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코쿠키 Nov 14. 2020

5. 폭식 치료 시작 첫 주 = 최악의 일주일

나는 여전히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 폭식과 작별하겠다는 생각이었다. 한번 더 나를 굳게 믿어 보리라 마음먹었고, 보란 듯이 음식중독에서 벗어나 극복기를 사람들과 공유할 미래도 상상했다(이로부터 3년이 걸린 지금에, 마침내 나는 이 꿈을 이뤄가고 있다). 하지만 의지와는 다르게, 평소처럼 나는 폭식했다. 건강한 식습관으로 완벽한 일주일을 보내겠다는 마음이 커질수록 그 욕심에 비례해 폭식 횟수와 강도도 심해졌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폭식 치료를 마음먹고 노력한 첫 주는 그야말로 '최악의 일주일'이었다.


 폭식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다이어트'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매일 점심시간이 넘어서야 겨우 일어나는 사람이 꼭두새벽부터 아침 운동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폭식증 환자가 클린(clean)한 식단을 당장 몸에 익힌다는 것은 의지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음식에 대해 그동안 가진 수많은 강박들을 지우고 천천히 정상적인 식사를 연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몰랐던 나는 그때도 여전히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고 몸매에 대한 강박을 버리지 못했다. 폭식으로 살이 찐 몸을 볼 때마다 빨리 모든 것을 '원상복귀'시키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일주일을 들여다보자.


 호기롭게 시작한 첫날, 아침에 토마토와 고구마 말랭이를 먹었다. 점심은 학식 대신 고구마 말랭이와 오트밀, 율무차를 조금 먹었다. 제대로 식사를 챙겨 먹지 않은 데에는 사실 폭식증을 극복하고 싶은 마음과 동시에 다른 꿍꿍이가 있었다. 그간의 폭식으로 늘어난 살과 시간을 빨리 무마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건강한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밥을 제대로 챙겨 먹기보다는 간단히 먹고 때우려는 생각이었다(이 때는 '밥 = 살찌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녁에는 친구와 밥 약속이 있었다. 저녁에 외식을 하면 또 많이 먹을 테니 그전까지는 조금만 먹을 요량이었다. 그래서 부실한 점심에 출출한 감이 있었지만 저녁을 먹기 전까지 무언가를 더 먹지 않고 참았다.


 저녁 메뉴는 닭갈비였다. 친구와 만나 배부르게 먹고 헤어진 후 기숙사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하루 종일 밖을 돌아다녔더니 몸도 피곤하고 다리도 붓는 듯했다. 저녁을 많이 먹어서 배도 정말 불렀다. 그런데 그냥 자려니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마침 고구마 말랭이가 생각났다(이 때는 고구마 말랭이가 나의 주식이었다). 고구마 말랭이 2 봉지를 시작으로 잘 마무리되는 듯했던 하루 끝, 폭식이 시작됐다. 늦은 시간임에도 보이는 것은 다 먹었다. 한참을 있는 대로 주워 삼키다 가까스로 먹는 행위를 멈출 수 있었다. 내가 먹고 남긴 쓰레기들이 책상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것들을 바라보며 토기가 올랐다. 하지만 무서워서 차마 토할 수는 없었다. 배가 전혀 고프지 않았는데 11시가 넘은 시간에 나는 왜 이렇게 먹어댔을까?


 우울한 마음에 견딜 수 없었다. 결국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이렇게 먹은 것에 대해 엄마에게 고백해야 했다. 지금 너무 힘들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괜찮을 거라는 말이 듣고 싶었다. 내일은 괜찮을 거라고, '내일부터 정상적으로 먹을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해달라고 엄마에게 부탁했다. 엄마는 속상한 목소리로, 그리고 곧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괜찮을 거라고, 그럴 수 있다고. 엄마도 네 나이 때는 다 그렇게 먹었다고. 다만 너는 평소 그렇게 먹던 아이가 아니었는데 밤마다 그렇게 먹는 것을 보니 걱정된다고 엄마는 말씀하셨다. 그 목소리를 들으니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엄마를 위해서라도 그만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달고 쓰린 속을 해독해보려는 마음으로 500ml 생수 2병 들이키고 잠을 청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이 날을 시작으로 일주일, 어느 때보다도 심한 폭식을 할 줄은.


 화요일, 지난밤의 폭식으로 속이 좋지 않아서 아침을 거른 바람에 점심때가 되자 배가 고팠다. 그래서 챙겨 온 고구마 말랭이를 첫 끼로 먹었다. 몸에 처음부터 단 것이 들어가니 몸이 더욱 단 것을 찾았다. 마침 보이는 파리바게트에서 초코크림이 가득 든 빵을 사서 10분 만에 모두 먹어치웠다. 차라리 밥을 먹을 걸 하는 후회가 몰려왔다. 우울함을 달래려고 다시 먹을 것을 찾았다. 다시 편의점에 가서 먹을 것을 샀다. 젤리, 초콜릿, 빵, 케이크, 아이스크림까지 먹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몽땅 사 다 먹어치우고 싶었다. 어제의 다짐을 떠올리며 마음을 달래고 타협을 거쳐 겨우 한 가지만 사는 것으로 멈췄지만 하루를 망친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정말 건강하게 먹고 싶었는데…. 한없이 무기력해졌다. 남은 수업을 견디고 기숙사로 들어갔다. 일주일 중 비교적 일찍 수업이 끝나는 날이었다. 다시 말해 혼자 보내는 저녁 시간이 길고, 폭식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뜻이기도 했다. 결국 어김없이 폭식을 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무서웠다. 의지로 노력하면 해결될 줄 알았던 폭식증이 영원히 따라붙어 나를 망쳐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수, 목, 금 연 이은 3일 역시 내내 폭식을 했다. 매일 9시가 넘은 밤, 허전한 마음에 수면바지 차림으로 매점에 달려가 빵, 떡, 컵라면, 초콜릿 과자가 든 요거트를 숨도 안 쉬고 먹어댔다. 거의 15 봉지가 조금 넘게 남아있었던 고구마 말랭이도 모두 해치웠다. 월, 화 이틀의 폭식을 무마하려 점심 대신 오트밀과 고구마로 때우는 게 습관이었다. 그런 노력에도 번번이 저녁마다 폭식을 했다. 정확히는 이 것(부실한 점심식사) 때문에 폭식이 터진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어쩌면 한 번도 제대로 챙겨 먹은 적 없는 '밥'이 폭식의 원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폭식을 무마시키겠다는 그 욕심도 이제는 버릴 때였다. 그 작은 욕심은 오히려 폭식을 키웠다. 최악의 일주일을 보낸 뒤 나는 '밥'을 먹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다이어트'를 완전히 포기하리로 마음먹었다.




 (+) 여기까지 글을 읽으며 왜 고구마 말랭이를 내가 그렇게 많이 먹었던 건지 궁금증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매일 과자, 사탕, 초콜릿 등 가공음식으로만 폭식하는 내가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엄마는 먹는 음식을 바꿔보자라고 이야기하셨다. 그래서 생각해낸 '건강간식'이 고구마 말랭이였던 것이다. 폭식증으로 매일 우는 딸을 위해 엄마는 기숙사로 고구마 말랭이 1박스를 보내주셨다. 그러나 음식에 대한 강박을 여전히 고치지 못했던 나는 그 '건강간식'마저도 하루에 평균 5-6 봉지를 해치우고 말았다.


 참 아이러니하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건강한 음식으로 간식을 바꾸면 폭식이 해결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마음의 문제를 꺼내 음식중독의 본질을 들여다보기 전까지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했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을 할 때마다 좌절은 깊어갔다. 매번 나아질 거라는 실낱의 희망과, 실패로 번번이 찾아오는 좌절들. 그래서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아주 작은 지침서가 될 수 있기를.

이전 04화 4. 대학 가면 다 해결될 줄 알았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