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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몽] 자아상에 사로잡힌 인간에 대한 연민

by 홍주현 Mar 06. 2025

내가 본 영화 <라쇼몽>은 인간에 대한 신뢰 이야기다.


세 인물이 함께 경험한 한 가지 사건에 대해서 서로 다르게 진술하자, 수수께끼 같은 진실을 풀어가려는 시도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과연 진실이 무엇인지 가장 궁금해하는 사람은 살해 된 사무라이를 처음 발견해 신고한 나무꾼이고, 지나가다가 사무라이 부부와 마주쳤던 승려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 그들 모습에 인간이란 존재 자체에 실망한 나머지 인간을 혐오하며 좌절한다.


악명 높은 도적 타조야마와 사무라이 그리고 그의 아름다운 부인 마사코가 서로 다르게 진실을 왜곡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자존심, 즉 자기가 갖고 있는 자아상을 지키기 위해서다. 타조야마는 자신의 용맹함과 출중한 칼솜씨가, 사무라이는 사무라이로서의 올곧음이, 마사코는 남편에게 충실하지만 힘 없고 가련한 요조 숙녀로서의 정숙함이 각자 자신이 갖고 있는 자아상이다. 같은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설명은 각자의 이 자아상을 중심에 두고 상황을 기억하고 해석하는 탓이다.


이렇게 인간은 자기가 그린 자아상을 중심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 아니다. 그 자아상이 누군가 또는 어떤 상황에 의해서 훼손될 것 같으면, 모든 방어기제를 활성화시키고 그 사람을 공격하거나 상황을 왜곡한다. 다른 사람이 나를 함부로 평가할 때, 기분 나쁜 건 그 때문이다. 내가 갖고 있는 자아상과 타인이 본 내 모습이 일치하지 않고, 그에 의해 내 자아상이 훼손된다고 느끼기 때문인 것이다.


자아상이 곧 정체성이다. 자아상이 있어야 인간은 삶에서 부딪히는 선택과 결정의 순간에 기준점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자아상에 집착하면, 족쇄가 된다. 진실을 외면하게 만들고, 소중한 사람을 적으로 만들거나 잃게 되는 짓을 스스로 벌인다. 자기 중심을 갖추는 일, 마음챙김 같은 수행은 결국 이 자아상에 스스로 휘둘리지 않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다. 각자 자신에게 진실을 왜곡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을 환멸하게 된다며 괴로워하는 인물이 승려인 건 아마도 이런 배경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인간의 그런 위선과 거짓을 고발하며 항상 진실해야 한다는 도덕적 메시지를 말하지 않는다. 승려는 결국 다시 인간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기 때문이다. 아니, 단지 회복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그의 사랑은 연민으로 승화되어 한층 깊어진다. 나무꾼을 통해서다.


나무꾼 역시 세 인물처럼 진실하지 않았다. 그는 진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모르는 척 했다. 자신이 먹여 키워야 할 6명의 아이를 위해서.


그도 자기 이익을 위해서 진실을 숨겼다. 하지만, 자아상을 지키기 위해 진실을 왜곡한 세 사람과 달리 그는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서다. 그리고 그 어렵고 힘든 처지에, 버려진 아이를 또 맡아 키우겠다고 데려간다. 승려는 그를 통해, 인간은 각자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자기 깜냥 껏 최선의 행동을 할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아상을 지키기 위해 진실을 왜곡한 세 인물에게 가졌던 분노와 혐오마저 연약하고 미약한 인간 존재에 대한 연민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감독의 선생이라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연출도 연출이지만, 역시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스토리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 소설 2개(<수풀 속에서>와 <라쇼몽>)의 이야기를 섞어 각색해서 만든 영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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