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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쿠키 Nov 19. 2020

7. 폭식 없이 일주일을 보내겠다는 욕심을 버렸더니

다이어트를 완전히 포기하기

 호기롭게 자가치료를 시작한 일주일을 완벽하게 망쳐버리고 나는 폭식 없이 일주일을 보내겠다는 욕심이 강박을 낳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 강박이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 빨리 식이장애를 고치고 싶다는 조급함도, 망가진 몸을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 놓지 못한 다이어트도 완전히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결코 쉬운 결심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긋난 노력이 상황을 더 악화시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폭식증을 겪으며 그간 다른 식이장애 환자들의 이야기, 정신과 의사의 조언을 담은 유튜브 영상을 많이 찾아봤다.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적인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기계적인 식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다이어트를 그만둘 것'이었다. 특히 폭식증 치료와 다이어트는 절대 병행할 수 없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두 가지를 바탕으로 정상적인 식습관을 연습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체득함으로써 제자리로 되돌리는 것이 폭식증 치료의 핵심이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해야 한다.'라고 옥좨 온 수많은 규범 대신 이 두 가지의 규칙만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폭식 없이 완벽한 일주일을 보내겠다는 욕심을 버렸더니 놀랍게도 상황은 빠르게 좋아졌다(물론 이것이 폭식증과 완벽히 이별하는 것을 의미하진 않았다). 최대한 아침, 점심, 저녁의 하루 세끼를 챙겨 먹으려 노력했고 먹고 싶은 음식을 자유롭게 먹었다. '먹어야 하는 음식'으로 정해둔 것 대신에 그때마다 내가 진심으로 '먹고 싶은 음식'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는 이전에 없던 큰 만족감을 주었다.




2018.4.2


 아침으로 흑미밥을 넣은 까만색 김밥을 1줄 먹었다. 어제 과하게 먹었던 것 때문에 속이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꼭꼭 씹어서 먹으려고 노력했다. 아침 먹는 습관을 들여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침을 좀 더 맛있게 먹으려면 저녁에 습관처럼 하던 폭식을 그만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저녁에 폭식하려 할 때면 밤에 거북하지 않은 속으로 푹 자고 아침 공복에 맛있게 먹자고 나를 설득하는 연습을 해봐야겠다. 안 먹던 아침을 먹고 나니 시간이 꽤 흘러도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것도 먹지 않다가 3시 30분쯤 늦은 점심을 기차역에서 해결해야 했다. 점심시간이 꽤 늦어졌지만 그때까지 이런저런 일로 바쁘게 시간을 보내며 음식과 잠시 분리된 공간에 있다 보니 음식에 대한 강한 욕구가 들지 않았고 덕분에 그리 힘들지는 않았었다. 점심메뉴의 선택지가 제법 여럿이라 고민이 됐다. 햄버거, 국수, 김밥, 편의점 도시락, 반월당 닭강정, 라면. 사실 마음속으로는 닭강정이 제일 먹고 싶었지만 튀기고 양념을 듬뿍 묻힌 것을 점심으로 먹어도 될까 조금 걱정스러웠다(나는 닭강정을 '먹어선 안 되는 음식'으로 무의식 중에 분류하고 있었다).


 '엄마는 김밥 같은 밥류로 제대로 식사를 챙기라고 하시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잠시 고민하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얼 먹는 것이 좋을지 물어보려 했던 건 아니었고 기차역에 잘 도착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엄마는 점심 잘 챙겨 먹으라는 이야기와 방울토마토를 1통 깨끗이 씻어 가방에 넣어두었으니 간식으로 먹으라고 하셨다. 전화를 끊기 전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 고민 중이라고 털어놓자 엄마는 네가 먹고 싶은 것을 그냥 먹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닭강정을 먹기로 했다. 1인용 긴 컵에 듬뿍 담은 매콤 달콤한 닭강정을 맛있게 먹었다. 기분이 좋았다. 참 단순하고 쉬운 법칙이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그냥 먹는 것. 이 쉬운 것이 내게는 여전히 참 어렵다. 먹고 싶은 것을 ‘적당히’ 먹는다는 것 말이다. 꼭꼭 오물오물 씹어서 삼켰다.


 오래 씹어 삼키다 보니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음식을 통해 만족감을 느끼는 시간이 길게 지속됨을 느꼈다. 급하게 먹는 습관도 천천히 고쳐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먹을 때 제대로 영양소를 갖춘 식사를 먹자'라는 생각으로 엄마가 싸주신 방울토마토도 한통 깨끗이 비워냈다. 4시간 기차를 타고 서울에 도착했다. 수많은 빵과 도넛, 간식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기숙사에 도착했다. 단 음식들이 계속 당겼지만 먹고 바로 기차에서 잤더니 속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저녁 먹기가 조금 애매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끼니를 거르지 않으려 밥을 따뜻한 물에 말아 밑반찬과 함께 천천히 씹어 먹었다. 오래간만에 폭식하지 않은 날이었다. 일주일의 시작이 좋았다. 이번 주는 제발 폭식하지 않기를.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타기 전 엄마와 손잡고 기도했다. 다가올 일주일에 대한 떨림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가볍게 먹은 저녁 덕분에 편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행복했다. 그리고 내일 아침밥이 기다려졌다.




 그렇게 기분 좋은 시작으로 다시 출발한 일주일 간 나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다독이며 자가치료의 두 번째 주를 보냈다. 아주 가끔 무너질 때가 있었지만 큰 실패 없이 정상적인 식사를 연습하며 나는 내 식습관의 문제점과 폭식증 치료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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