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살구 Jun 13. 2020

9. 갑순이


우리 마을 초입에서 부추농사를 짓는 집에서 키우는 흰색 믹스견 이름이 갑순이이다. 마가 이 댁 형님과 가까워지면서 갑순이와도 안면을 트게 되었다. 어떤 종 믹스인지는 모르겠으나 백구 황구들보다는 덩치가 조금  편이었다. 엄마가 형님 댁에 갈 때마다 갑순이랑 몇 번 놀아주었더니 똑똑한 갑순이는 우리집 차 알아보고, 우리 차 지나 갈 때마다 반갑게 짖어 인사하곤 했다.



몇 년 전 갑순이가 눈을 크게 다 적이 있었다. 형님 전화를 받고 엄마가 급히 건너갔는데, 상처를 보니 누가 발로 걷어 찬 것 같은 모양새였다. 나중에 듣기로는 동네 사람 중 하나가 술을 먹고 이런 비슷한 짓을 하고 다닌다고는 하는데, 갑순이도 그 사람 소행이라는 추측이 있었지만 정확한 증거는 없었다.


엄마가 얼른 같이 병원에 가자고 하자 형님은 순간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당신들 아파도 병원에 갈까 말까인데 개가 다쳤다고 병원이라니. 마당에서 목줄 매고 지내는 개들은 그나마 땅이라도 밟으며 사니 호강하는 편이고, 대소변 처리하기 편하다는 이유로 사각 철창 안에 넣고 개를 키우는 경우가 허다한 곳이었다. 그게 뭐가 문제인지 알 필요도 없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평생을 지내온 분들 걸 알기에, 이해도 하고 어느 정도 수긍도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갑순이를 그냥 두고 나올 순 없었다. 이대로 엄마가 나와 버리면 갑순이는 병원도 못 가보고 앓다가 결국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엄마는 얼른 갑순이를 들쳐 안고 동물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보니 다행히 수술이 필요한 정도는 아니어서,  응급처치 후 는 약과 안약을 처방 받아 왔다. 엄마는 집에 돌아오면서 형님 댁에 들러 '시간 맞춰 약도 먹이고 안약도 넣어줘야 하는데 형님 일하느라 바쁘시니 갑순이그냥 우리집에서 돌보겠다고, 병원비도 내가 냈으니 신경 쓰지 마시라' 하고 그냥 바로 갑순이를 데리고 우리집에 왔다. 형님은 내심 안도하는  그렇게 하라 하셨다.



마당에서 키우던 갑순이를 바로 집 안에 들이지는 못 했고, 그렇다고 아픈 애를 밖둘 수는 없으니 엄마는 갑순이가 먹고 쉬고 할 공간을 현관에 조그맣게 마련했다. 갑순이는 시골생 처음으로 넥카라를 차고 다소곳이 담요 위에 앉아 엄마가 약을 섞어 준 고기 통조림도 먹고, 안약을 넣어 줄 때면 반항 한 번 없이 가만히 얼굴을 맡기며 앉아 있었다. 우리집 강아지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현관 중문에 얼굴을 갖다대고 갑순이에게 으르렁댔지만, 꿋꿋한 갑순이는 잘 먹고 잘 버티며 우리집에 한 달 동안 머물렀다. 엄마가 다 나은 갑순이를 형님 댁에 데려다 주자 형님은 호호 웃으며 "욕 봤네" 한 마디 하셨다.



갑순이는 지금도 건강하게 잘 지다. 여전히 엄마 차가 지나가면 꼬리를 흔들며 인사하고, 갑순아 하고 부르면 펄쩍 펄쩍 뛰기도 한다. 엄마는 형님 댁과도 여전히 잘 지낸다. 같이 음식해서 나눠 먹고, 운동을 같이 하거나 장을 보러 가기도 한다.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고, 함부로 원망하지 않는 일은 더욱 어렵지만, 생명을 지키는 일은 그것보다는 간단하기에 우리는 갑순이를 지킬 수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8. 비밀 없는 우리 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