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자세히 관찰하는 눈이 생기는 시기.
새벽기상을 시작하면 세 달간은 강박증에 시달린다.
꼭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그 뜻모를 강박증. 하지만 그 시기가 어느정도 지나면 내 몸도 그 정성을 알아주는지 일곱 시 이전에는 눈을 뜨는 기염을 토한다.
멍하니 일어나 스트레칭이나 마감까지 미루고 미뤄둔 원고를 급하게 휘갈기고 나면 멍하니 책을 손에 쥐고 '앞으로 나는 무슨 글을 쓸 수 있을까? 쓰기는 쓸까?' 하는 반 명상 반 애달픔을 느끼고 나면 어느새 남편과 아이가 일어나고 나는 다시 풀타임 살림하는 엄마로 복귀한다.
새벽기상도 몇 달간 하다보면 성공 습관이고 뭐고간에 지겨워진다. 나는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이길래 그렇게 싫증을 잘 느낄까. 그러던 차에 고양이를 입양했고 헤어볼에 좋다는 귀리를 좀 심어볼까 싶어 다이소에서 작은 화분 키트들을 사와 심었다. 언제나 큰 화분부터 작은 화분까지 차근차근 다 죽여버리는 통에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화분에서 조그만 싹이 올라오기 시작하니 신이나서 캣닢을 심고 기세를 몰아 봉선화까지 심었다.
그러니까 요즘 새롭게 생긴 나의 새벽 루틴은 일어나자마자 흙의 마름을 체크하고 불어오는 바람을 체크하고 어떤 식물을 좀 들여볼까라는 생각을 하는 식물 꿈나무를 꿈꾸고 있다.
요즘은 심심찮게 내 또래의 사람들이 나이가 드니 꽃이 좋아진다. 꽃만 보면 지나치지 못한다. 꽃 사진으로 가득찼다.라는 글을 많이 본다.
우리 엄마는 집에 정글로 꾸며놓고 사시는데 마당에도 블루베리며 선인장부터 갖갖이 계절이 피는 모습을 즐기시는 분이라 예전에는 '집만 비좁게 하는데 왜 이렇게 많이 키워?' 라고 했다면 지금은 햇빛을 많이 쬐지 않고도 잘 크는 애가 어디 없을까? 라며 자문을 구한다.
'30대가 되면 꽃이 좋아진다는데.. 너도 나이가 드는구나' 늘 모든 사물에 시큰둥하고 딸도 설렁설렁 키우는 내가 마딱찮았던 엄마는 뭔가 안심하는 눈치로 나에게 말을 했다. '너도 나이가 드는구나..'라고
그러고 보니 정말 지나가는 색색의 꽃 하나 변해가는 계절속에 살랑거리는 꽃잎들이 흔들리는 나무들을 볼 때마다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어째서일까? 정말 나이가 들면 꽃이 좋아질까. 그저 무조건반사처럼. 30대가 되는 순간! '이제 너의 폰에는 꽃사진으로 가득찰것이야!'가 될까.
요즘은 일어나자마자 식물들을 보며 얼마나 자랐는지 관찰하는 일이 너무나 즐겁다. 심지어 오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갑자기 오후에 뿅하고 싹이 자라난다. 그때부터 시간 단위로 쑥쑥 자란다. 정말 수욱-하고
길가의 풀꽃들도 나무에 열린 열매도 제각기 꽃을 달고 열매를 다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봉싯하고 부풀어 오른다. 나는 30대가 되면 꽃이 좋아진다는 것 보다 그 전에 일상을 자세히 관찰하는 마음의 눈이 생기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나이듦이 전혀 두렵지 않다. 앞으로 평범한 것에서 소중함과 애틋함을 느끼는 사람이 되자.
우리는 어쩌면 계절의 흐름을 타고 푸른 나무처럼 깊어지고 또 짙어져 가는지도 모른다. 열심히 읽고 쓰고 느끼는 사람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