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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쿠키 Nov 14. 2020

6. 폭식증과 우울증의 상관관계

자기 비하의 위험성

 폭식증을 고치기 위한 노력이 또 다른 '강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절한 일주일을 통해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절대~하면 안 된다", 그리고 "꼭~해야 한다"는 서술어를 머릿속에서 지우기로 마음먹었다. 빨리 폭식증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나는 조급했고 그래서 더 많은 '명령어'를 스스로에게 입력했다. 무의식 중 수많은 족쇄와 금기를 자신에게 부여해왔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

 "절대 폭식하면 안 된다."

 "단 거 먹으면 그 순간부터 폭식 터지니까 과자, 초콜릿 같은 거 먹으면 안 된다."

 "(임의의 양을 혼자 정하고서는) 이만큼만 먹어야 한다."


 폭식증 환자가 이러한 생각들로 또 다른 '강박'을 만드는 것은 어떻게 보면 조금 당연할 일이지도 모른다. '강박'을 만드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빨리 식이장애를 해결하고 싶다는 조급함이 이것을 부추긴다. 사실 그 조급함은 필연적이다. 매일 밤마다 폭식하고 죽을 것 같은데 이걸 천천히 해결한다고? 그 고통을 상상하는 것조차 힘겨운데? 나 역시 이러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급한 마음이 만든 강박은 오히려 멀리 돌아가는 상황을 야기할 수 있다. 천천히 습관을 들여나간다는 생각으로, 정상적인 식사를 훈련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내 안의 이 모든 '명령어'들을 잊고 자유로워지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폭식 없이 완벽한 일주일을 보내겠다는 욕심도 버렸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식이장애를 치료하는 것 역시 그러하다. 그럼에도 나는 항상 스스로에게 엄한 잣대를 들이밀고 있었던 것이다. 매일 밤 폭식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 것은 나의 의지박약 때문이고, '폭식증 자가치료를 결심한 첫 주부터 망한 너는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남에게는 절대 못할 모난 말들을 스스로에게 수없이 뱉어냈다. 그렇게 나는 자기 비하에 빠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자기 비하가 시작되는 순간 폭식증이 심각한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완벽할 수 없다. 음식중독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결코 탓해서는 안된다. 폭식증을 이겨내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몇 번을 더 무너지더라도 절대 그 모든 상황의 원인을 스스로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나는 이 사실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그럼에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를 증오했으며 종종 극단적인 생각을 했다. 


 폭식증이 우울증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반복되는 실패'로부터 온다. 운 좋게 하루 폭식을 하지 않으면 뿌듯한 마음과 모든 상황이 금방 해결될 것 같다는 기대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며칠 지나 폭식이 터지면 그 순간 정확히 올라간 기대만큼의 좌절을 준다. 폭식증 환자는 매일 밤 폭식을 하고 우울한 감정에서 일어나는 연습을 해야 한다. 토하고 싶을 만큼 먹고 2~3시간 정도 울고 멍한 상태로 있다가 겨우 정신이 들면 나는 항상 이렇게 다짐하고 자기 최면을 걸었다.


 "오늘은 많이 먹었지만 내일은 괜찮을 거야. 내일 한번 더 다시 해보자."

 

 밤마다 미친 것처럼 음식을 먹어댄 내가 밉고 끔찍하고, 한편으로는 너무 불쌍했다. 음식을 죽을 때까지 먹이는 것도, 그것을 당하는 것도 모두 나라는 사실이 아이러니였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나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폭식 후 항상 '그래도 내일은 괜찮을 거야.'라는 말 뿐인 위로를 스스로에게 건넬 수밖에 없었다. 살아야 했고, 견뎌야 했고, 내일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아무리 긍정적이고 둔한 사람도 매일 반복되는 거짓된 희망에는 화가 나는 법이다. 스스로에게 되뇐 말이 정확히 18시간마다 부정당하는 것을 목격하는 것이 일주일간 매일 반복된다고 생각해보라. 그때부터 더 큰 자기혐오와 부정적 생각이 사람을 나락으로 끌어당긴다. "또" 이겨내지 못한 매번의 실패에 나는 울며 내게 소리 질렀다. 


 "일주일 간 매일, 내일은 괜찮을 거라고 얘기했었지? 그거 다 거짓말이었잖아. 괜찮을 거라며. 네가 그랬잖아. 네가 안 먹이겠다고. 나 자신한테 좋은 거 먹이고, 속 안 아프게 건강한 거 먹일 거라고 약속했잖아." 


 스스로에 대한 기대와 사랑만큼 배신감도 컸다. 오늘은 괜찮을 거라고 약속했던 어제의 내가 너무 미웠다. 그 말을 믿고 오늘을 또 한 번 살아내 보리라고 힘들게 결심했는데 다 망쳐버렸다고 생각했다. 어제의 나는 왜 책임지지 못할 희망을 주었는지 화가 났다. 남들은 매일 문제없이 하는 식사, 그 기본적인 것에 어려움을 느끼게 만드는 식이장애가 주는 무력감은 아주 짧은 간격으로 내게 펀치를 날렸다. 강도가 약한 펀치라 하더라도 같은 부위를 계속 1~2년씩 쉬지 않고 맞는다면 사람이 죽는 법이다. 나에게 식이장애는 그런 펀치였다.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멍이 온 구석에 들어 나는 죽어버리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았다.




 남들이 다 하는, 기본적인 것에서 느끼는 불만의 스트레스는 상당했다. 다른 것에서 만족을 얻는 순간이 있더라도 폭식이 주는 좌절이 모든 것을 압도했다.


 "먹는 것조차 혼자 조절 못하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 무얼 할 수 있겠어. 정상적으로 밥 먹는 것도 못하는데 학교를 다니고, 공부를 하는 게 가능할까? 사람을 만나고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가능할까? 나는 아무것도 못할 거야, 영원히."


 한 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너무 무서웠다. 휴학하고 싶었고 졸업할 수 있을까라는 강한 의심이 들었다. 힘들게 온 대학이었음에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주 긴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의 나는 폭식증을 치료하고 정상적인 식사를 하는 빈도가 크게 늘었다. 한 때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이 나약한 사람도 이겨냈으니 당신도 할 수 있다고. 그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릴지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자신을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식이장애를 앓는 모든 이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한 가지 더, 자기 비하를 그 무엇보다 경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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