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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 Jan 22. 2024

생태적 삶을 위한 한시 읽기

88일

 古之學者(고지학자) 옛날의 배우는 자들은

 必有師(필유사) 반드시 스승이 있었네

 師者所以(사자소이) 스승은

 傳道授業(전도수업해혹야) 학업을 전수하고 의혹을 풀어

 解惑也(해혹야) 도를 전했기 때문이라네

 人非生而知之者(인비생이지지자) 사람이 나면서부터 아는 자가 아니라면

 孰能無惑(숙능무혹) 누가 의혹이 없겠는가?

 惑而不從師(혹이부종사) 의심이 들면서도 스승을 따르지 않으면

 其爲惑也(기위혹야) 그 의심은

 終不解矣(종불해의) 끝내 묻히게 된다네

 生乎吾前(생호오전) 나보다 앞에 태어나

 其聞道也(기문도야) 삼라만상의 이치를 깨우침이

 固先乎吾(고선호오) 확고히 나보다 앞서면

 吾從而師之(오종이사지) 나는 그를 좇아 스승으로 삼고

 生乎吾後(생호오후) 나보다 뒤에 태어나

 其聞道也(기문도야) 삼라만상의 이치를 깨우침이

 亦先乎吾(역선호오) 또한 나보다 앞서면

 吾從而師之(오종이사지) 나는 그를 좇아 스승으로 삼네

 吾師道也(오사도야) 나는 삼라만상의 이치를 스승으로 삼으니

 道之所存(도지소존) 삼라만상의 이치가 있는 곳이

 師之所存也. 스승이 있는 곳이네

한유(韓愈, 768~824), <스승이란[사설(師說)]>     


 2주간의 영재 기초직무연수를 마친 후 어젯밤 교육원에 복귀하였습니다. 사람은 때로는 고독을 자처하며 침잠(沈潛)하는 동굴’도 필요하지만 밖으로 나가 다른 이들과 교류하는 시간도 병행해야 정체되지 않고 유연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제 이곳 생활도 한 달여가 지나면 정리가 됩니다. 지난 1년간의 저의 삶을 돌아보고 묵혀두었던 생각들을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펼쳐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배움은 참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 함께 살펴볼 <사설(師說)>은 한문과 임용을 준비하면서 많이도 읽어보았던 명문(名文)입니다. 한유 자신 또한 당나라의 명문장가이자 관리이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공자의 아래 문장을 내면에 품음으로써 탄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인용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三人行(삼인행)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必有我師焉(필유아산언) 거기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네

 - 《논어(論語)》, <술이(述而)>     


 잘 아시다시피 세 사람은 ‘나, 나와 비슷한 수준의 사람, 나보다 뛰어난 사람’입니다. 우리는 나이의 많고 적음, 지위의 높고 낮음, 부의 축적의 유무, 재주가 낫고 못함, 외모가 뛰어나거나 그렇지 못함, 좋은 환경과 그렇지 못한 환경을 많이 따지는 좌뇌적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항상 위를 쳐다보고 내달리는 일이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이루지 못했을 때, 실패했을 때, 가지지 못했을 때, 타고나지 못했을 때의 상처와 실망감은 누가 어루만져 줄 수 있을까요?     


 결국, 자신입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아껴주지 못하는 데 타인이, 가족이, 반려동물과 반려 식물이 나를 아껴줄 수는 없지 않을까요? 그래서 선인들은 나와 나의 그림자, 앞선 시대와 동시대의 스승들, 고전, 자연, 삼라만상[도(道)]을 벗이자 스승[사우(師友)]로 삼으며 독서에 매진하지 않았을까요?    

 

 부처는‘자신을 등불과 의지처를 삼으라[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는 진리를 남겼습니다. 삼라만상 혹은 우주 대자연의 입장에서 한갓 인간 나이의 많고 적음, 지위의 높고 낮음, 경제적 형편이나 초라한 처지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나의 스승은 누구인지 나는 누구를, 벗으로 진리로 스승으로 삼을 건지 사색해보는 멋진 하루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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