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리니 Jul 01. 2023

서울 5억 이하 아파트 찾아 삼만 리

치열했던 임장의 추억

내 집 마련을 결심했던 2020년, 나는 매일 ‘서울 5억 이하 아파트 매물’을 검색했다. 대부분 서울과 경기도 그 경계에 있었으며, 굳이 따지자면 비인기 지역에 있는 집들. 우리 부부는 어릴 때부터 한 동네에서 쭉 살았던 소위 서울 촌놈들이었고, ‘내 집 마련’의 꿈을 품고 연고 없는 낯선 지역들을 임장(*관심 지역의 부동산을 탐방하는 것) 다니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볼 땐 꽤 멀끔해 보였던 아파트도 임장을 가면 아닌 경우가 많았다. 나름 상급지로 꼽히는 동네인 데다 단지도 크고, 심지어 가격도 5억 이하라 찾아갔던 한 아파트는, 언덕 너머 너머 너~머에 있었다.

그 집에 가려면 언덕길을 한참 올라간 후

 → 에스컬레이터를 탑승해 단지 입구까지 가서

→ 아파트 내에서 또 한 번 높은 계단을 올라야 했다.


자차 혹은 등산화가 필수인 집이었다.     

 

다른 집들도 상황이 크게 다른 건 아니었다. 대부분

- 10평 후반~20평 초반 평수, 거실은 좁고 방은 2~3개

- 20년 이상 구축

- 복도식

- 언덕 위치 

- 올수리 필수     


우리가 가진 돈에서 살 수 있는 서울 아파트의 기본 조건은 거의 비슷했기에,

기타 다른 것들을 아주 디테일하게, 매의 눈으로 살펴봐야 했다.   

  

우리 부부의 필수 조건은

- 역에서 걸어서 최대 15분 거리일 것 (뚜벅이인 나는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해야 했다)

- 세대당 주차 대수는 최소 1대 이상 (남편은 자차를 타고 출퇴근, 주차가 용이해야 했다)

- 방은 3개일 것 (안방, 옷방, 서재방을 만들고 싶었다)

- 별도의 세탁 공간 (남편이 강력 주장한 조건, 화장실에 세탁기 놓는 것은 절대 싫다고 했다)     


이 정도 정리가 되자 임장에도 속도가 붙었다. 매매를 결심하고 계약서를 쓰기까지, 남편과 나는 평일 퇴근 후는 물론 주말에도 쉬지 않고 집 탐색을 했다. 석 달 정도 꾸준히 집을 보고 다녔더니, 1-2분 슥 돌아보면 대충 파악이 됐고, 지나가다 아파트가 보이면 “저 집은 5억에 나와있어”, “저기는 며칠 전에 4억 5천에 팔렸어”와 같은 정보가 바로바로 떠오르는 경지에 이르렀다.     


임장 동네에서 보냈던 수많은 저녁


주변에서 이런 내 이야기를 들으면 “참 고생했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에게 그때의 경험은 ‘고생’의 기억으로 남아있진 않다. 오히려 낭만적이고 실용적이기까지 한 예비부부의 데이트로 떠오른다.

아마 그건 우리가 아파트를 투자처가 아닌 살 곳으로 들여다봤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우리는 돈 벌 궁리가 아니라 오래오래 안전하게 살 궁리만 했다. 여기가 리모델링이 될까? 재건축이 될까? 평당 가격은 얼마일까? 보다는 (물론 이것들도 고려해야 하지만, 우린 너무 부린이라 이런 점은 생각도 못했다) 이 집은 어떻게 인테리어 해야 할까? 이 동네 맛집은 어디일까? 이 근처 산책 코스는 어디지?가 포인트였다. 그 집에 어떤 가구가 어울릴지 상상하고, 그 동네 인기 맛집에 들렀다가, 근처 공원에서 산책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코스. 매일 새로운 지역에서 데이트하며 함께하는 새 미래를 그려나간 셈이다. 그 땐 정말이지, 집만 사면! ‘우리 결혼했어요’ 같은 일상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문제는 그렇게 ‘5억의 현실’과 ‘우결의 로망’을 오가던 그 순간에도 집값은 계속 올랐다는 것. 보름 전에 4억 대였던 아파트가 임장을 끝내자 5억이 넘어갔고, 고민하던 집이 금세 팔려버리기도 했다. 더 늦기 전에 결정을 해야 했다.      


매수할만한 후보 아파트들을 추리던 그 즈음이었다. 습관적으로 네이버에 ‘5억 아파트’를 검색했는데 우리 부부의 필수 조건은 갖췄지만 호가가 너무 올라 포기해버렸던 한 집이 ‘5억 1천만 원’에 나와 있었다. 한동안 거래가 되지 않자 집 주인이 호가를 낮춰 다시 올린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매수할 수 있는 조건은 아니었다.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당시 대출 규제상 우리 부부가 70%의 신혼부부 대출을 받으려면 정확히 5억 이하, 그러니까 최대 5억 원의 아파트만 매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왠지 그 천만 원 깎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샘솟았다.

우리는 예비 신혼부부로, 그 집에 몸만 들어가면 되지 않는가.

이삿날도 잔금 날도 매도인에게 맞춰줄 수 있다는 큰 장점이자 무기가 있었다!      


우리 부부는 천 원도 아니고 만 원도 아니고

‘천만 원’을 깎아보자는 마음으로 그 집을 보러 달려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