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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리니 Jul 21. 2023

영끌 부부에게 임신이란

부동산 하락장에 찾아온 새 생명

우리 부부는 내 집 마련 후에 더 아껴 살았다. 매달 나가는 대출금 때문에 살림살이가 빠듯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아파트 매매 대출 외에 추가로 받았던 신용대출 3천만 원을 빨리 갚아야 했다. 신용대출을 갚기 전까지 우리 부부의 재정 상태에 저축할 겨를은 없었고, 이건 아주 불안한 일이었다. 우리 중 누군가가 아파 병원비가 많이 나온다면? 일이 끊겨 수입이 사라진다면?     


우리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도 돈,

우리를 구제해 줄 수 있는 것도 결국 돈이었다.     




다행인 건 결혼 후에 남편도 나도 월급이 올랐다는 것. 우리는 오른 월급을 최대한 아껴 열심히 모았다. 냉장고는 절반만 채워놓고, 장을 볼 땐 그때그때 필요한 것들만 메모해 동네 슈퍼로 향했다. 주말엔 양가 부모님 집을 번갈아 들러 외식비를 아꼈다. 휴가를 떠나도 고급 휴양지나 호텔은 지양했다. 버스가 끊기는 때가 아니라면 절대 택시를 타지 않았다. 신혼부부 필수템이라는 커피 머신을 들이는 게 부담스러워 매번 최저가 원두를 사 핸드드립으로 내려 마시고, 외출할 땐 텀블러에 담아 나섰다.      


그렇게 결혼 후 1년 반이 됐을 때, 3천만 원의 신용대출을 갚았다. 우리가 빚을 털던 시점은 은행에서 금리 상승을 예고하던 때였고, 변동 금리로 대출받았던 우리는 마치 마감 기한에 딱 맞게 과제를 턴 것처럼 기뻤다.      

신용대출 갚던 날, 내 기분

대출을 청산하던 날 저녁, 치킨 한 마리에 캔 맥주를 들이키며 서로의 노고를 칭찬하던 우리는 앞으로 저축도 하고, 아파트 담보 대출은 더 빨리 갚아나가자고 다짐했다. 이미 열심히 살고 있었지만 더 더 더 열심히 살자고 약속한 것이다.     


사실 당시 우리를 둘러싼 상황은 썩 좋진 못했다. 금리가 올랐다는 건 대한민국 부동산이 하락장이라는 뜻이었다. 코로나 이후 거품이 제대로 낀 대한민국 부동산은 모두의 예견대로 침체기에 빠졌고, 우리 아파트 호가 역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상승장엔 한 달에 열 채씩도 팔리던 아파트가 수개월째 한 채도 거래되지 않았다.     

떨어지는 호가를 지켜보는 우리 부부의 마음은 쓰렸지만, 맞벌이로 벌어들이는 수입으로는 매달 갚는 대출금이 감당할 정도였기에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생각했다. 오래 실거주할 용도로 산 집이니 멀리 봐야 했다. 당장 급한 신용대출은 갚았으니, 지금부터 우리 통장에 몇 푼이라도 비상금을 마련해 놓는 게 급선무였다.     

 



하지만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신용대출을 갚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을 했다.      


프리랜서 방송작가인 나에게 임신이란? 퇴사 사유와도 같았다. 우리에게는 출산 휴직, 육아 휴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말인 즉, 내가 배가 불러 일을 관두게 되면 맞벌이하며 갚아왔던 아파트 대출금을 앞으로는 남편의 벌이만으로 채워야 한다는 걸 의미했다.      


(다른 글에서도 썼지만) 수입은 줄고 지출은 늘어날 것이며 자산의 가치는 떨어지고 있는 중. 새 생명을 품은 우리에게 놓인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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