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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진 May 21. 2020

몇 개의 단어들 1

구름


몽실몽실한 여름 구름이 방 안을 들여다본다. 나는 소파에 널브러져 가슴 통증을 노려보고 있다. 통증을 통증이라 부르는 일조차 지겨운 시간이 이어진다. 온몸을 휘젓고 다니는 통증 새끼. 등과 허리, 어깨를 돌고 돌아 이번 통증은 왼쪽 쇄골 아래 단단히 고여 있다. 철희는 나의 통증을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말하고, 나는 딱히 대꾸하지 않는다. 형체가 없으나 실재하는 그것은 마치 UFO를 목격한 이들의 증언처럼 가볍기 그지없다. 하지만 겪어보지 않은 것에 대한 공감의 무게를 재보는 것만큼 무용한 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딱히 대꾸하지 않는다.


정기 검진에서 가슴 통증을 말했다. 진통제를 먹어도 아픈데요. 흉부 엑스레이 사진에는 구름 같은 게 피어 있었다. 가슴께에 누가 우유갑을 집어던진 것처럼. 퍽. “어???” 늘 사무적이던 담당 의사는 목소리를 통제하지 못했다. CT를 예약하고 병원 로비에 있는 식빵 모양 소파에 앉았다. 볼을 감싸 쥐고 있다가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전화를 받는다. 엄마와는 심하게 다툰 뒤로 대화를 하지 않고 있었다. 상처 받은 아들에게 사과하지 않는 지독한 엄마. 나 암인데!!! 하지만 둘 다 목소리 뒤로 숨는다. “폐에 뭐가 보인대요. 전이는 아니라고 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아빠에게 전해주세요.” 엄마는 성조의 변화 없이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대리석 바닥을 내려다보며 모든 것을 의심하고 원망했다. 심지어 철희까지도.



뷔페


호텔은 청계산 아래에 있었다. 3월 이후 보광동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왔다. 투명한 날씨에 겨우 위로를 받는다. 내장을 다 끄집어내어 탈탈 털고, 햇볕에 널고 싶은 기분이다. 추석맞이 가족 모임. 비밀스러운 임무를 수행하는 자처럼 나는 이내 긴장하고 만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지,라고 다짐한다.


5만 원짜리 뷔페에는 술도 고기도 공짜 건만, 내가 먹을 수 있는 건 맑게 끓인 뭇국과 절편 몇 개다. 포크와 나이프가 부딪치는 소리가 작은 전쟁을 연상시킨다. 나의 가족은 구석 자리에서 묵묵히 음식을 씹는다. 접시 몇 개가 비워지자 나는 눈동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요.” 이건 어떤 예감이자 사실이었다. 간암 환자를 위한 세미나에서 보았던 평균 생존 그래프. 85주에서 끝나는 선분. 그간 미뤄왔던 말들을 내뱉자 누구는 눈물을 흘리고, 누구는 충격을 받는다. 그 틈을 비집고 계속 말을 잇는다. 나는 내 가족이 바뀔 수 있다고, 철희와 내가 변했던 것처럼, 그 희망을 버리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상담 선생님은 힘들면 가족에게서도 도망가라 했는데 이제는 못 그래요. 10년이 넘도록 내 삶에서 엄마를 차단해서 미안해. 엄마가 상처 받게 내버려 둬서 미안해. 아빠가 철희에게 처음 카톡을 남겼을 때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불쌍한 두 녀석. 손잡고 기도해라.” 우린 아침밥을 앞에 두고 정말로 손을 잡고 기도했어요. 엄마, 아빠. 가여운 철희를 생각해주세요. 나는 가족에게도 철희에게도 사랑받을 거예요. 그럴 수 있잖아요. 우리 이제는 더 많이 이야기해요.


말이 쌓일수록 모두의 얼굴 근육이 조금씩 부드러워진다. 어두운 객실에서도 포도 한 송이를 두고 이야기가 이어진다. 천식이 있던 어린 엄마가 진달래 진액에 취해 접시에 담긴 벌건 눈알을 보았던 이야기. 부대로 복귀할 차비가 없었던 아빠의 가난한 20대. 청결함을 유난히 강조하는 엄마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식모살이. 아빠 학비를 마련할 수 있었던 작은 미용실에서의 추억들. 기억들이 방을 가득 채우고 일렁이다 가라앉는다. 엄마가 말을 꺼낸다. “엄마 아빠가 너에게 상처 줬니?” 나는 어쩐지 안도하며 대답을 잃는다.


보광동에 돌아온 다음 날, 엄마는 철희에게 미역국을 맛있게 끓이는 법을 가르쳐줬다.



단추


저번에 폐에 생긴 구름은 폐렴이었는데, 이번 단추들은 암이란다. 나는 덤덤한데 철희는 그런 나를 보고 불안해한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는 표정으로 자꾸 말을 건다. 맺힌 것이 풀리니 마음이 잔잔하다. 듣지 않는 약은 끊었다. 말기 환자도 나름 할 만하다.



금강


슬그머니 혼자 일어났다. 짙은 안개가 모든 모서리를 감춰주고 있었다. 지난 비바람에 휩쓸린 갈대가 누운 방향으로 걷는다. 여기가 연옥이라면 영원히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자갈의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물새의 날갯짓에 뒤를 돌아보지만, 오롯이 나뿐이다. 나는 얕은 물가에 발을 조심스레 담갔는데, 물은 따스했다. 지층과 나무와 날파리의 생을 생각하고, 그것으로 순식간에 치환되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한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걸어도 발목엔 이슬과 흙이 묻는다. 물 한 컵을 마시며 되돌아온 길에는 친구가 마중을 나와 있다. 간밤에 고구마를 까먹으며 다 같이 불렀던 정지용의 시가 스친다. 우리는 미소 지었다.



여행자


척추기립근이 단단하게 뭉쳐 마치 연필 두 자루가 들어 있는 것 같다. 철희가 엄지손가락으로 열심히 연필을 깎는다. 엎드려 있던 내가 나른한 기분이 될 때쯤 그가 말한다. “도진아, 내 옆에 오래 남아줘.” 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해서 잠깐 고민을 해봤지만 입을 뗄 수 없다. 오늘을 사는 사람은 오늘을 누리며 산다. 맹세는 하지 않는 편이다. 안도할 수 있게 가벼이 답해줄걸 그랬나. 아니다. 작게 솟아오른 희망이 몇 곱절 곤두박질치는 것을 우리는 여러 번 목격했다. 그때마다 다가오고 떠나가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그저 인사나 하자고 했다. 하지만 불안은 상상력의 먹이가 되어 어느 날은 철희를 또 어느 날은 나를 떨게 한다. 우리는 나름의 충격 완화 요법을 써본다.


도진은 어떤 장례 방법이 좋아?

음… 화장이 좋을 것 같은데.

요즘은 수목장도 많이 한대.

수목장도 좋겠다. 다 같이 도시락 싸서 놀러 와.

근데 나무에 벼락 맞으면 어떡해?

그럼 꿈에 나타나서 괴롭힐 거야.


장례식장에서 뻘쭘하겠다.

왜?

친척들한테 나를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

도진이랑 각별했던 사이라고 해.


흠…

엄마 아빠한테 철희 소외시키지 말라고 신신당부할게.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음 육개장이나 서빙하셔.


버킷리스트 작성해보자.

응. 알았어.

뭐 해보고 싶은 건 없어? 먹고 싶은 거나.

음… 팬티만 입고 섹시 댄스 춰줘.

미쳤구만.


결혼할래?

법적으로 인정도 안 되는데 무슨.

세리머니지 뭐.

반지는 어딨어?

만들어야 해. 이제 만들 거야.

우리 둘 탄생석 오팔인 거 알지?

오팔 반지… 세상 끼스러워.


〈Two Travellers〉, Jack Butler Yeats, 1942


띄엄띄엄 이어진 대화가 이 인분의 용기를 생산해낸다. 몸을 추스르고 각자 잠자리에 든다. 눈을 감고 운명이나 물리학자의 고양이 따위를 생각하다가 한 그림을 떠올린다. 우리가 걷는 이 길은 어떤 모양새일까, 하는 질문의 작은 대답. 천칭자리 두 명이 발맞추는 흐릿한 여행길은 잭 버틀러 예이츠가 그린 〈두 여행자〉와 닮아 있다. 해 뜰 녘인지 해 질 녘인지, 봄인지 가을인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두 사람은 길 가운데 서 있다.


서로를 마주보며 그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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