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금요일엔 오랜 절친과 만났다. 사람을 빨아들이는 것 만한 파도 위를 항해하던 나의 모험선을 그녀와 이야기하면 어느새 그저 연못의 돚단배가 되어버린다. 돚단배를 타고 항해하다보니 2시에 만났던 시간이 8시가 된다. 중간에 올리브영을 들려서 향수를 구경했다. 나는 맑은 것을 좋아한다. 막걸리와 말리부가 맞지 않고, 참이슬이나 칵테일을 좋아한다. 내가 마음에 든 향수는 clean classic. 다른 향수들은 뭔가 척하려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 향수의 향은 딱 깔끔하고 시원하게 본인을 드러낸다. 청사과랑 라즈베리도 좋고. cotton이랑 laundry도 좋았다. 아리아나 그란데 향수도 시향해 봤는데,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느껴지는 향이었다. 나랑은 잘 안 맞았다.
어제는 집 근처 느좋 카페로 다시 향했다. 벌써 2번째 방문이고, 현재도 여기서 글을 쓰고 있다 (지금은 세번째). 이 카페에 오면 마치 카페 사장님과 대화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한 사람의 취향이 짙게 뭍어있다. 나는 많은 사람의 노력이 들어간 결과물보다는 한 사람의 취향이 짙은 창작물을 좋아한다. 무엇보다 대화한다는 느낌이 든다. 아이돌로 치면 뉴진스가 유일했는데, 얼마전에 나온 올데이프로젝트 (ALLDAYPROJECT)가 그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줬다. 뉴진스를 보면 민희진이 느껴졌고, 올데이프로젝트를 보면 테디가 느껴진다. 미래가 기대되는 그룹이다.
어제는 하루종일 사색을 하는 날이었다. 카페에서 시그노 0.38 파란색과 교보문고에서 산 3800원짜리, 페이지마다 각각 다른 여름 컨샙이 있는 메모지를 들고 내리 3시간을 생각을 써내려갔다. 어제는 사람 판단을 많이 했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느꼈던 여러 사람들. 그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지, 또 나에 대해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갖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될것인가를 느낀대로 전부 써내려 갔다. 시간이 금방 갔고, 참 재밌었다.
집에 와서는 직감형 인간으로 사는 것에 대한 생각을 했다. 명확한 구조보다는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로 삶을 설명하고 사는 삶. 밤에 머리를 감을때 뜨거운 두피를 마사지하며 하루종일 쌓인 기와 에너지를 빼내고, 아침에 일어나면 타로 카드에게 응원을 받고 미소를 짓는다. 몸을 아플때는 내 몸의 차크라 혹은 기혈을 생각하며 내 감정이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생각한다. 이런 삶을 제대로 살기 시작한지는... 오늘이다.
직감과 에너지, 이런 말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구조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내 인생은 언제나 직감적으로 사람들을 파악하고, 또 행동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동경했다. 이과적인 것을. 건축이나 구조, 수학 같은 것을 보면 설명이 가능해서 그것을 따랐다. 대한민국의 AI 지원 문제에 대한 유튜브의 댓글에서 기술이 나라를 먹여 살린다는 열렬한 지지에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감성은 너무 쓸모가 없었다. 무드, 디자인, 느낌, 향 이런 것들은 실용성에 하등 쓸모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은 본성을 지울 수가 없다. 대학교에 들어가고, 자유로운 삶과 다양한 사람들의 만남에서 나는 나를 발견해버렸다. 하루하루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껴지는 다양한 감정들. 놀때 나에게 연락하지 않음에 대한 서운함. 친해졌다고 생각하던 친구가 갑자기 내 옆자리에 앉기 싫어했을때 슬픔과 자책. 원하지 않는 사람이 연락 오는 것에 대한 혐오. 누군가 내 가치를 알아봐주면서 느낀 만족감. 누군가 가르쳐준 것이 아닌, 하루하루 다양한 사람들과 감정들을 만나며 자연스레 스며드는 감각들.
내 감각이 살아나면서 주위 사람들도 나에 대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웃긴 내 과거를 이야기하고 열정을 이야기 할때 누군가는 나에게 눈이 참 빛난다고 했다. 관리자들의 사상 공부를 할 때 chat gpt를 가지고 둘이 대화를 시키고 사상가로 롤플레이를 한 걸 본 동생은 환히 웃으며 너무 재밌게 살것 같다고 부럽다고 했다. 누군가는 언니는 다른 사람들을 좋아하는게 아니라, 그냥 좋아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거라며 연애 안할거라고 했고, 틈만나면 춤을 추는 나를 보고 누나는 어떻게 그리 에너지가 많냐고 듣기도 했다. 넌 우리 동년배보다 훨씬 에너지가 많다라고도 들었다.
깨달은 것이 아니라 서서히 느껴지고, 이제는 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창에 비치는 따뜻한 햇살에 감동하고, 핸드폰으로 재즈를 틀며 아침에 몸을 살랑거려주고, 이불 정리를 하고 깔끔해진 방을 보면 기분이 좋다. 난 이런 사람이다. 사람들의 감정과 에너지를 직감적으로 파악한다. 내 감정은 매우 깊고, 직감은 빠르다. 평생 스스로를 정의하고 싶단 충동 속에서 살아왔다. 이젠 흘러가는 에너지가 나임을 안다.
지금은 좀 무섭다. 이제 내 가족들은 타로를 보고, 벽에다 이쁘고 의미있는 것들을 붙이는 날 볼거다. 언제는 의학적 지식보다 차크라나 에너지 따위의 말을 할거고, 다른 것들이 다 어떤 선택지가 옳다고 말해도 내 직감 하나로 반대할 날도 올거다. 세상이 날 얼마나 미쳤다고 볼까. 아니 이미 나는 미치고 틀린게 아닐까? 가족과 친구들이 이런 말을 하는 나를 받아들여줄까?
차크라에 대해 이야기를 할때, 기혈에 대해 이야기를 할때, 방구석에서 재즈를 듣고 춤을 출때, 카페에서 매력적인 사람을 볼 때, 지금처럼 카페 테라스에 앉아 바람에 살랑이는 카페 시간 안내문을 보며 글을 쓸때. 나는 살아 있음을 진정으로 느낀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