련 전문대학에 출강을 나가시기도 했다.

방송과 함께 겸임 교수직을 같이해서 그런지,

왠지 교수님같이 좋은 말을 많이 해주었던 언니 었다.


따뜻한 언니들도 많았다.

밑에서 올라오는 일이 짜증 날 법도 한데,

막내들 일은 좀 더 많이 도와주고, 배려해 주었던 선배 언니.

심드렁하고, 일이 안 풀리고, 짜증 날 때,

매콤한 떡볶이 사 먹여 주던 언니.

집으로 초대해 저녁상을 차려주었던 언니.

당시 우리 월급으로 사 먹기엔 사치스러웠던

맛있는 음식을 많이 사주시던 언니.

방송작가를 계속해야 하는 것이 맞나 할 때,

한강을 데려가 캔맥주와 치킨을 사주었던 언니.

배운 게 무섭다고 나도 한때 후배들 데리고 한강을 많이 데리고 가긴 했다.

한강에서 먹는 캔맥주와 치킨 그리고 사발면은

내 방송작가 인생에서 참 의미 있는 음식 중 하나다.


그렇게 나에게도 무수한 언니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언니들이 지금은 방송 바닥에서 많이 사라지셨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 아이들과 함께 유학을 떠난 언니.

드라마 작가의 꿈을 위해 드라마 작가로 전향한 언니.

글 쓰는 기술을 다른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언니.


물론, 각자 나름 인생의 이유들과

방송보다 더 좋은 일을 하는 언니들이지만,

사라진 언니들이 문득 그리워지는 날이 있다.


나도 이제 어느덧 방송작가 15년 차 언저리를 넘어가고,

나이도 40대를 지나가고 있으니,

더더욱 내 위에 언니들은 아래보다 손가락으로 꼽힐 만큼 남은 것 같다.


방송작가가 프리랜서라서

어쩌면 결혼과 육아에 자유스러울 수도 있지만,

반대로 지속된 방송작가 생활이 어느 직종보다 유지하기 힘들 수 도 있다.

그런 언니들을 봐 왔고,

나도 그런 언니 중에 한 명이기도 하다.


내가 상품이기에, 나 스스로 견디고, 싸우고, 이겨야 한다는 것을...

나 스스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언니다운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도 출산과 육아에 열중하며,

고용에 있어서 무엇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 후배들도 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언니들이 오래도록 남아줘야...

나도 오래도록 남을 수 있다는 희망도 갖게 되는 그런 마음이 드는 날이 많아지고 있다.

또, 어느새 나보고 오래 남아 달라는 후배들도 점점 더 생겨간다.

그들도 나에게 내가 느꼈던 똑같은 희망을 얻고 싶은 것일 거라 생각이 든다.


언니들이 많이 사라졌다고 느껴지는 요즘.

언니들이 많이 그립다.

요즘 들어 더욱 그렇다.



< 오늘의 속삭임>


이야기는 힘이 셉니다.

지난 상처를 치유하거나, 미래에 대한 불안을 다독이며,

무엇보다 우리를 자아의 울타리 밖으로 꺼내

다른 세계로 즐거이 나아가게 만듭니다.

읽는 동안, 우리는 현실과 직면할 용기를,

다르게 시도해 볼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질문에 답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나와 다른 사람의 태도를 배우고,

보편적인 통찰을 발견합니다.

다른 이들도 나와 닮은 실수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서로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고,

시스템을 바꿔볼까 궁리하기 시작합니다.

타인의 고민을 들여다보다가 내 해답을 찾습니다.


"멋있으면 다 언니" - 황선우 인터뷰 집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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