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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욘킴 Oct 24. 2024

느낀 점: 법륜스님의 반야심경 강의

책을 느끼고, 읽습니다. 불교는 아닙니다.

표지사진 출처: 교보문고


2022년 6월 30일에 종이책, 2022년 7월 19일에 전자책이 출간되었습니다. 파일 형식은 ePub이며 약 13.9만 자로 22MB 정도의 용량입니다. Crema, Onyx 등의 전자책 및 PC, IOS, Android 기기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지난한 일상의 고통에서 해방되고자 읽기 시작했으므로, 특히 출퇴근 길에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노트북을 이고 지고 출근하는 직장인 어깨에 부담을 주지 않는 전자책으로 구매하였습니다.




사는 것이 고통이라는 말이 한 번쯤 피부로 느껴질 때 『반야심경』의 메시지는 스스로 되뇔 수 있는 주문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불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부처님의 삶과 교리를 근간으로 깊이 마음에 와닿을 수 있겠지만, 저처럼 불교가 아닌 사람도 반야심경의 쉬운 풀이를 읽으며 심오한 해탈의 관념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해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고통이 극에 달하는 출근의 순간에 말입니다.


[책 내용 중 발췌]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환영인 줄 알아야 합니다.
꿈이 꿈인 줄 알아야 합니다.
꿈에서 깨어나는 그 순간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불교의 경전은 크게 대승경전과 소승경전으로 나뉘는데,『반야심경』은 방대한 대승경전 중 600권에 달하는 대반야바라밀다경의 핵심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요약한 단편 경전입니다. 반야심경의 한자 풀네임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라고 합니다. 


경전이 시작되는 배경과 의미를 설명하는 서분(序分), 대승 불교의 핵심인 '공(空)'[^1] 사상을 짧고 함축적으로 요약한 정종분(正宗分), 그리고 경전의 결론을 담은 유통분(流通分)으로 나누어 각각 대반야바라밀다경의 중요한 개념을 간략하게 담고 있다고 합니다. 이 중에서 세간에서 주로 독송되는 부분은 정종분의 간추린 버전인 약본(略本)으로, 한자 260자 정도로 압축 번역되어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이해한 반야심경의 구조입니다. 읽기만 할 땐 즐거웠는데, 느낀 점을 쓰기 위해 시작한 최소한의 조사만으로도 머리가 약간 지끈거립니다.


인생에는 고(苦)가 있고 낙(樂)이 있으며, 고도 낙도 아닌 상태가 있습니다.
고와 낙은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고가 낙이 되기도 하고 낙이 고가 되기도 하니, 중생은 고와 낙을 끊임없이 오갑니다.


더구나 산스크리트어를 한자로 번역하며 핵심 교리를 압축하고 경전의 구조를 확립하는 복잡한 대장정엔 얼마나 많은 머리가 지끈거렸을지 잠시 경외심을 가져봅니다. 또한 목판 인쇄도, 활판 인쇄도 발명되기 전이었을 것이고 손으로 필사하여 전파하는 방법이 최선이었을 것입니다. 컴퓨터, 네트워크와 인터페이스가 없는 환경을  상상하기 어려운 저로써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 수많은 인력이 이 반야심경에 투입되었을 것입니다. 그때도 과로란 개념이 있었는진 모르겠으나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해탈을 경험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봅니다. 최첨단 AI에겐 없고 오로지 인간에게만 있는 경지는 어쩌면 해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AI는 꿈에서 깨어날 수 없지만, 인간은 깨어날 수 있습니다.


"오온이 공함을 비추어 보고(照見五蘊皆空) 고액을 건넜다(度一切苦厄)" 함은 "꿈에서 깨어나 그것이 꿈이었음을 알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모든 괴로움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책은 친절한 이야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요한 개념일수록 일상의 사례와 쉬운 단어가 총동원되어 있습니다. 저자가 저라는 중생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진심인 것 같습니다. 책의 부록에는 반야심경의 긴 버전인 광본(廣本), 요약된 버전인 약본, 그리고 우리말 반야심경이 모두 수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조금 더 풀이된 표현이 받아들이기 수월하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찾은 영문 번역본[참조링크]도 함께 읽었습니다. 아래는 그중  저의 출근길 주문이 된 구절입니다.


(중략)
그러므로 비어있는 세계[^1]에는 이렇다 할 실체[^2]도 없고
감정도 생각도 욕망도 의식도 없고 [^3] 감각의 주체[^4]도 없으며
빛깔이나 소리나 냄새나 맛이나 촉감의 관념[^5]도 없으며
미혹된 어리석음도 없고 어리석음을 벗어나는 것[^6]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없으며 끝내 늙고 죽음을 벗어나는 것도 없나니
괴로움도 없고 괴로움의 원인도 없고 괴로움을 없애는 일도 없으며 팔정도의 길도 없느니라 [^7]
지혜가 따로 있을 수 없으며 아무런 얻음과 잃을 것이 없고 모든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 잘못된 망상을 떠나 마침내 열반에 이르느니라.


무한의 경쟁 속에서 '동기부여' 같은 이름으로 스스로를 채근하는 일도 버거울 때, 반야심경의 구절을 떠올리며 이름을 가진 주변의 모든 것들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볼 수 있습니다. '꿈과 같고, 꼭두각시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고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다'는 말이 스멀스멀 기억나는 듯합니다. 저 이름은 누가 준 걸까, 그리고 누가 나에게 이름이라 알려준 걸까. 이름이 줄곧 내뿜었던 힘이 희미해지며 꿈에서 깰 듯 말듯한 경계선이 어렴풋이 느껴집니다.


우리의 고뇌는 존재하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애초에 없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얻음으로써 고뇌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본래 괴로워할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뿐입니다.





[^1]: 공(空), 비어있음
[^2]: 색(色), 물질적인 형상(즉, 실체)
[^3]: 수(受), 상(想), 행(行), 식(識)
[^4]: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눈, 귀, 코, 혀, 몸, 마음을 가리키는 신체 기관들 (감각의 주체)
[^5]: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눈, 귀, 코, 혀, 몸, 마음으로 접촉하는 대상들 (감각의 대상)
[^6]: 무명(無明), 무명(無明)이 다함까지도 없다, 깨닫지 못한 무지의 상태
[^7]: 고집멸도(苦集滅道), 고통, 고통의 원인, 고통의 소멸, 고통의 소멸에 이르는 길(즉, 팔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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