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싸움'이란, 물리적인 힘겨루기 었다.
쉽게 말해, 준혁이와 시호가 싸워서 이긴 녀석이 승자다.
이들의 싸움 무기는 자신이 갖고 있는 육체적인 힘이다.
만약 준혁이가 시호에게 이겼다면,
보이지 않게 준혁이의 친구들이 시호의 친구들보다 기세 등등하게 걸어 다니게 된다.
눈빛과 표정도 자신감이 넘친다.
녀석들에게 승자는 보이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 싸움은 '갈등'이란 말로 변화된다.
물론 어른이 되어서도 물리적 싸움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보편적으로 어른들의 싸움은 '갈등'이라 표현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세상에 태어나서 평생 물리적인 힘겨루기 싸움을 해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떤 포인트에서든지 '갈등'을 안 겪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 대학이라는 사회 집단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
여럿이 하는 조모임 과제에서도 갈등을 겪어본 사람이 있을 터이고,
처음 입사한 첫 직장에서 상사, 동료에게도 갈등을 겪어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더욱 사회생활을 하면서 갈등은 다양한 형태로 다양한 곳에서 터져 나온다.
어릴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고 대상은 언제나 사람이다.
어릴 땐 싸움은 눈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였다면
지금은 누구랑 싸우는지 모를 수도 있고,
심지어 이게 내가 이긴 건지, 진 건지 알 수 없을 때도 있다.
내가 일하고 있는 방송국에서도 곳곳에 '갈등' 이 있다.
때론 사측과 싸우고 있는 눈에 보이는 직원들의 '갈등'도 있고,
협업이 중요한 방송일이기에 업무상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들과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갈등' 도 있다.
때론 숨기고 싶은 상사와의 '갈등'도 있고,
하고 싶지 않은 동료와의 '갈등'도 있다.
그리고 그러고 싶지 않아도 하게 되는 후배와의 '갈등'도 있다.
이렇게 '갈등'을 나열해서 적어보니,
누군가는 어느 대목에서 한 번쯤은 걸릴 법하다.
예전에 혹은 지금도 아님 미래에 격을 수도 있을 법하다.
그럼 이런 '갈등'을 이길 수 있는 기술이 있을까? 생각해본다.
어렸을 땐, 내가 저 녀석의 약한 부위를 공격하거나,
아무 생각 없이 깡으로 끝까지 악물고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
확실한 기술을 세울 수도 있었고,
안되면 버티는 기술을 쓸 수도 있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나서 '갈등'에서 내가 이기거나,
아니면 해결을 해야 할 경우
기술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매번 생각이 되진 않는다.
때론 '갈등'에서 지고 나서,
기술을 터득한 적도 있었고,
기술을 여전히 알 수 없어서
여전히 '갈등'중인 것도 있을 것이다.
'갈등'의 기술을 얻기 위해
누군가에게 상담을 하고, 자문을 받기도 하고,
관계나 심리에 대한 책을 보기도 한다.
어떤 기술이 먹혀 들어갈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가끔 우린 '갈등'의 최전선에서
그렇게 '갈등'을 해체시키려 노력한다.
그러나, 참 나이 들수록 신기한 건
그렇게 사람들의 '갈등'이 눈에 보일 것 같으면서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속으론 세계 2차 대전이 일어날 만큼 감정선이 예민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교묘히 '갈등'을 잘 표출하지 않는다.
이게 사회생활의 기술일지는 모르겠지만...
최고의 기술은 남들에게 그 '갈등'을 들키지 않는 것 같다.
심지어 오히려 사이가 좋아 보이기도 하고,
어쩔 땐 둘도 없는 동지 같아 보이기도 하다.
지금 어른인 나의 눈의 '갈등'은 이런 모습으로 보인다.
그리고 최고의 기술은 티를 안내는 것이다.
여기엔 당연 인내심과 내공이 필요하다.
그래서 어른인 나에게 싸움의 기술은 쉽지 않다.
아니 어렵다.
그래서 항상 '갈등' 이 없길
그리고 스스로 '갈등'을 안 만들려 노력 중이다.
이게 '갈등'을 짐 어지고 있는 상태보다 쉽다고 생각되기 때문인 것 같다.
시한폭탄 같은 '갈등' 밭에서 여전히 매일을 살아가고 있지만,
폭탄을 제거하는 기술은 여전히 연마 중이다.
보이지 않는 싸움이 보이는 싸움보다 더 힘든 것임을 우리는 안다.
<오늘의 속삭임>
살다 보면, 모든 일에 변곡점이 찾아온다.
시대적 소명일 수도 있고, 개인적 변화일 수도 있다.
변곡점의 세찬 파동이 인생을 드높게 쏘아 올릴지,
바닥으로 처박을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인생이라는 함수의 변곡을 예감하고,
그 파고에 기꺼이 몸을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수평 그래프로 사는 삶이 평온한 것 같지만,
어쩌면 그런 삶은 삐 소리와 함께
벌써 생의 종지부를 찍은 상태인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것은 고유의 파동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양형 이유" - 박주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