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의 힘
♣ 나를 돌아보는 물음
1. 일상에서 ‘멈춤’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여러분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2. 인공지능은 사람처럼 풍경을 바라보며 마음의 여유를 느낄 수 있을지 여러분의 생각을 자유로이 적어보세요.
오늘은 음력 시월 여섯째 날로 내일이면 겨울에 들어서게 됩니다. 요 며칠 아침저녁의 기운이 차가워지며 겨울에 들어섰음을 느끼게 됩니다. 환절기 찬 바람에 늘 건강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어제 퇴근 후 견공(犬公)과 함께 길을 나서는 데 칠흑 같은 밤에 엄지손톱만한 희미한 달과 그 곁을 지키는 작은 별 하나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한참을 쳐다보고 있으니 일순간 시간이 멈춘 듯 마치 견공과 제가 동화 나라에 들어와 있다는 착각이 들었고 마음 또한 고요해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가끔 자신의 일터나 공부하는 곳, 집 등 일상의 익숙한 둘레에서 벗어나 가까운 경치 좋은 곳을 거닐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합니다. 오늘 소개할 시에서 이런 마음을 잘 드러낸 것 같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일상적인 활동 반경에서 벗어나 오솔길이나 공원, 혹은 산으로 들어가서 맨발로 흙을 밟다 보면 야생화와 산새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됩니다. 산새도 그런 인간의 마음을 예민하게 알아차리고는 경계를 풀고 인간에게 다가와 벗이 되어 줍니다.
때론 꽃비 내리듯 마음에 드는 풍경을 만나게 되면 누구나 가던 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그러고는 편안히 풀숲이나 바위, 바닥에 앉아 흘러가는 흰 구름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덧 주변 산과 나무, 다람쥐, 산새, 풀꽃, 계곡, 바위, 안개 등의 삼라만상이 나의 곁에 늘 머물러 있었음을 새삼스레 알아차리게 됩니다.
망기(忘棄, 인위적인 마음을 비움)]하며 삼라만상에 무젖어 들어갈 때 우주 대자연은 우리에게 자신의 곁을 내어주고 신비한 힘을 보여줍니다. 우주 지성의 메시지인 영감(靈鑑)이나 새로운 뜻을 펼쳐내는 창의(創意)의 힘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興逐時來(흥축시래) 가끔 흥이 일면
芳草中(방초중) 풀밭을
撤履閑行(철리한행) 맨발로 거닐다 보면
野鳥忘機(야조망기) 산새와 나 경계 풀고
時作伴(시작반) 벗이 되네
景與心會(경여심회) 때론 마음에 드는 풍경을 만나
落花下(낙화하) 꽃비 아래에서
披襟兀坐(피금올좌) 자연스레 옷 벗어두고 가만히 앉아 있으니
白雲(백운) 흰구름
無語漫相留(무어만상류) 말없이 다가와 곁에 머무네
- 홍응명(洪應明, 1573~1619), <가끔 흥이 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