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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인 Sep 10. 2020

3. 직장인의 구부러진 시간

구겨진 마음

3년간 쭉 써오던 핸드폰이 있다. ‘약정의 저주’라고 약정기간이 끝나면 기계도 자연스럽게 먹통이 되는 순간이 있는데, 나름 기특하게도 잘 버텨주고 있다. 그런데 가끔 어떤 날은 자꾸 멈추거나, 충전할 때마다 삶은 고구마처럼 뜨거워져 주인의 마음을 퍽이나 불안하게 만든다. 얘가 왜 이러지 하면서 앱을 완전히 종료해보거나, 충전기를 뽑고 열이 식을 때까지 기다려보거나, 아니면 느려터진 로딩에 짜증이나 이불에 던져놓고 ‘너도, 나도 좀 쉬자’ 할 뿐이다. 누워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핸드폰을 꺼준 지가 한참 되었다는 사실이 스친다. 언제 껐는지 정확히는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래도 수개월 동안 핸드폰이 열심히 달렸음에 ‘아..!’하고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측면 버튼을 지그시 누른다. 그 동작조차 오랜만인 듯 어색하다. 다시 켜진 핸드폰은 쌩쌩해졌다. 단 낮잠에서 개운하게 깬 핸드폰은 동네 한 바퀴를 명랑하게 뛰어노는 어린아이 같다. 



하물며 기계도 수개월 일했다고 이렇게 아픈 티를 낸다. 그래도 기계는 껐다 켜면 잘 달리지만, 사람은 좀 다르다. 끄면 끈대로 방전되고, 키면 킨 대로 골골대며 달린다. 사실 달리기에 가까운 빠른 걸음이다. 각자가 낼 수 있는 최선의 속도로 신기루 같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처절히 걷고 또 걸을 뿐이다. 온라인에 떠도는 일명 ‘퇴사 짤’ 중 유명한 것이 한 의약품 광고인데, 남자 중년 배우가 속 쓰림으로 고통스러워하다가 약을 먹고 개운해 보이는 장면이다. 누군가가 패러디로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에는 ‘상사’, ‘사장’, ‘야근’과 같은 직장 관련 키워드를 넣어 놓고, 속이 개운해 보이는 장면에는 크게 ‘퇴사’를 넣어 많은 직장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이미지다. ‘퇴사 짤’처럼 퇴사라는 약만 먹으면 앓던 병들도 싹 나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나에게도 있었다.



그러나 퇴사 후에도 목에서 오른팔, 팔에서 손목까지 어른거리던 통증은 갈수록 더 예민하게 굴었다. 회사 다닐 때도 종종 정형외과를 들러 "선생님, 팔이 너무 아파요."라고 하면, 의사는 "일을 안 해야 낫는데.."라는 허무맹랑한 처방법을 내어놓을 뿐이었다. 퇴사했으니 허무맹랑한 처방법도 빛을 발휘하겠다 싶었지만 웬걸, 가만히만 있어도 계속 팔을 주무르게 되고, 목을 ‘끙차’ 젖히는 횟수가 더 촘촘해졌다. 생각해보니 일을 할 때는 아파도 당장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통증은 늘 뒤로 밀어냈다. 혹은 업무와 급박한 시간에 대한 부담감이 통증을 넘어섰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아무것도 안 하며 쉬어보니 알겠다. 내 몸은 끊임없이 고장 났다고 두드린 것이다.

"목 디스크네요. 디스크가 와서 두통도 심하게 왔어요." 진단과 함께 진행된 물리치료의 레이어는 겹겹이 쌓여갔다. 주사를 맞고, 침을 꽂고, 그 침에 전기를 통하게 한다. 그 후에 고주파 치료를 받고, 빨간 불빛을 쬐고, 심장 박동처럼 뜀질하는 침대에 몸을 맡긴다. "선생님 말씀대로, 저 이제 일 안 하는데 곧 낫겠죠?" 제발 그렇다고 해줘라고 속으로 바라면서 물었다. 의사가 ‘얘 좀 보소.?’종류 것의 표정을 짓는다. "몇 년을 구부린 자세로 지냈는데, 그게 뭐 순식간에 낫겠어요. 구부린 시간 만큼 피는 시간도 동일한 거죠." 



‘피는 시간’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목 구부러지지 않게 노트북 거치대부터 사야겠네. 거치대를 사니깐 키보드도 따로 사야겠다. 집에서 착용할 목 깁스도 사야 하나. 집에 있는 목베개가 제대로 받쳐주기는 하는 걸까. 얼마 전 광고에서 본 목 교정용 기구를 사야 하나.’ 최선의 것들을 생각해보지만 그저 가벼운 잡념들에 불과했다. 머릿속을 유영하는 잡념들 밑으로, 모니터에 바짝 붙어 일하는 구깃구깃한 내 모습이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왜 그렇게 아등바등했을까’ 후회의 탄식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갑자기 또 다른 ‘나’가 머릿속 장면에 등장한다. 새로 등장한 ‘나’는 구부러진 시간 속 나에게 걸어간다. 쪼그라진 양어깨를 주물러 준다. 매 시각 10분씩은 내 손을 잡고 같이 나가 바깥바람을 쐬어준다. 가슴 언저리가 콕콕 쑤셔서 계속 명치를 두드리며 일하는 나에게 물 한잔을 권해준다. 구부러진 시간 속, 내가 나에게 해주지 못했던 동작을 마음속으로 그리며, 가장 후회되는 시간을 이렇게나마 위로할 뿐이다. 그러나 머릿속에 묵직이 자리 잡은 구부러진 나는, 펴질 수 있는 시간을 되려 거절한 채 열심히 몸과 마음을 구기고 있었다. 무엇이 두려워 내 몸과 마음을 그리도 구겼을까.



치과를 다녀오고 나서 하는 양치질은 더 야무지듯, 구석구석 깨끗하게 닦겠다는 다짐이 칫솔을 쥔 손아귀에 어려있듯, 나의 목과 어깨 언저리에는 치과의 것에 견줄만한 다짐이 잔뜩 어려있었다. 4만 원에 가까운 물리치료비가 나왔다. 다음 내원 날짜를 예약했다. 약국에 들러 처방받은 진통제에 7천 원 남짓 결제했다. 홀대했던 순간들이 치료 시간과 진료비로 수치화되어 돌아온다. 무시했던 시간에 이자를 얹어 2배로 갚아야 하는 채무자가 된 기분이 든다. 앞으로 얼마의 시간과 돈을 '피는 시간'에 갚아나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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