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주의자 vs 혁명주의자
내가 1을 퍼부어도 10을 퍼부어도 남편의 대답은 항상 같았다. 매번 다른 주제로 남편에게 대화를 신청했지만 그의 단골 대답은 ‘알았어’와 ‘노력할게’였다. 나는 어떤 상황이라도 무던하게 받아들이는 남편의 성격이 동전의 양면처럼 때로는 답답하면서도 마음에 들었고 더 나아가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리고 결혼 후에는 다투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되었다.
우리의 연애는 정확히 일 년 만기로 길지는 않았지만 결혼 준비 과정을 제외하면 싸웠던 적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함께했던 계절의 첫 시작인 여름부터 가을, 겨울, 봄 그리고 다시 새로운 여름을 지낼 동안 남편의 성격은 크게 변함이 없었다. 순간적으로 변했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은 내가 몰랐던 그의 모습과 생각들을 오히려 정확하게 마주하게 되는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결혼 전에는 술도 진탕 마셔보고 일부러 시비를 걸어서라도 다퉈보아야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지만 애초에 그 공식이 성립할 수 없는 사람도 존재한다는 것을 남편을 만나서 알게 되었다. 우리는 연애부터 지금까지 둘이서는 단 한 번도 술을 마신 적이 없을 정도로 술과 먼 사람들이었고(맥주 한 캔을 나눠서 마셔본 적은 있다) 내가 말로 주먹을 날리면 남편은 단 한 번의 공격도 없이 항상 두툼한 글로브로 막아내거나 받아주는 사람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이미 수없이 많은 사랑을 고백했지만 내 의구심은 고백과는 별개였다. 아직은 상대방에서 잘 보이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클 수밖에 없는 연애 기간이어서 다 받아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혼해서 갑자기 돌변하면 어떡하지라는 행복하면서도 불편한 의심. 평온하고 잔잔해서 오히려 우리가 함께할 미래의 모습이 불안했던 나는 점점 싸움을 걸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진정으로 싸울 수 있는 때를 엿보기로 했다.
누군가는 배가 불러서 터졌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상황에 처한 사람은 늘 할 말이 있기 마련이다. 서로 다른 시작점에서 출발했던 나의 생각과 불만은 언제나 ‘알았다’라는 남편의 대답으로 인하여 늘 같은 결론이 되어버렸고 해소되지 못한 채 점점 내 안에서 쌓여만 갔다. 처음에는 그의 대답이 고마웠고 정말 나를 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바뀌지 않는 그의 행동을 보니 나의 착각이었구나 싶었다. 남편은 애초에 전쟁 자체를 원하지 않는 평화주의자였던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늘 싸움을 걸었으니 그도 속으로 얼마나 피곤했을까. 하지만 나는 마찰이 발생하면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서로가 생각하는 이상에 타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혁명주의자에 더 가까웠기에 나의 시선에서 평화주의자는 답답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슬슬 때가 다가온 것 같았다. 알겠다는 말 대신 자기의 생각을 말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우리의 대화가 늘 같은 결론으로 끝나지 않고 해결점을 찾아서 마무리를 지었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남편은 의외로 자기의 생각을 잘 표현하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자신도 너무 짜증 나고 지친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평소와 다른 얼굴로 내게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니 순간 내가 괜히 말했나 싶은 옹졸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남편도 늘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부처는 아니고 사람이었구나 싶어서 내심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은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이 말해도 결국 내가 원하는 대로 해야 끝이 난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알겠다’라는 대답으로 돌아와 버렸다. 나는 단지 합의점을 찾고 싶었기 때문에 불편한 순간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싫어하는 남편을 붙잡고 끝까지 나의 생각을 펼쳤을 뿐이다. 물론 몇몇의 사안에 대해서는 합의점을 찾은 명쾌한 결론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평화주의자를 타락시키고 싶었던 혁명주의자의 이야기는 결국 변환점을 맞이하지 못하고 이렇게 시시하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나는 그날도 어김없이 대화를 하고 있었고 남편은 대답했다.
‘나 또 혼낼 거잖아.’
깊게 고민한 말이나 글보다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찰나의 말과 글이 그 사람의 진심에 더욱 가까울 때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남편은 처음으로 진솔한 대답을 했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건 이런 것이 아니었다. 나의 마음과 생각이 어디서부터 잘못 굴곡되어 상대방에게 닿은 것일까.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서 서로의 생각을 조금 더 깊이 알아보고 남편을 한층 더 이해하고 싶었기에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나의 ‘대화’는 남편에게 언제부턴가 ‘꾸중’이 되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혼을 내는 남편의 엄마가 되어 있었고 남편은 덩치만 부풀어있는 어린아이가 되어 있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하얀 순두부처럼 부드럽고 연약한 아이의 마음에 흠을 낸 나쁜 어른이 된 것 같아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남편을 온전하고 따뜻하게 안아 주었어야만 했다.
나는 내 뜻대로 결국 평화주의자를 타락시킨 것일까. 끝내 다툼을 원하지 않았던 사람에게 계속해서 다툼을 신청한 결과는 씁쓸했다. 40년을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 이제 겨우 반년을 함께 살아오면서 생겨나는 생소하고 사소한 나의 불만들은 결혼식장에서 손을 잡으며 행진한 날부터 예견되었고 자연스러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 가장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도 나는 어제와, 아니 몇 년 전과 똑같은 습관을 그대로 유지한 채 숨을 쉬고 있는데 이러한 내가 상대방을 바꾸겠다는 오만한 착각 말이다.
결혼생활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내게 처음 겪는 감정과 생각을 선물해 줄 것이다. 가장 처음으로 받은 선물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와 같은 나의 일방적인 싸움으로 인한 깨달음이다. 평화주의자에게는 혁명주의자의 원칙이 통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고 혁명을 일으키고 싶은 욕구가 생길 때에는 그때 남편의 입에서 툭 튀어나왔던 말을, 순간 움츠러드는 듯했던 넓은 어깨를 떠올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