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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작 Jun 04. 2023

ep67.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우리 삶은 사람과의 관계로 이루어졌다.

가장 아픈 상처도 사람이 남기고,

가장 큰 기쁨도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신영복 작가님이 말씀하신 명언 중 하나다.


최근 만나는 지인들에게 내가 자주 물었던 질문이 있다.

지금 우리 세상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들이 뭔 것 같아?

내가 던진 이 질문에 나를 ‘아하’ 하게 하는 첫 번째 대답이 있었다.

누군가 그랬다  옆집! 옆집이 없어지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아파트에 사는 이 친구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옆집이라고 한건,

우리가 1차원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물리적인 옆집을 의미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 진정한 이웃사촌인 ‘옆집’을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동네가 다 그렇다고 할 순 없지만,

예전을 돌이켜보면 그렇다.  엄마, 아빠가  부득이하게 저녁에 늦게 오시는 날엔

옛날엔 '옆집에 잠깐 가 있어~' 이런 경험들 우리 세대들에겐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어렸을 적. 엄마가 아랫집과 친해서

엄마나 아빠 두 분이 혹시 밤에 일이 생기거나 할 때

아랫집에 잠깐 가 있어. 하며 서로들 돌봄의 품앗이를 했던 것 같다.

어떤 대가 없이 우리는 믿을 수 있는 이웃사촌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지냈다.


그런데, 지금은 물론 인사는 하고 지내는 옆집이야 있겠지만,

내 아이를 부득이하게 길 만큼 친하지는 않다.

심지어 한 세 발자국만 가면 닿는 옆집인데도 말이다.  

더욱이 층간 소음으로 분쟁과 갈등이 안 일어나면 다행인 것이고,

우리 동네나 이웃에게서 불미스러운 사건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천만다행인 세상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들.

동네 소소한 가게들의 아저씨, 아줌마, 혹은 우리가 삼촌, 이모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사라지는 듯하다.

난 어릴 적 문방구를 좋아했다. 학교 앞 문방구는 학원 가기 전  친구들과

잠깐 놀 수 있는  즐거운 놀이터이자, 참새 방앗간 같은 곳이었다.

우리 아들 초등학교 앞에도 10년 이상 문방구를 하신 아저씨가 계셨다.

세대 수가 꽤 되는 곳의 문방구이고, 초등학교 바로 앞에 있다 보니,

그 문방구는 동네에서 어떤 아이를 잃어버렸거나,

아니면, 학교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엄마들이 모여드는 사랑방 같은 장소이기도 했다.

주인아저씨는 바쁜 워킹맘 엄마의 아이들에겐   

준비물을 빠뜨리면 외상으로 일단 주고,

이름과 전화번호를 달아놓고

외상값을 지불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기도 했다.

또 어떤 엄마들은 선불로 문방구에 미리 지불해놓고

아이가 혹시 뭐 필요한 게 있어서 급하게 요청하면

물품을 주라고 이야기해놓기도 했다.

당연히 문방구 아저씨에겐 단골 엄마와 단골 아이들도 많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구류도 인터넷보다 가격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하고

배송 역시 요샌 당일 저녁에 주문하면 아침 새벽에 오기도 하니,

문방구 소비자는 어쩔 수 없이 줄어드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정겹던 우리 동네 사랑방 같은 문방구는 문을 닫았다.

10년 이상 문방구 가게 운영을 직업으로 삼으신 사장님도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라 생각됐지만, 아쉬운 마음도 달랠 틈 없이

우리 동네 초등학교 앞 문방구는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엔, 사람이 없는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가 생겼다.

                        < 아저씨가 있는 문방구에서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로 >


그리고 어느 정도 이후에 좀 떨어진 곳에 문방구가 하나 생겼는데,

역시 아이들이 아저씨, 혹은 삼촌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이거 얼마예요? 어떤 게 좋아요? 이거 있어요?라고 질문조차 할 수 없는

기계만이 덩그러니 각종 문방용품만이 덩그러니

그리고 도난을 방지하기 위한 CCTV만이 매달려 있는

무인 문방구가 생겼다.

                                < 요새 많이 생기고 있는 체인점 무인 문방구>


우리나라에 무인이 생겨나기 시작한 게

코로나가 발생하고 한 1년 이후부터 우후죽순인 것 같긴 하다.

그때는 사람이 전염의 매개이자 위험한 존재이자, 불편한 존재가 됐었기도 했고,

경제의 논리로 인건비를 줄이는 차원에서 무인은 자영업계의 혁신의 아이콘처럼 등장했다.

그런데, 코로나가 어느 순간 사실상 엔데믹이 되고 나니까,

다시 무인이 아닌 그러한 일상들이 그리워지긴 하는 것 같다.

물론 사람들은 무인에 이제 처음보다 익숙해졌고,

무인이 오히려 편하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끔 동네 학교 앞에 아이들을 보면,

하교 후에 요샌 친구들끼리 사람 없는 가게에 들어가

기계를 조작하고 카드를 결제하는 이런 모습들이

어느 순간 나에게도 익숙해지긴 했지만,

난 가끔 과거의 이웃이라 불리는 가게 아저씨, 아줌마들과도

대화조차 할 수 없는 아이들의 모습이 씁쓸하기도 하다.

어느 순간 우리는

이웃에 살아도 모르는 누군가는

심지어 아는 누군가조차 조심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오히려 기계와 교류하는 것이 안심인 세상이 되었다.


우리 주변엔 사람이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는 느낌이다.

사람과의 관계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든

아는 사람이든 어느 일정 부분 대화와 소통으로

우리가 배워가는 것이 있다고 생각된다.

지금 어느 정도 인생의 중반을 넘어가고 있는 우리는

그래도 사람들에게 부대껴 온 세대라고 생각되지만,

우리 아들을 봐도, 우리 아들보다 더 어린 친구들을 보면,

슈퍼나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사는 것조차

예전보다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줄었다.

친구들을 만나서도 물론 수다야 떨겠지만,

핸드폰과 유튜브를 보며 대화의 길이는 당연히 짧아졌을 것이라 짐작된다.


인간의 진화로까지 거창하게 이야기할 순 없겠지만,

관계를 형성하고 관계를 유지하고,

때론 관계의 갈등을 헤쳐나가는 것

다 관계를 부대끼며 얻어가는 것들이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겐 그런 것들이 매우 매우 부족해 보인다.


얼마 전 나에겐 나름 충격적인 기사가 있었다.

지난달에 인구학 권위자 데이비드 콜먼 옥스포드대 교수가

포럼차 한국을 방문한 기사였다.

콜먼 교수는 세계적인 인구학 권위자다.

그런 그가 미래전략의 한 포럼에서

우리나라가 인구 소멸 국가 1호가 될 것이다 했다.

과거 2006년에도 UN의 한 포럼에서 이 교수는

우리나라에 경고를 했던 적이 있긴 있다.

이건 사실 저출산의 맥락이긴 하지만,

나라를 이루고 있는 국민 즉 사람이 없어지는 나라 중에

우리나라가 1호가 될 것이라는 건 참 믿을 수 없는 말 같았다.

전 세계 수많은 나라 중에 왜 하필 우리나라일까?라는 의구심과 함께 말이다.

심지어 교수는 그 시점이 2750년이 될 수도 있다고 연도까지 제시했다.

나름 석학이니 인구학 통계를 통한 연구를 통해 낸 결과치로 볼 수 있겠지만,

사람이 사라져 나라가 없어질 수도 있는

그런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다니.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긴 하다.


가끔 사라지는 것들이 생각날 때가 있다.

지인들이 답변한 것 중엔

우체통도 있었고, 우표도 있었고, 손편지도 있었고,

철물점도 있었고, 동네 구멍가게도 있었다.

이런 것들이 더 편리한 대체수단이 생겨

사라졌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인간들에게 진정한 인간 노릇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상황들을 빼앗아 갔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에게  편리라는 이름으로 소멸되는 것들이

나중엔 인간들 사이를 더 불편하게 할지도 모른다.

기술의 발전과 경제적 효용성이 인간 세상의 정답은 아닐 것 같다.

우리의 모든 발전의 결과물들은 결국 인간들이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우리에게 지금 무엇이 진정으로 가장 중요할까?

사라지는 것들이 아쉬운 날들이 있다.

누군가에게 좋은 것들은 부디 천천히 사라졌으면 한다.



< 오늘의 속삭임>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을

"그 사람이 좋은 상태에 머물게 하며 잘 기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칼의 덕은 칼 기능을 잘 수행하게 하는 것이고

말의 덕은 말이 원래 하는 일을 잘하게 하는 것

즉, 말이 타고난 원래의 자질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의 덕으로 꼽은 건

우리가 인간 노릇을 잘하도록 하는 것들이다.


                       '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 '     -마이클 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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