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을 8개월이나 앞두고 일찍 신혼집을 마련했지만, 나와 남편은 돈에 허덕였다. 결혼식은 시작부터 끝까지 돈으로 점철된 빅머니 이벤트였기 때문. 예물, 가전제품, 가구, 인테리어, 신행, 식장 대관료, 당장 청첩장 모임에 나갈 밥값까지(!!) 돈 들어갈 일 투성이었다. 여기서 문제는? 현금이 없다는 것. 우리는 현금은커녕 빚만 드렁드렁한 영끌 부부였다.
결혼식 D-8개월, 우리에겐 낡은 집 한 채와 3억 5천만 원의 빚이 전부였다.
결혼식까지 필요한 예산을 짠 결과, 추가로 필요한 돈은 최소 3천만 원이었다. 그 큰돈이 나올 구멍은... 또 대출뿐. 우리 부부는 집 담보 대출에 이어 신용대출까지 끌어 썼다. 집 담보 3억 5천, 신용대출 3천만 원. 결혼도 전에 총 +3억 8천만 원의 빚이 생긴 것이다.
빚으로 준비하는 결혼이기에 아낄 건 최대한 아껴야 했다. 예물은 반지 하나만 하기로 하고 나머진 생략, 시가에서 예물비로 받은 천만 원은 인테리어비로 썼다.
신행 장소는 해외가 아닌 국내로 골랐다. 예상 비용 천만 원 이상이었던 나의 로망 모로코는 10년 뒤에나 다시 계획해보기로 하고. 비용 절감 겸 코로나 이슈를 핑계로 제주도를 골랐다.
가전제품과 가구는 발품이 답이었기에 서울 전역의 백화점부터 할인매장을 찾아다니며 견적을 받으러 다녔고, 가전은 오픈 행사 세일 중이던 동네 하이마트에서 첫 견적보다 무려 20%나 할인된 가격으로 가성비 있게 구매했다. 가구는 침대와 식사 테이블, 딱 두 가지만 고르고 나머진 살면서 채워가기로 했다.
집 다음으로 가장 큰 비용이 들어간 곳은 인테리어. 한 번도 수리된 적 없는 20년 구축 아파트는 대대적인 리모델링이 필요했다. 올수리로 진행하되 자잿값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경 썼다. 가령 문짝 교체는 하지 않고 기존 낡은 문짝에 필름을 붙여 새것처럼 포장하거나 타일과 벽지는 일단 제일 저렴한 것부터 고르는 식이었다.
여러 방면으로 아낀다고 아꼈는데도 3천만 원은 금세 사라졌다. 집 매수를 일찍 한 탓에 결혼 전부터 대출금을 갚다 보니, 월급으로 가용할 수 있는 현금이 기존보다 적었던 이유도 있었다.
신용대출까지 탈탈 털어 쓰고 나니 덜컥 겁이 났다. 집 담보 대출을 할 때만 해도 ‘이런 건 착한 대출이다’고 정신 승리했지만 오래 가지 못 했고, 난생 처음 큰 빚을 진 쫄보 부린이는 빚만 떠올리면 어깨가 쪼그라들곤 했다.
만약 내가 하는 프로그램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남편이 직장에서 잘린다면? 월급이 밀린다면? 가족 중 누군가가 아파 목돈이 필요하다면? 결혼이고 뭐고, 나락 열차를 타는 거였다.
그 시기, 유일하게 돈 때문에 즐거웠던 순간이 있다면 바로 ‘화장실 인테리어’ 할 때였다. 저렴한 자재로 최대한 싼 인테리어를 하던 와중에 남편은 “화장실만큼은 한샘으로 하고 싶다”고 했다. 본가에서 한샘 화장실을 썼는데 일반 타일과 달리 차갑지 않고 따듯했으며 미끄럽지도 않아서 만족도가 높았단다. 오 그렇게 좋다고? 그럼 당연히 나도 하고 싶지!!!만 가격이 비쌌기에 남편의 주장은 들어줄 수 없었다.
화장실을 두고 설전이 오가던 그 즈음이었다. 남편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홈쇼핑을 보던 중 한샘 화장실 방송이 나왔는데 이벤트 응모를 했다가 당첨됐다는 거였다. 전화번호를 남기면 수리 금액 100만 원 환금받는 이벤트였는데, 남편이 그 1인이 됐단다. 매일 돈에 쪼들려서 그랬는지, 우린 마치 로또라도 된 것처럼 크게 기뻐했다.
남편이 가져온 작은 행운 덕에 우리 부부는 계획에도 없던 브랜드화장실을 갖게 됐다.
남편의 로망이었던 한샘 화장실
화장실 수리를 끝내고 100만 원이 환급되던 날,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무려 제세공과금 22%를 뺀 78만 원이 입금됐기 때문. 100만 원 받는데 세금이 1/5이라니-
하아 이거저거 다 따져보니 –78만 원을 해도 >>> 사재가 더 싸다... 우린 왜 그렇게 기뻐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