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근수근
대기업 마케팅 관련 부서에 약 6년간 근무를 했다.
박사 학위라는 타이틀에 추가 경력 인정을 받으면서 처음부터 차장급 경력직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승진이 쉽지 않은 조직, 특히 판매나 영업이 아닌 성과를 수치화하기 어려운 브랜드 마케팅이라는 점에서 어디서 굴러들어 온 신입이 들어오자마자 누군가는 몇 년을 성과 평가에 고군분투해야 했던 중간관리자급 이라는걸 주변 동료들은 탐탁해하지 않았다.
업무에 차츰 익숙해지고, 나만의 특징으로 점점 C레벨에 눈에 띄게 되면서
모두가 맡고 싶어했던 대형 프로젝트, 럭셔리 프로젝트는 다이렉트로 나에게 주어졌다.
"쟤가 걔라며?"
지나갈때면 들리는 수근거림.
내가 C레벨 첩의 딸, 혹은 내연녀라는 겉잡을 수 없이 퍼지는 블라인드 루머.
소문이 사실인지 3평 남짓의 심문실 같은 곳에서 받은 윤리위원회 조사.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개인 핸드폰, 이메일 비밀번호, 통장, 출입국기록, 신용카드와 GPS 내역까지 내보이며 인권과 인격이 사라지던 날.
이후 현재까지 난 좁고 목소리가 울리는 공간에 들어가면 몸이 경직되고 가슴이 두근댄다.
가을에 떨어진 낙엽을 거닐며 우수에 찬 감성을 즐기기엔
나에겐 그 바스락 소리가 내가 걷던 길에 들리던 수근거림으로 들렸다.
사업을 준비하기 위해 오랜 결심 끝에 한 퇴사.
나의 퇴사로 인해 소문은 결국 사실이 되어버린 듯 하였다.
퇴사하는 날, 나는 결국 C레벨의 아기를 가져 퇴사하는 스토리로 마무리 되어있었다.
아무리 숨길 것 없이 결백하다해도 퇴사 후 몇 년 간은 상처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강아지를 산책 시키며 낙엽 위를 걸을 수 밖에 없었던 어느날,
똑같이 강아지와 산책을 하는 내가 꿈에 나왔고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옅어지더니 낙엽길이 끝나는 너머로 아름다운 노을이 번지고 있었다.
핑크빛 노란빛 노을에 비친 낙엽은 오묘한 아름다운 색감이 느껴지는 꽃길이 되어 있었고
난 주위의 둘러보고 기분좋게 강아지 끈을 풀어주며 신나게 달려나가는 아이를 보며 해방감을 느꼈다.
Mm.
*이미지
Alex Katz, Sunset 3, 2020
ⓒMeyerovich Gall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