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7. 녹화 중 프롬프터의 추억

by 뉴작


생방송, 일명 라이브로 하는 뉴스도

모든 기사가 라이브로 방송에 실시간 보도되는 건 아니다.

뉴스도 녹화를 하는 부분들이 있다.

내가 하고 있는 팩트체크 코너 같은 경우도 사전 녹화로 진행된다.

물론 뉴스가 보도되기 아주 전에 녹화를 하는 건 아니고,

뉴스 시작 전 1시간 전후로 해서 녹화를 해 놓는다.

녹화시간도 뉴스 길이만큼이나 그리 오래 걸리진 않는다.

아주 아주 가끔 가다가는 녹화를 해 놓고도

뉴스여도 그다음 날로 방송이 밀리기도 한다.


뉴스의 노출이 뉴미디어 포맷으로 바뀐 이후에도

녹화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다만 공간의 차이와 역할의 차이가 생겼다.


뉴스로 녹화되는 경우는

뉴스 센터 조정실에서 피디의 지휘 하에

모든 녹화가 이루어지므로,

나는 우리 코너 기자의 PT를 보면서

잘못 발음된 단어는 없는지,

혹은 CG(computer graphics)의 오타가 없는지 잘 살펴보면 된다.

내 눈과 귀로 검수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기계적인 시스템에 대해선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다.

뉴스를 총괄하는 센터가 아니라,

다양한 배경을 만들 수 있는 스튜디오들에서

기사 콘셉트에 따라 녹화가 이루어진다.

여러 가지 소품을 갖다 놓기도 한다.

뉴스센터에선 기자가 거의 100% 서서 PT를 진행했지만,

뉴미디어용에선, 기자는 때론 앉아서, 때론 서서 녹화를 하기도 한다.

아이템의 성격에 따라 분위기를 조절할 수 있다.

앉는 거나 서있는 거나 무슨 차이가 있나?

갸우뚱할 수도 있는 사안이지만,

기사의 내용에 따라 기자의 자세는 큰 차이가 날 수 있다.


기자가 읽는 기사 내용을 앞에서 프롬프터로

올려주어야 하는 부분도 생겼다.

'프롬프터'의 사전적 의미는 연극을 공연할 때 관객이 볼 수 없는 곳에서

배우에게 대사나 동작 따위를 일러 주는 사람을 뜻하지만,

방송에선, 말하는 사람이 대본이나 기사의 내용을 앞에서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장치를 말한다.


뉴미디어용 방송 녹화의 프롬프터는

뉴스를 총괄하는 센터가 아니라,

다양한 배경을 만들 수 있는 스튜디오들에서

기사 콘셉트에 따라 태블릿 피씨 패드에 어플을 깔고,

기사 텍스트를 담아 올려주는 형태다.

속도를 설정해놓을 수 있지만,

기자의 기사 호흡에 맞추어 터치로

속도를 어느 정도는 조절해 줘야 한다.

녹화는 기자와 호흡을 같이 하며 진행된다.

발음하는 글자 하나하나 더 세심히 오타를 신경 써야 한다.

뉴스센터 때보다 뭔가 나도 직접적으로 녹화를 같이 하는 기분이 든다.

녹화의 컨트롤 타워도 피디에서 영상취재기자로 바뀌었다.

그렇게 현재의 녹화 시스템은 변화했다.


무언가 기계들이 다 해주었던 녹화 방송의 자동화된 시스템에서,

요즘은 녹화가 왠지 모를 수작업이 가미된 느낌 때문인지,

과거 녹화물 프로그램을 했던 때가 문득 생각났다.


서브 작가 시절 잠깐 EBS 교육방송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다.

당시 프로그램 포맷은 KBS의 도전 골든벨과 비슷했다.

다만, 퀴즈 문제 내용이 경제 문제에 국한돼 있었던,

고등학생 대상 경제 퀴즈 프로그램이었다.

녹화는 해당 고등학교에 찾아가서 이루어진다.

하루에 두 회분 녹화가 진행되기도 해

두 학교를 연달아 가서 녹화한 적도 있었다.

거의 녹화는 도전 골든벨과 마찬가지로, 학교 강당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그렇다 보니, MC들의 대본 내용을 일일이 큰 전지에 매직 유성펜으로 써서

준비하는 것도 일이었던 듯하다.

일명 종이 프롬프터다.

당연히 그 당시엔 어린 연차 작가들이 그것을 주로 담당했다.

전지에 줄이 그어져있지 않으니, 삐뚤빼뚤 써지지 않기 위해

종이를 칸칸이 접기도 했고,

큰 자를 대고 한 자 한 자 심혈을 기울여 썼던 기억이 난다.

글씨 크기도 너무 작지 않게,

필체도 또박또박, 녹화날 준비한 둘둘 말린 전지를 펴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그 노력도 생각난다.

조연출들과 MC들 눈높이에 맞춰 들고 서 있었던 그 팔 아픔도...

아마 지금도 야외 녹화를 하는 프로그램에선

어느 정도는 이 방법을 쓸 것이다.

이제 전지보다 큰 화이트보드 같은 칠판을 사용하겠지만...

녹화 전날 전지에 MC들의 대본 내용을 쓰던 그 시절이

요샌 문득문득 추억처럼 생각나곤 한다.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시간을 들여 써도,

그들이 말하는 건 찰나의 시간이었던 기억과 함께...

그래도 녹화가 끝나면 육체적으로 기진맥진했지만,

실수 없이 끝났다는 후련함에 안도했던 그 순간들도...

녹화 끝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곯아떨어졌던 그 시간들도...


오랜만에 과거 아련하게 떠오르는 종이 프롬프터의 추억과

그 시절 그 공간에 있었던 사람들까지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때 그들은 다 잘 지내고 있을까?



< 오늘의 속삭임>


스노글로브는 기억한다.

어쩌면 돌아올, 혹은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세찬 바람과

몹시 거센 눈보라를.

스노글로브는 대부분 잊혀서 집안의 선반 어딘가에 버려진다.

그리고 사람들은 손으로 감싸 쥐고,

흔들어 눈을 내리게 할 수 있는 그 행복 전체를 ,

유리구슬의 긴 잠을 깨울 수 있는 그 신비한 힘을

잊어버린다.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 - 필리프 들레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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