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빠라서, 좋은 점
<요리를 배우게 된다는 점>
요리 잘하는 사람이 부럽더군요. 뚝딱 스테이크 요리를 만들고. 뚝딱 파스타를 만들고.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남녀를 구분 않고 좋은 재주를 가진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제가 요리를 잘 만들지 못하는 탓인지 모르겠습니다. 요리는 저와 이웃 지간이 아니었어요. 그 쫌 쉬어 보이는 국물 떡볶이. 저는 그 친구가 제 친구인 줄 알았는데, 만나 보니 참으로 어려운 ‘친구’ 더란 말이죠. 이 친구는 어찌나 까탈스럽던지 불을 조금 줬더니 글쎄, 사막 떡볶이가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당면도 제 이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으로 당면을 사서 이 친구와 점심을 함께 하려고 했는데 글쎄, 제가 마음을 좀 상하게 했는지, 툭 토라져서는 요상한 면발이 돼있지 뭡니까.
반면에 동생은 요리를 정말 잘 만듭니다. 일단 떡볶이 친구부터 ‘베프’로 사귀고 있어요. 어찌나 이 친구 마음을 잘 익던지, 뚝딱 만들어요. 찌개도 그래요. 무슨 찌개를 만든다고 하면 뚝딱 만듭니다. 뚝배기가 머쓱할 정도로, 아리땁게 만들죠. 계란말이요? 이미 초보의 수준은 넘었습니다. 부침개도 얼마나 잘 만드는지. 제가 일단 수저를 들면 그것을 놓기가 무섭게 그릇이 비어있을 정도라니까요. 동생은 도깨비방망이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옆에서 면밀히 주시해봤는데 그런 건 없었어요. 그렇다고 호그와트의 마법 스틱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 요리를 잘할 수 있는지 당최 비결을 모르겠어요. 어렸을 때에 꿈빛 파티시엘을 많이 봤는데, 그래서 그런 것일까요? 저는 애니 '요리왕 친구?'를 꽤 봤는데 왜 이리 요리를 못 하죠? 또, 또. 요리를 할 때 저는 실수를 그렇게도 많이 하는데, 동생은 거의 안 한단 말이죠. 어떤 요리를 처음 만들면 분명 ‘실수’라는 것을 해야 되는데 말이에요.
아, 동생이 만든 떡볶이는 제가 만든 것과는 차원이 달라요. 국물 떡볶이에 국물이 있다니까요?
동생은 반찬도 잘 만들어요. 정말 좋은 친구예요. 어묵 반찬도 만들고, 파래 무침이나 '쏘야' 볶음도 자주 만들어주니까요. 저뿐만이 아니라 부모님도 폭풍 감동을 받는답니다. 아, 저요? 저는 그래도 밥도둑이 아닙니다. 밥은 탄수화물이라 그렇게 좋아하진 않거든요. ‘반찬 도둑’ 일뿐입니다. 주위에 반찬 도둑을 꽤 보셨겠지만, 저만큼 반찬을 좋아하는 도둑은 없으리라 감히 단언합니다. 밥보다 반찬이죠. 무조건 말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반찬이 없었습니다. 그 많던 반찬이 다 어디에 갔는지, 거대한 냉장고 안에는 김치와 깍두기 밖에 없었어요. 아, 이는 큰 일이었습니다. 곳간에 쌓아 놓은 식량이 동난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으니까요. 곧 저녁입니다. '저녁 is coming'이라고 하죠. 저녁은 곧 옵니다. 그런데 반찬이 없다니요. 이렇게 밥만 있으면 무엇에다 먹나요. 그랬더니, 옆에서 그런 저를 보고 있던 동생이 뭐라 합니다. 제가 반찬을 너무 잘 먹어서 그런다고요. 그렇게 잘 먹으면 또 만들기 힘들다고요. 네. 저의 부끄러운 민낯은 여기 이 원고에 다 담길 것입니다.
저는 언제나 음식을 먹기만 했습니다. 반찬을 먹는 것을 좋아하고 치킨을 먹는 것을 좋아하고 빵을 먹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아, 부끄럽네요. 저는 아주 못 돼먹은 오빠였습니다. 매일 그렇게 음식만 축냈으니까요. 음식을 만드는 이 입장에서는 보기 좋을 리가 없었죠. 호의가 계속된다고 그것을 당연시 여겨서는 아니 됐는데요. 인간이란 참 간사한 존재 아니겠습니까. 하루에 물이 2리터만 주어진다고 하면, 그것을 아껴 마셔야 되거늘. 저는 원샷이 좋다며 그 귀중한 물을 한 입에 다 털어낸 꼴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여러 명이 나눠 마셔야 될 물이라는 것도 잊고요.
네. 저는 음식 만드는 이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반찬을 만드는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 나태한 집돌이를 부디 너그럽게 여기소서. 시금치에 소금이 몇 스푼 들어가는지 몰랐습니다. 그러고도 시금치가 짜다고 막 먹었습니다. 원래 시금치도 잘 먹으니까요. 카레에 들어가는 양파는 어떤 모양으로 썰어야 식감이 좋고 보기가 좋은지 몰랐습니다. 카레란 밥에다 부어 김치를 놓아 먹으면 안성맞춤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습니다. 어묵볶음은 구매하는 순간부터 어묵볶음인 줄 알았습니다. 굳이 생강을 몇 스푼 넣고, 마늘 다진 것을 몇 스푼 넣고, 양념 소스를 몇 스푼 넣어서 데워진 프라이팬에 땀과 시간과 노력으로 볶아야 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행동주의 교육 이론에서는 말합니다. 사람이 학습을 하면 ‘행동’이 변한다고요. 행동주의는 그렇게 이 사람이 ‘학습’했는지를 판단한다고요. 저는 분명 ‘학습’했습니다. 저는 이제 요리를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먼저 브라우니 만드는 법부터 익히려 했습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하잖아요. 브라우니 만드는 법을 '복습'해볼 게요. '학습'에 도움이 되니까요. 일단 물을 55ml 준비합니다. 우유라면 더욱더 좋고요. 그리고 백설에서 나온 브라우니 믹스 3600원짜리를 뜯습니다. 안에 브라우니 가루가 영롱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초코칩이 들어간 아주 맛이 있는 가루가요. 그러면 큰 볼에 그것을 조금씩 붓습니다. 이게 포인트예요. 조금씩 부어야 된대요. 그리고 여기에 우유를 또 적당히 붓습니다. 이제 열심히 저어줍니다. 라따뚜이가 수프를 만들듯 말이죠. 어느 정도 반죽이 됐나요? 확인해봐야죠. 그리고 그것들을 넓은 접시에 덥니다. 아, 여기서 잊으면 안 돼요. 종이 포일을 꼭 깔아야 됩니다. 그래야 반죽이 달라붙지 않으니까요. 이제, 대망의 하이라이트. 전자레인지에 그것을 넣고 익어가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3분. 시간이 너무 짧으면 안 익고 너무 길면 본연의 미감이 손실됩니다. 띵동. 전자레인지를 열어 잘 구워진 브라우니를 만납니다. 그래도 당장 환대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반칙이니까요. 금강산도 식후경. 브라우니는 식힌 후.
저, 참 열심히 배웠죠? 앞으로도 요리를 배우려고요. 열심히는 아니더라도 꾸준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